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에 대한 확신이란, 나 자체를 확신한다는 뜻일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는다는 것은 자존감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얼마나 믿고 확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믿지 못한다고 여겨왔고,
나에 대한 확신 또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뜻밖의 해프닝을 겪고 나를 믿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한게 아니라, 나를 너무도
확신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믿는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속 장소에 가기위해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번의 환승을 해야하는 노선이었다. 평소 버스를 이용하지 않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한번 가봤던 곳이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노선을 확인하고 몇번 버스로 환승해야 하는지를 점검했다. 환승해야하는 정류장에 내렸고 갈아타야 하는 버스가 몇분쯤 도착하는지 전광판을 바라 보는데
내가 타려는 버스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어? 왜 없지? 다시 확인을 해봐도 없었다.
순간 '내가 잘못 내렸나?' 했지만 제대로 내렸다. 그런데 왜 버스가 없냐는 것이다.
얼마나 나에 대한 확신이 철저했는지 버스 노선이 바뀌었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착각 했을거라고는 눈꼽만치도 생각하지 않았다. 앱으로 이렇게 저렇게 노선을 확인하고 한번 더 환승해서 목적지를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도 지난번 갔던 그길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뭔가 잘못됐어!'
여전히 나를 의심하지 않는 뚝심이라니.. 그러면서 그 순간의 느낌은 마치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분명 이 길이 아닌데.. 심지어 지난번 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목적지가 있었다.
갑자기 나만 다른세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묘한 기분은 버스를 내렸는데도 계속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기억이 났다. 지난번에 탔던 버스번호, 그리고 그 버스는 돌고돌아 반대편에 정차했었다.
제 정신을 차리고도 묘한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사실은 틀린것이 라는 것을. 단순한 해프닝이 내게는 큰 울림이었다. 나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는 틀릴 수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다. 아직도 그 순간에 느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뭔가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더 이상한 건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나의 경직된 사고가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못을 빼내면 그 구멍에 다시 박아야 하는 고지식함이 나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열린 사고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낄때도 있다. 내 자리를 누구보다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면서도 누구보다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 날의 해프닝은 꽤 흥미로웠던 시간 여행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