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헤어지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헤어져도 같은 공간에서 계속 숨 쉬며 살아가겠지만, 어쨌든 이전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상대의 세계에 나를 밀어 넣고 내 모든 것을 적시는 일이지만, 그만큼 상대방도 나의 세계에 흠뻑 젖는 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시콜콜한 일상과 자잘한 취향을 공유하고,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언젠가 찾아올 미래를 그리며 지내던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닮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연인이 그러하듯이, 어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가 서서히 이별을 생각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불확실한 미래와 이전과 같지 않은 열정으로 인해 연인은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이별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남녀의 사랑을 영화로 찍는다고 가정했을 때,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 돌아설 때일까?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카메라는 사랑하는 이를 닮아가던 내가 상대방을 지우고 다시 혼자서 살아가는 순간을 모두 담을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여기서 이별 후 남녀의 모습이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저 지루한 통념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츠네오’와 여자 주인공 ‘쿠미코(조제)’의 모습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츠네오는 조제와 헤어지고 새로운 여자 친구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주저앉아 오열하지만, 조제는 새로운 전동기와 함께 장을 보며 계속해서 생활을 이어나간다. 왜 두 남녀의 결말은 다르게 나타났을까?
츠네오의 세계
먼저 츠네오를 살펴보자. 그는 마작 방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집에 돌아가던 중에 조제를 처음 만나게 된다. 비록 ‘카나에’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그는 다리가 불편한 조제와 함께 공원을 가거나 대신 장을 봐주는 등 그녀를 돕는다. 나중에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조제의 사랑을 깨닫고 그녀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같이 여행하던 중에 사소한 문제들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제가 눈치채자, 그녀는 그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영화 후반에 츠네오는 조제와 이별하고 나서 이렇게 독백한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물론 츠네오는 첫 만남부터 이별의 순간까지 조제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이웃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싫다는 할머니를 설득하여 집을 고쳐주는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것도 그였고, 조제와 함께 지내면서 세상 바깥으로 나갈 용기를 준 것도 츠네오였다. 하지만 사귀기 전부터 여자 친구였던 카나에에게 조제와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떠벌리거나 가족들에게 소개하려는 계획을 계속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조제를 향한 츠네오의 사랑은 동정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둘의 관계는 어느 한 사람이 끝내 극복할 수 없었던 한계로 인해 끝이 났다. 그를 비겁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나중에 두 사람이 보여줬던 이별 뒤의 모습을 보면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고통을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장면이 현실의 모습과 더 닮지 않을까? 이별에서 서로에게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조제의 세계
조제라는 이름은 사실 본명이 아니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쿠미코로, 조제라는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에서 따왔다. 어렸을 때부터 다리가 불편하고 집도 가난했던 그녀는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탐독하며 지냈다. 소설, 잡지, 교과서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는 일은 바깥으로 쉽게 나갈 수 없었던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이자 학교 공부와 같았다. 조제와 처음 만났던 새벽의 산책도 조제가 바깥공기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다.
불편한 몸으로 할머니 없이 살아갈 미래가 두려웠던 그녀는 츠네오와의 만남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츠네오와 사귀자마자 한 일은 바로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구경하는 일이었다. 조제는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그에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호랑이를 보는 일이 남자 친구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 혼자 삶을 살아갈 용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너랑 세상에서 제일 야한 짓을 하려고. 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네가 없어지면 난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뭐 그래도 괜찮아’
여행 중에 묶었던 러브호텔의 물고기 방에서 사랑을 나눈 후, 그녀는 위와 같이 말한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고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던 시절에 츠네오를 만난 조제는 이별과 동시에 이전처럼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을 예감했다.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츠네오와 함께 했던 사랑의 추억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제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해의 외로운 ‘물고기’였던 조제는 이제 혼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볼 수 있다. 한때 아무도 없는 새벽에만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산책하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츠네오보다 더 많은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는 조제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가졌던 감정이 동정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이별 후에 츠네오는 전 여자 친구 카나에를 다시 만나서 같이 걷다가도 오열하지만, 이별 후에도 조제를 ‘친구로 지내지 못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연인’이라고 추억하기도 한다. 혹자는 마지막 눈물의 원인을 조제에 대한 감정이 그저 동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그녀를 떠난 것이 한심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끝까지 자기 생각만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가 이별하고 나서도 한 번도 그녀를 찾아간 적이 없고 조제도 그를 찾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와 같은 독백이 동정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끝난 연인 관계의 방증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의견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 만약 그의 마음이 동정에 더 가까웠다면, 나중에 스스로 그저 도망쳤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인정할 리가 없다. 다만 현실이라는 벽에 비춰볼 때, 젊었던 두 사람의 관계에서 조제가 츠네오보다 더 용기 있고 성숙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인 관계에서 언젠가 한 명은 지칠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그것이 츠네오가 될 것이라는 점을 조제는 처음부터 각오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시작부터 뻔히 결말이 보이는 관계를 왜 시작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성장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