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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와우 3시간전

'평가'의 밤, '리셋'의 아침

'경험자'가 되겠습니다!

일곱 번째, '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에 대해 써보세요.


나는 아침형 사람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날 술을 마시고 놀다가도 밤 12시가 넘어가면 고꾸라졌다 첫 차 시간이 되면 스멀스멀 몸의 알람이 켜졌고 미술대학 4년 내내 개똥철학 담긴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자정을 넘어서면 뭔가 모르게 '졌다'는 패배의 느낌,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부정적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생산적으로 갓 생을 사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체, 정서적으로 아침 시간이 좋고 편안한 아침형 사람이었다.


그래서인가? '밤'이 내게 주는 의미는 그리 밝거나 긍정적이지 못하다. 밤은 등 떠밀린 수동의 느낌, 하루란 시간이 드러낸 것을 지우고 싶은 지우개의 느낌이다. 때문에 '선명'해진다는 의미의 긍정성보다 '돌아봄', 부정을 딛고 더 나아가겠다는 '다짐'의 결연함이 밤에 서린다.


'아~ 오늘은 이거, 저거, 요거 참 많이 하기도 했다! 아주 스펙터클한 하루였어!',

'오늘은 종일 뒹굴었구나~ 아으... 시간을 죽였네... 그래도 뭐... 필요한 시간이었겠지.',

'내일은 이거랑 그거 해야 한다~ 아~ 바쁘겠네~'

밤에 남겨지는 것의 대부분은 평가. 솔직히 잘하고 채운 것보다 부족했고 아쉬운 것이 주로 남는다. '왜 이랬나 싶고, 뭐 하는 거냐?' 싶은 자책과 '내가 그렇지..' 일기도 하는 비난. 그렇다고 어린애 마냥 마음으로 엉엉 울면서 나뒹구러 지지도 않지만 비난과 응원의 시소 타기에서 많은 순간 수평을 이룬 거처럼 보여도 안쪽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평가 앞에 작아지는 아이가 늘 있다.


'결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갖다 붙인,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 돈, 명예, 전문성 모든 것이 뭉쳐진 덩어리. '결과'라는 단어 앞에 자신 있게 고개를 든 적은 없었던 듯하다. 늘 부족하다 생각했고 그래서 뭔가를 계속하려 했던 시간들. 그래도 꾸준히 원하는 것을 쫓고 해 나가는 시간들을 통해 예전만큼의 두려움과 다다르지 못할 거라는 비관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평가, 결과'가 깃든 은 여전히 버겁다. 별로다.


'패배감, 부적절함, 수동성,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밤'을 떠올리며 가졌던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내가 지금 나를 어찌 바라보고 있는가?를 점검하니 모두 받아들여진다.

반대로 '시작하는 시간, 다시 해 볼 기회, 가능성, 새로고침'이 가능한 '아침'은 나에게 호감이다. 매우 좋다. 스스로를 '아침형 사람'이라 칭할 만큼 그 시간이 반갑고 몸이 반긴다. 어쩌면 깊이 자리한 자격지심을 극복하고 싶단 마음이 '기질적이다' 생각할 만큼 거세게 작용하는 것이려나?


일곱 번째 글감이었던 '밤'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감춰져 있던 것을 들춰내고 아픈 자리를 다시 꾹 누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래도 하루 내내 계속 글을 쓰고 엎으며 발행까지 가능하게 한 것은 아파도 들여다 보고 생각과 감정에 숨은 의미의 퍼즐을 맞춰 보는 힘이, 계속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해 나갔던 경험에 커졌음이지 않을까!

밤이 좋을 날을 쫓고 싶진 않다.

평가 앞에, 결과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유니콘과 같다는 걸 짐작하기에. 지난 몇 년간의 시간처럼 나에게 좀 더 친절하고 자비롭게, 존중하며 쭉 '나를 경험'하고 싶다. 경험을 통해 느끼는 기쁨과 고통, 괴로움, 즐거움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거란 것을, 삶을 달리 바라볼 다른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 믿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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