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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2 - 26살의 진영이가 8살의 진영이에게

Chapter Ⅱ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부모님은 많이 찍어주셨다. 그리고 사진을 인화해서 내 사진 앨범에 꼽아 넣어 주셨다. 사진 앨범에서 내가 한 번씩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두 장 있었다. 그 사진은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 내가 체조하는 모습과 엄마랑 내가 같이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이 사진을 한 번씩 볼 때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내가 이런 모습도 있었나? 나는 이런 모습일 줄 몰랐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런 모습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나는 이제 이렇게까지 이상한 모습은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인인 대학생일 때는 '이때 이런 모습만 아니었어도...'라며 끊임없이 나의 사진 두 장에 찍혀있는 모습을 부정하고 비난해 왔다. 그러다 언제인지는 지금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나의 어렸을 적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서 사진을 마구 구겼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버리려고 했는데, 버리기 직전 차마 버리진 못 하겠어서 구긴 사진을 앨범 제일 뒤쪽에 꼽아 넣어 두었다. 그리고 또 언제인지는 지금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사진 앨범 제일 뒤쪽에 넣어둔 마구 구긴 사진을 꺼내서 결국 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다시는 나의 이상한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 모습을 잊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쓰레기통에 버렸던 사진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히 기억났다. 그리고 왜 기억이 더욱 선명히 나는 건지 사진을 버린 지 오랜 시간 후에 깨닫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도 나였고,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도 나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사진을 버린 게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되었다. 그 사진의 모습을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몸이 불편했는지, 그 몸으로도 학교 체육복을 입고 다른 학생들과 같이 어우러져서 체조했던 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 건지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사진이었는데... 나는 그걸 스스로 구기고 결국엔 찢어 버린 것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2014년의 어느 날, 성인의 내가 여덟 살의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었다. 아래는 그 편지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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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을 생각하면, 그리고 옛날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는 옛날에 찍힌 사진들이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진 두 장을 찢어버렸다. 언제 버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몇 년 전에 버렸던 것 같다. 이보다 더 예전에 버린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건  사진을 바로 그 자리에서 쉽게 찢어 버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가끔 앨범을 보면서 그 사진 두 장이 거슬렸다. 그래도 차마 버리진 못 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앨범을 닫았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 사진 두 장이 보기 싫어서 마구 구겼다. 그런데 차마 찢진 못 하고 구긴 사진을 앨범 제일 뒤에 쑤셔 넣어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앨범 사진을 정리하고 다른 앨범으로 사진을 다 옮기면서 그 사진 두 장을 결국 찢어버렸다.


   그때는 이렇게 후회되고 마음이 무거워질 줄 몰랐다. 다 털어내자, 이젠 이렇게 까지는 보이진 않잖아, 이런 마음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마음에 찔리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무시했었다. 그런데 요즘 특히 올해 들어서 그 사진 두 장이 없는 게, 내가 찢어 버렸다는 게 너무 후회가 되고 마음이 짠해진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에서 체조하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는데, 내 몸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고, 입도 삐뚤고, 얼굴은 몸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손과 팔은 이상하게 꺾인 모습으로 찍혀있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에서는 운동회 중간에 엄마랑 내가 같이 서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는데, 엄마가 왼쪽에 나는 엄마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그때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도 몸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고, 얼굴은 몸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었고, 얼굴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정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이런 나의 모습을 싫어하니까 나도 내가 그런 모습인 게 싫었다. 내 눈에 보이는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과 같아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사진이 없어지고 지금에서야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면서 이게 나쁜 것이 아님을, 이게 잘못이 아님을 스스로 느낀 이후에서야... 그 사진이 없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 사진 속에 비친 모습도 나의 모습이고, 내 어린 시절의 귀한 모습인데... 그렇게 불편한 모습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확인하고 추억해 볼 수 있는 참 귀한 사진인데... 그걸 내가 스스로 찢어 버렸다.


   사진을 찢어 버리는 그 순간은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지만, 거의 십 년 가까이 그 사진을 보며 내 모습을 부정하고, 그러다 안 돼서 악을 쓰며 사진을 구기고... 그걸 차마 바로 버리지 못하고 다시 앨범에 넣어 두었던 내 어린 시절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마음이 너무 저며온다. 가끔씩 앨범을 보게 되면 이렇게 마음이 저며오는데, 언젠가는 이런 생각조차 잊게 될까 봐, 사진도 없어졌는데 나의 기억마저도 서서히 흐려질까 봐 초조해지는 오늘 하루였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바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씨도 지금 엉망이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적어서 앨범에 보관해야지 내가 한 행동이 여덟살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하다. 십수 년 동안 여덟 살의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부끄러워했던 게 싫어했던 게 참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다. 지금 스물여섯의 내가 여덟 살이었던 1996년 가을의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 진영아 미안해, 지금에서야 그때를 생각해 보니 여덟 살의 내가 그 상황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 이제야 그때를 되돌아보게 되네. 제대로 말이야. 그때 정말 최선을 다 해서 체조했어. 팔이 다 올라가지 않아도 힘내서... 그리고 그때 달리기도 꼴찌하고 체조하는 것도 남들과 다른 모습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그래도 운동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여해 줘서 고맙고 정말 대견해. 진영아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맙다. 스물여섯의 내가 여덟 살의 나에게.  - 2014. 06. 22. 일. 새벽 1시. -     

나의 앨범 안에 넣어둔 편지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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