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육아 일기
막내 딸 부부가 “일본 선교사” 준비를 위해 열흘간 해외에 나가면서 4개월 된 손주를 돌보게 되었다. 딸은 “시온이의 하루”라는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갔다.
잠자는 시간, 목욕시키는 시간, 분유 먹이는 시간과 분량까지 꼼꼼히 적혀있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세 자녀를 양육하였고, 손주 두 명을 키웠고, 또 교회에서 10년이상을 갓난아기부터 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던 터라 자칭 아이 양육에는 전문가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겁이 났다. 행여 아프기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첫째 날 긴장이 되었는지 새벽2시쯤에 잠이 깨었다. 밤에 수유는 한 두 번하고 아가는 잠을 잘 자고 일찍 일어났다. 딸은 처음으로 아가와 떨어져 불안했는지 아침부터 영상통화를 했다. 아가는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는지 눈이 빤짝거렸고, 손발의 놀림이 빨라졌다. 아기를 돌보는데 있어서 나만의 원칙을 정했다. 청결과 빨래는 밀리지 않고 하고, 젖병은 바로 씻는 것이다.
둘째 날 잠도 잘 자고 응가도 잘하고 맘마도 잘 먹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오후에는 외출을 할 일이 있어서 남편에게 아가 돌봄을 맡겼다. 나도 바깥바람을 쐬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와서 보니 남편이 분유를 주다가 젖병 뚜껑을 잘못 닫아서 옷과 이불에 쏟았다고 한다.
‘역시 남자들은 섬세하지 못해서 아기 보는 것은 힘이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남편도 손주 보는 재미를 알게 하고 싶었다.
셋째 날 아가는 목욕을 시키니 오후 8시에 잠을 자더니 목이 마른 것 같아 분유를 주자 먹고 잠을 자고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서 웃으며 놀고 있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옹알이도 하고 목소리도 커진 것 같았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옹알이에 대답도 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누워있기 싫다고 잠시만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놀아달라고 부르다.
넷째 날 아가가 다행이도 울거나 보채지 않고 순해서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아기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조금 지친것 같다. 무엇보다도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했다.
다섯째 날 날이 흐리고 하루 종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바람 부는 소리를 내면서
“시온아, 할미 따라서 해봐 푸우~ 푸우~”
그러자 아가는 내 입을 보더니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입을 쩝쩝 거리고, 오물오물하더니
“푸우~푸우~”
“어머, 어머, 시온이가 푸우~ 를 하네. 여보!! 빨리 와 봐요! 시온이가 푸우~를 해 요 깔깔깔….”
거실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남편을 크게 불렀다.
여섯째 날 아가는 천사이다.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아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맛사지를 해 주면 생글생글 좋아한다. 머리카락 숱도 많고, 동그란 얼굴에 눈은 왕 눈에도, 코도 오똑하고, 입도 도톰하고, 귀도 이쁘고, 포동포동 손과 발의 움직임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다. 부드러운 아기 피부에 살을 부비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 어머, 어쩜 아빠랑 붕어빵이네.”
일곱째 날 딸과 사위는 아기가 보고 싶은지 아침과 저녁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목욕을 시켜놓으면 개운한지 잠도 잘 자고,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아가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술사”인 것 같다.
여덟째 날 요즈음 시대는 아이들 키우기가 편리한 것 같다. 아이템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분유 제조기와 데우기, 젖병 세척기, 흔들의자, 종이기저귀, 외출 시 먹일 수 있는 일회용 분유, 세탁기와 건조기, 목욕시키기 위한 다양한 물품들이 있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는 천으로 만든 기저귀를 빨아서 석유난로에 삶고, 널고, 말리고, 장마철이면 기저귀가 부족해서 애를 태웠던 일들도 많았었다.
아홉째 날 이제 하루만 지나면 아기 보는 날도 끝날 것 같아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딸은 여러 번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큰 탈 없이 손주 육아 돌봄이 마칠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다.
열째 날 드디어 육아에서 해방이다. 딸 부부는 지친 몸으로 돌아와 아기를 보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엄마! 고생했어요.”
나를 꼬옥 안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딸의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로서 딸에게 할 일을 한 것 같아서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 손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