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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반추"

Chapter Ⅳ 

   교사로서 처음 겪게 되는 일이 참 많았던 1년 차 신규교사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다음 해 신규교사 2년 차가 되었다. 내가 1년 차 때 다짐했던 것과 같이 3월, 2년 차 첫 수업에서 내 소개를 할 때 몸이 조금 불편한 것도 말했다. 학생들에게 내가 먼저 숨김없이 소개하자, 1년 차 때 겪었던 안 좋은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반추”라는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도 이 증상이 반추라는 것을 병원 진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학교에서 근무할 때 내가 한 행동들이나 내가 했던 말 한마디,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끊임없이 생각났다.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아도 잠들기 전까지 내가 어떤 생활을 하든, 나의 머릿속 한쪽에서는 한 가지의 생각이 끊임없이 났다. 잠들 때까지 생각났고,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도 제일 먼저 생각났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생각나는 현상은 더 강해졌다. 끊임없이 생각나는 한 가지는 다른 생각으로 뒤덮어 버릴 때까지 지속되었다. A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다가 B라는 사건이 생기면, A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나게 되지만 나는 또다시 B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의 머릿속을 에워쌌다. 이 굴레에서 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나게 되는 현상에서 지쳐만 갔다. 그러다 현상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면서 점점 더 안 좋은 생각들로 나의 전부를 잠식해 버렸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는 웃으면서 수업하고, 학생들에게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할 수 있다 포기하지 마라며 온갖 좋은 말을 다 해 줬지만, 정작 내가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움은 점차 가중되었고,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학생들에게는 항상 자신감을 가져라 넌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말해줬지만, 정작 나는 모든 것에 자신감이 사라져 갔다.

 

   결국 '나는 뭐 하러 사는 건가...'라는 원초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휴일이면 나는 이런 생각들이 더욱 심해져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다발성경화증 주사약을 쓰레기봉지에 넣어서 버리는 행동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스스로 주사를 맞는 게 유쾌하진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냉장고 문만 열면 보이는 주사약이 정말 미치도록 싫었다.


   주사약을 버리고 오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내 마음속은 온갖 "화"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차피 주사 맞아도 이 병 완치 안되는데 뭐 하러 맞아? 그냥 이렇게 살다가 못 걷게 되고 안 보이게 되고 감각도 못 느끼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절규하듯이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나중엔 지쳐서 멍하게 앉아있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아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약이 얼마짜리 약인데...'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나는 바로 밖으로 나가서 내가 버린 쓰레기봉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내가 버렸던 쓰레기봉지는 그대로 있어서 그걸 다시 들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묶었던  쓰레기봉지를 풀어서 냉장고에 주사약을 다시 넣었다.


    아무리 다발성경화증 치료제인 주사약의 여러 부작용 중 우울증과 자살충동이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심해지게 될 줄은 몰랐다. 도저히 나는 이런 상황들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병원에 갈지 말지를 계속 생각했지만 쉽사리 병원으로 발걸음이 향하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상태로 몇 시간 동안 누워있다가 이내 눈물이 났다. 이대로 계속 울다간 내가 정말 쓰러질 것 같아서 나는 씻지도 않은 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집 앞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으로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나는 원래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데 이 장애를 스스로 수용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 좀 남들처럼 살아보나 할 때쯤에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이 왔다, 그래서 너무 억울하고 아직도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수용하는 게 힘들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의 첫 말이 "아이고"였다. 그래서 나는 "다발성경화증 확진 이후에 내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같은 동네 병원에 갈 때마다 복용하는 약이 있냐는 질문에 다발성경화증으로 인터페론 주사를 맞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의사 선생님들은 "아이고"라고 하던데 선생님도 똑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그 병이 어떤 병인지 잘 아는데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안타까워서요. 아마 다른 의사 선생님들도 그런 마음이 들어서 아이고라고 하셨을 거 같아요."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날 진료실에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상담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말을 들으면서 여태까지 너무 고생 많았다는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삶을 살아온 거고, 병원에 참 잘 왔다며 위로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매주 한 번씩 상담 치료를 받아 왔고, 여태까지 하나의 생각에 꽂혀서 계속 나의 내면을 괴롭혀 온 증상은 “반추”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반추 증상은 우울증과 관련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반추 증상이 발현됐을 때 생각나는 것을 억지로 끊어내려고 하면 더 생각나기 때문에 이때는 생각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 주라고 하셨다.


    ‘생각이 나는구나... 괜찮아... 내가 여태까지 너무 힘든 일이 많았어서 이런 생각이 나는구나... 괜찮아. 계속 생각나는구나... 괜찮아.’ 이렇게 스스로 받아들이고 위로해 주면 어느 순간 반추 증상은 많이 호전된다고 하셨다.


    물론 단시간 안에 이 증상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유를 가지고 해 보라 하셔서 나는 의사 선생님을 믿고 반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진료받아 온 것을 내면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1년 넘는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 선생님과 다양한 상담 치료를 진행했다.


   치료를 통해 어린 시절의 아픔부터 천천히 나의 마음을 만져 주게 되었다. 그 결과 정확하게 언제부터 괜찮아졌는지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반추 증상이 점점 나에게서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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