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예술, 그리고 공동체

심보선의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고 쓰다.

by ABB


시인이자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심보선의 산문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사람들은 '시인 심보선'과 '사회학자 심보선' 사이의 어떤 괴리감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와 사회학은 정반대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문제를 향한 냉철한 시선과 논증을 필요로 하는 그의 학문과,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필요로 하는 시의 공존은 언뜻 봐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일, 시를 쓰는 일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서 평행선을 달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첫 산문집은 바로 두 가지 선의 첫 교차점에서 시작했다.



책은 세 가지 주제를 두고 이야기한다. 영혼, 예술, 공동체에 대한 그의 칼럼은 순서대로 1부부터 3부까지 이어졌다. 작가는 사회학을 하는 그의 좌뇌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를 쓰는 그의 우뇌로 그 문제 속에서 영혼과 예술, 공동체를 발견한다. 그의 모든 칼럼은 다 그런 방법으로 글을 풀어갔다. 그렇게 그의 글을 한 단어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가 시를 쓰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학문의 영역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이론으로 보이고, 시의 영역으로 보는 문제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영혼은 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성좌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태도들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 속에서, 모종의 신호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때 영혼은 일상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지리멸렬과 강박과 예속에 대해 매 순간 저항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색하게 한다. 영혼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거나 계몽된 상태에 다다르게 하지 않는다. 영혼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영혼은 다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순간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한다. 그것은 놀랍도록 웅변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비참할 정도로 어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은 최소한 그 말과 행동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 것으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영혼에 대한 그의 사유가 엿보이는 글이다. 그러면서 나의 영혼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영혼이 말과 행동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표현하라는 마지막 구절이 나에게 적용이 된다면, 그 이유는 나의 글쓰기 활동 때문일 것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차분히 정리하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나의 생각과 주장을 내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실력이지만, 이 일을 좀 더 능숙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글을 쓰는 나의 영혼은 나에게 어떤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좌우하는 일은 그런 영혼이 할 것이라는 예상도 해 본다.



작가는 나와 같이 글을 쓰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시를 쓴다는 점에서 좀 다른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시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비록 어떤 사람은 시를 쓸데없는 일이라 치부하지만, 세상에는 작가처럼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주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사랑하고 있고, 그렇기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 어떤 것은 눈으로 직접 볼 수도, 또는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분노가 결국 미약하게나마 두 가지를 바꾸고 세상을 좀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분노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친구를 잃고, 살던 곳을 잃고, 일할 곳을 잃었다. 잃은 그들은 부당한 이유로 그것들을 잃었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사실들이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저편에 먼지와 함께 묻혀가고 있었기에, 시인은 후대의 다른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노래했다. 일상의 리듬 속에 새겨야만 하는 그 아픈 기억들은 결국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만들어가는 성장통이 된다는 사실을 시 쓰는 영혼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묻는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시간 속의 풍경은 환한가.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여전히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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