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의 친절을 그리워합니다.
작년 캐나다 핼러윈의 기록입니다.
40대에 난생 처음 마녀복장을 한 저를 비롯해, 저희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하루종일 한걸음도 그냥 걷지 않고 춤추듯 뛰어다녔습니다.
아침에는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핼러윈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전교생이 핼러윈 코스튬을 하고 강당에 모여 패션쇼를 하듯 코스튬 자랑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들도 어찌나 정성껏 분장을 하고 오셨던지, 저희 딸의 담임이신 남자선생님은 보라 가발에 치마, 구두까지 신고 멋쟁이 아줌마로 변신해서 아이들에게 환호를 받았습니다. 강당에 모인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학부모들이 준비해 준 핼러윈 스낵들도 나눠먹고 아이들은 절로 어깨춤이 납니다.
하교 후,
해 질 무렵, 본격 핼러윈 시작 됩니다.
모르는 남의 대문을 용감하게 두들기고 Trick or Treat! 을 외치면 ‘그 모르는 남’이 따듯하게 문을 열고 주먹 가득 사탕, 초콜릿, 스낵을 집어 아이들 가방에 넣어주죠. Happy Hallowe’en! 이란 축복의 인사도 빼먹지 않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신이 나서 2시간 동안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사비를 털어 자신의 집을 멋지게 꾸미고,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스낵을 사서 준비하는 모습들이 고맙고 따듯합니다. 스낵 대신 연필이나 지우개, 작은 장난감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아이들이 추울까 봐 따듯한 난로를 준비한 이웃도 보입니다.
저는 캐나다의 핼러윈을 지내며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자를 선물 받는 아이들의 기분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에게 선물이란 친한 사이에 주고받는 것입니다. 살아가며 이렇게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나 떠올려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최소한 건너 건너 아는 누군가에게 받아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생판 모르는 남에게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핼러윈을 보낸 아이들은 ‘선물은 누구나 줄 수 있고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이웃의 사랑‘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캐나다 핼러윈을 보내며 한국의 2002년 월드컵 거리를 떠올립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길거리에 나가 응원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신나게 응원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전혀 모르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작정 친절했던 그때의 거리 분위기가 너무 신나고 따듯했습니다. 모르는 누군가의 차 경적에 맞춰 응원의 경적을 울리던 그때의 모습은 처음 보는 낯설고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딜 가나 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에서 떨어져 나와보니 더욱더 그 정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을 나눌 마땅한 순간들이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월드컵 때의 그 따듯한 순간들을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겪었더라면, 그 뒤에도 그런 순간들이 매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저는 핼러윈의 기원이나 의미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이들도 캐나다 학교에서 딱히 배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고, 모르는 이웃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날로서 핼러윈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캐나다의 핼러윈은 아이들을 위한 날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파티를 준비하고,
그 아이들이 커서 다시 다른 아이들을 위한
파티를 준비하는 친절이 순환하는 날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파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아이들과 가족들을 축복해 주고 그렇게 사랑받은 아이들이 커서 또 누군가를 축복해 주는 그런 날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