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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지 생활

Chapter Ⅳ 

   내 고향 대구에서 지금 살고 있는 도시까지의 거리는 300km가 넘는다. 임용고시 이전에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여행차 딱 한번 와 본 게 전부였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한 명 없는 이곳에 나는 그저 임용고시 내 과목 티오 하나만 보고 시험을 치러 왔고, 합격 후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다. 이 도시에서 살게 된 첫 해에는 모든 것이 다 낯설었다. 그중 제일 낯설게 느껴 진건 말투였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tv에서만 듣던 서울말을 했기에 그 말만 듣고 있어도 귀가 호강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의 이상형 목록에 서울 말 쓰는 것도 추가되었다.


   발령받은 도시에서 생활한 지 몇 달 지나서부터는 동호회 어플로 사람들도 만나봤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는 건 그때뿐이었다.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지만, 막상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면 허무함이 커지면서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게 어느 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몇 명의 마음 맞는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이 또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시간에만 하하 호호할 뿐이지, 퇴근후나 주말에 나의 주변에는 적막함만 감돌뿐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본가로부터  첫 독립생활이기에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은 꽤나 흥미 있었다. 이런 시간이 지속돼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다 또 하루가 밝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해야 되는 아침이 되었다. 그런데, 누워있던 내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무리 몸을 일으켜보려고 발버둥 쳐봐도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그날 출근하는 걸 포기하고, 내 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손가락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한테 이른 시간이었지만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그 선생님은 내 전화를 바로 받아주셨다. 그 선생님의 “여보세요”라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혼자서 참아왔던 두려움이 눈물로 터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말했다. “언니, 저 지금 누워있는데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안 움직여요. 그래서 오늘은 도저히 출근 못 할 것 같아요. 학교 출근하시면 언니가 제 상황 좀 대신 말씀 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하자 그 선생님은 나를 굉장히 걱정하면서 119에 먼저 전화하라고 했다.


   그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119에 전화해서 내 상황을 알렸다. 곧이어 119 구급대원은 나의 집으로 왔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몸은 점점 움직일 수 있게 되어 119 구급대원에게 현관문은 열어 줄 수 있었다. 물론, 현관문까지 걷지 못하고 기어서 갔지만, 그래도 아침에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보다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조금 더 커진 것이었다.


   119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의사한테 내 증상을 말하자, 의사는 나에게 평소 복용하는 약을 물어봤고, 나는 다발성경화증으로 자가주사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내 몸의 마비 증상에 대해서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아파서 못 움직이는 걸 보니 몸 전체 근육이 경직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근육이완제를 링거로 맞아보자고 했다. 링거를 맞고 나서부터 내 몸은 다행히 조금씩 풀리게 되었고,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쯤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내 몸은 거짓말처럼 많이 호전되었다. 목을 좌우로 돌리는 건 아직 무리였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다. 이후 다발성경화증 진료를 받는 국립암센터에 가서 주치의 선생님께 이런 증상들에 대해 말씀드리자, 다발성경화증 재발 증상이었으면 24시간 이상 그 증상이 지속되어야 되는데 내가 겪었던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괜찮아졌고, 24시간 이상 그 증상이 지속되지 않았으므로 다행히 다발성경화증 재발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그무렵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일시적으로 그런 증상이 있지 않았을까 정도로만 예측된다고 하셨다.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는 다행이라 생각을 하게 되지만, 당시 그 상황에서는 참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인생 살면서 나는 별일을 다 겪는구나 싶기도 했다.


   혼자라서 외롭거나 따분한 것보다, 혼자 있는데 심하게 아프게 될까 봐 걱정스럽긴 하다. 그래도 막상 닥치니까 어떻게 또 해결이 되는 걸 경험하니 앞으로의 삶도 그다지 큰 걱정은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성실히 잘 살아가게 되면 그게 지나고서는 어제가 되고, 앞으로 다가올 내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몸이 안 움직였던 시간을 겪으면서부터 나는 학교로 출근할 때마다 항상 오늘이 어쩌면 나의 마지막 수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퇴근하면서는 오늘도 다행히 몸에 큰 이상 없이 퇴근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교문을 나선다. 이렇게 하루를 보낼 때마다 나는 그 순간순간이 참 소중해진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 온 이 말을 항상 가슴에 되새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여기, 그리고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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