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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발성경화증의 병변 확산

Chapter Ⅳ

   2020년 2월 설연휴까지 나는 대구에 있었고, 설연휴 이후 2020학년도 1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에 출근한 첫날 안전 안내 문자를 한 통 받게 되었다. "최근 며칠 동안 대구에 있었던 사람은 코로나 밀접 접촉자일 가능성이 있으므로..."(이하 문자 내용은 이 글에서 생략하겠습니다) 이 문자의 내용이 도대체 뭔가 싶었다. 그다음 날은 사태가 더 심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코로나... 다발성경화증처럼 병명으로는 내가 처음 듣는 단어였다. 이 삼음절밖에 안 되는 단어가 전 세계를 몇 년 동안 혼란 속에 빠트리게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유 초 중 고 대학교 또한 1학기 입학식과 개학을 앞두고 혼란의 연속이었다. 나도 중등 교사로서 혼란의 연속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2020년 나는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담임교사는 3월 개학하기 전, 2월부터 1년 동안 함께 할 담임 학급의 학생 명단과 사진 등을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르게 2020년 2월 말부터는 학교로 학부모님들의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학교는 예정대로 3월 2일 개학을 하는 거냐, 만약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을 한 학생이 우리 아이와 같은 반에 있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 등등의 민원 전화가 계속 왔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어느 학교도 이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님과 똑같이 뉴스 보도를 통해서 정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3월이 왔고, 학교와 교사들은 매일 뉴스만 틀어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뉴스 브리핑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3월 2일 개학을 일주일 미룬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뉴스 보도가 나오면, 학교와 교사들은 그때부터 일주일 뒤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시스템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코로나 첫 해에 늦은 개학을 하게 되었고, 2020학년도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코로나는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확산되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원격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학년별로 등교를 해야 돼서, 담임을 맡긴 했지만 나의 학급 학생들을 다시 보려면 2주 뒤에나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학교에 오는 날이 적어지면 자연스레 학교폭력도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학교에 못 오니 사이버 폭력 등으로 학교폭력이 더 늘어났다. 내가 담임을 맡게 된 반도 학교폭력에서 벗어날  없었다.


    요즘은 학교폭력으로 신고 접수가 되면 학교장종결로 끝나지않고, 해당학교가 속해져 있는 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을 종결하게 된다. 그래서 해당 학생들은 관할 교육지원청으로 몇 번 방문해야 될 수도 있다. 내가 담임 맡은 반의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지원청 심의 결과는 서면 사과였다. 이렇게 학교폭력이 대외적으로는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이후에도 나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점점 지쳐갔다.


   2020년 초겨울이었던 어느 날,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악재와 여러 일들로 지쳐 있어도 나는 다발성경화증의 병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뇌 MRI 검사를 했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의 특성상 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뇌 MRI검사를 진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찍어왔던 MRI결과와 비교했을 때 2020년 초겨울에 찍은 MRI에서는 병변의 수와 크기가 더 증가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은 지 5년 동안 괜찮았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국립암센터 주치의 선생님은 나의 MRI 결과에 대해 지난 5년 동안 맞아왔던 주사약을 이제는 변경해야 될지 고민이 된다고 하셨다. 다발성경화증의 약은 함부로 막 바꿀 수 없는 약이고, 한번 복용하게 되면 몇 달 동안 약이 몸에 잘 적응하는지 지켜봐야 된다. 혹시 몸이 약을 거부하면 다른 약으로 또다시 변경해야 되는데 이 과정이 결코 일반 감기약 바꾸듯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와 주치의 선생님은 진료실에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주치의 선생님은 결정을 하신 듯이 말을 이어가셨다.


   "항상 모범적이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한 시험에서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다해서 그 학생이 여태까지 보여왔던 모든 것이 안 좋아지는 게 아닌 것처럼, 내가 5년 동안 이 약으로 병변을 잘 유지해 왔는데 이번에 검사 결과가 좋지 다해서 5년 동안의 치료 과정이 다 안 좋았던 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지난 5년의 결과를 한 번만 더 믿어보고 6개월 뒤 MRI 검사에서 괜찮게 나오면 계속 이 약을 써 보자, 하지만 만약 6개월 뒤 MRI 결과에서도 오늘처럼 좋지 않다면 그땐 약을 바로 변경하는 걸로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5년 동안 맞아왔던 주사약을 평소처럼 받아 오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그날은 마음이 무거웠다.  


   2020년을 코로나라는 악재 속에서 보내와서 그런 건지, 일하면서 내가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건지, 아니면 타지에서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건지, 내 머릿속 다발성경화증의 염증이 증가한 것에 대해 명확하게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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