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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과탑 그리고 공모전

Chapter Ⅱ  

   2학년 1학기 4월 초, 교직 이수 선발에서 아쉬움을 맞이하고는 4월 말까지 편입에 대해 고민하다가 편입에 대한 마음을 접고, 5월부터 나는 작곡 전공에 더욱 몰입했다. 교직 이수는 교육대학원에 가서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땐 교육대학원에 가서까지 교직 이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만약 대학원에서 교직 이수를 한 후에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면 첫 임용고시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고, 당시 대학교 2학년 21살의 나로서는 나이 30이 넘어서까지 임용고시를 준비할 수도 있다는 건 너무 무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교육대학원은 절대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작곡을 더욱 깊이 있게 배우고자 노력했다. 전공 교수님께 대위법과 작곡을 배우면서 고3 입시생 시절의 작곡은 수박 겉핥기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작곡에 대한 초석을 잘 쌓아 나갈 수 있었다. 


   1학년때 실망이 컸던 수요일 오후 연주 수업에서 드디어 내가 2학년으로서 곡을 발표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당시 나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고, 연주 한 달 전부터 연주자를 구하려고 피아노과와 관현악과를 오갔다. 바이올린은 관현악과 4학년 악장 언니한테 부탁했고, 피아노는 피아노과 2학년 중에 잘한다는 애한테 부탁했다. 바이올린은 악장 언니가 잘해 주었지만, 피아노는 내 곡이 어렵다며 연주 2주 전에 파투를 냈다. 나는 또다시 이 학교에 실망을 하다가 결국 작곡과 내 동기 중 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친구한테 연주를 부탁했다. 고맙게도 그 친구가 열흘 동안 내 곡을 열심히 연습해서 악장 언니와 작곡과 친구의 연주로 수요일 오후 연주 수업에서 내 곡이 연주되었다. 


   작곡과 친구의 피아노 연주는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실수가 종종 있긴 했지만, 연주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 곡을 기꺼이 연주해 주겠다고 해 준 친구한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바이올린은 악장 언니가 연주를 너무 잘해줘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그 연주 이후 작곡과를 비롯하여 음악대학에서 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후일 내 연주를 해 주었던 바이올린 악장 언니한테 언니가 많이 바쁠 텐데 왜 작곡과 2학년밖에 안 된 내가 연주를 부탁할 때 흔쾌히 응해줬는지 물어보니 내가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여서 연주를 해 주고 싶었다고 했었다. 악장 언니가 나를 그렇게 봐왔다는 것이 작곡과가 아닌 음악대학의 다른 과에서도 내가 인정받는 것처럼 느껴져서 뿌듯하고 기뻤다. 


   2학년 2학기 겨울방학 전, 다음 해 5월에 있을 음악대학 전체 연주의 오디션이 있었는데 그 오디션에서 나는 작곡과 대표 학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디션에 합격 후부터는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하는 것에 전념했다. 3학년 1학기 5월에 드디어 음악대학 전체 연주회가 외부 큰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이 연주는 음악대학의 각 과에서 한 명씩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거였는데, 나는 작곡과 대표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내가 꼭 과탑이 된 것만 같았고, 이 연주가 작곡에 더욱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3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방학을 흥청망청 보내지 않았다. 방학 동안 작곡 공모전을 준비했고, 공모 곡을 작곡하면서 밤을 새우는 날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한 자리에 앉으면 악상이 떠오를 때까지 연필을 잡고 오선지를 봤고, 그 시간이 길게는 8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물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라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로지 그 시간은 하나의 음과, 음들 사이의 진행에 몰입했다. 그 결과 혼성 4부 합창곡이 완성되었고, 3학년 2학기 가을 어느 날 모르는 전화가 걸려 와서 받아보니 내가 작곡 공모전에 제출한 합창곡이 본선에 오르게 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작곡 공모전 본선에 내 곡이 1500석 연주 홀에서 당당하게 연주될 때 무더운 여름날 수많은 날들의 밤을 지새우며 작곡했던 순간이 떠올랐고, 가슴이 벅차오름과 동시에 황홀하고도 뜨겁고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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