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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기려고만 했던 시간들에서 벗어나다

Chapter Ⅳ 

   2018년 3월 2일 1교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의 교실로 들어가서 발령받은 학교에서의 첫 수업을 했다. 내가 발령받은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 수업으로 들어간 반은 2학년 남자반이었다.


   그런데, 막연했던 첫 수업이라서 그런지 수업시간 45분을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첫 시간이니까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한 후 교실에 앉아있는 서른 명의 남학생들에게도 자기소개를 시켰다. 학생들의 다소 어색한 자기소개 시간이 끝난 후, 나는 이번 학기 수업 계획과 평가 계획 그리고 각 평가에 부여되는 점수를 안내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고, 나는 마음 졸이던 첫 수업을 끝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수업 연구도 하고, 교무실에 계시는 선배 선생님들께 학생 지도와 수업 진행 방법 등을 여쭤보면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다 남자반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는 중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나의 모습을 따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때 애써 그 모습을 못 본채 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 학생에게 딱히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 학생들의 짓궂은 모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수업 시간에 나의 불편한 모습을 따라 하고 웃으며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그 상황을 애써 피하려고만 했다. 꼭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를 괴롭히고 놀려댔던 애들한테 아무 말 못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후, 쉬는 시간에 내가 복도를 걸어 다녀도 짓궂은 남학생들은 내 뒤로 줄지어 걸어 다니며 나의 불편한 모습을 더 극대화하고 희화화시켜서 따라 했다. 그럴수록 점점 더 남자반 수업에 들어가는 게 싫고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초등학생 때가 생각나면서 무서워졌다. 당연히 나의 수업 시간은 난장판이 되어갔고, 수업에 방해하는 학생들한테 주의를 줘도 학생들은 나의 지도를 듣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나는 어느덧 학생들에게 교사가 아니라, 그저 놀림감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러다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남자반에 들어가서 수업을 하던 중, 갑자기 앞에 앉아있는 남학생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를 수없이 괴롭혔던 애들처럼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의 내면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내면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계속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해 2월에 신규교사 연수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이런 문제가 봉착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내가 수업을 하면 학생들은 조용하게 앉아서 수업을 들을 줄 알았는데, 나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현실이었다. 발령받은 지 고작 2달 남짓한 신규교사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놀림받고 괴롭힘 당했던 걸 어떻게 지금 학생들한테까지 다시 당하게 된 걸까... 나는 앞으로 교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5월 중순의 어느 날, 나는 단단히 결심하고 수업을 하러 남자반의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학생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여느 때와는 다른 나를 학생들도  의식한 건지 그날따라 떠들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이내 나는 말문을 열었다.


  나: 여러분들 중에서 선생님의 행동을 웃으면서 따라 하고, 더 확대해서 따라 하는 애들이 있는 거 나는 다 알고 있었어. 네들이 언제까지 하는지 벼르고 지켜봤는데, 내가 아무 말 안 하니까 더 심하게 하더라. 왜? 그렇게 하니까 재미있었냐? 선생님이 여러분들 처음 만났던 3월 초에 내 소개를 할 때, 이제는 우리나라도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도 불편한 모습을 따라 하거나 놀리거나 비웃는 그런 저급한 행동은 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어. 그런데, 아니더라? 야, ㅇㅇㅇ 너, 쉬는 시간에 선생님 뒤 따라다니면서 선생님이 불편한 모습 보였던 것들 더 크게 확대해서 따라 하니까 기분 좋았어? 재밌었냐? 어?


   그때 내가 지목했던 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 선생님이 착각했던 것 같아. 나는 여러분들이 초등학생도 아닌 중학생이라서, 그리고 선생님보다 키도 더 큰 학생들이 많아서, 몸이 큰 것만큼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도 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너네들을 너무 과대 평가했던 것 같다.

  

  나: 그래,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지켜봤듯이 몸이 좀 불편해. 어렸을 때 열이 심하게 나서 그 후유증으로 뇌성마비 장애가 왔고, 몸의 왼쪽 전체가 다 불편해. 그래서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불편했어. 그래도 나는 성인 되기 전까지 집에서 혼자 책 읽은 걸 녹음했어. 녹음한걸 다시 들으면서 발음이 안 되는 것들 체크하고 말하는 거 연습했어.  매일 걸어 다닐 때마다 똑바로 걸으려고 의식하면서 걸었어. 의식하고 걷는 게 습관이 돼서 요즘도 걸을 때면 의식하고 걸어. 웃을 때 나도 모르게 입 삐뚤어진다고 어릴 때 부모님이 말씀해 주셔서 그 말 들은 이후로 항상 거울 보면서 혼자 웃는 거 연습하고...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


  나: 맞아. 여러분들이 봤을 때 나는 아직 불편한 모습이 보일 때가 있을 거야.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잘 몰라. 왜냐하면 내 앞에 항상 거울이 있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알지 못해. 그렇다고 네들이 나의 불편한 모습을 극대화해서 따라 하는 것만큼 내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까지 걷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왜 대답을 못 하지? 맞아 아니야?    


   학생들은 계속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는 느낌은 강하게 받았다.      


  나: 얘들아, 선생님이 자세한 내 소개를 두 달이 지나서야 이렇게 하게 되어서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해. 그런데, 분명히 말할게. 이 시간 이후부터 선생님의 불편한 모습을 흉내 내거나 수업시간에 방해하는 학생들이 보이면, 선생님은 절대 이전처럼 가만히 있진 않겠다는 거 명심해라. 대답 안 해? 대답!


  학생들: 네.


   이후 각 반의 수업시간마다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의 불편함을 놀려대던 학생들이 없었던 반에서는 위에 적힌 것처럼 말하진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는 더 이상 학생들이 나의 불편함을 따라 하면서 웃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숨기려고 할수록 학생들은 더 잘 안다는 것을... 방법은 물론 잘못되었지만 학생들이 나를 놀려대던 나쁜 행동들이, 어쩌면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학생들의 아우성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발령받은 지 2달 된 신규교사인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매년 3월 각 반의 첫 수업시간마다 내 소개를 할 때 반드시 나의 불편함도 당당하게 말하겠노라고!!

이전 16화 부록 - 2016. 03. 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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