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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풍경(첫 번째 풍경)

인생회고

by 광주 이혜숙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여덟 번의 이사를 다녔다. 짐을 풀고 다시 싸는 일만큼이나, 이사 다닌 집은 저마다의 깊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1958년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전주로 이사했고, 국민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직장생활을 하였다. 짐을 풀고 되돌아보니 어렵고 힘든 때도 있었으나 행복했던 날들이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여러 곳을 이사를 하게 된 것이 나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있었던 것 같다.

스물두 살 되던 해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을 갖게 되었고 나의 인생도 달라졌다.

당시 신학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과 결혼하여 소중한 1남 2녀를 낳았다. 우리 부부는 삼 남매와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가정예배와 새벽기도를 하였다. 아들이 몸이 허약하고 성장이 더뎌서 20년 동안 눈물로 기도했는데. 아들을 위한 기도는 나를 훈련시키는 시간들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자녀들 양육에 있어서 큰 힘이 되어주셨다.

막내가 다섯 살 되던 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신학과 상담, 그리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게 되었다. 그 후에 교회 전도사로 일하였으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배웠고.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방황하는 그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웰다잉상담사(well-dying)에 도전하였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목사로, 나는 전도사로.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들도 목사가 되었고, 큰딸은 목사 사모로, 작은딸 부부는 일본 선교사로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달려오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지금은 “빛고을 노인 건강타운”에서 일본어도 배우고, 문학반에서 자서전 쓰기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주말농장에서 채소도 가꾸고, 맨발 걷기도 하며, 가끔 여행도 다니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58년 개띠”로 오빠가 별명으로 불러준 “발발이”처럼 열심히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옆에서 말없이 지원군이 되어준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이 한없이 고맙다. 또한 믿음으로 잘 자라준 아들과 두 딸, 그리고 착한 며느리와 듬직한 사위들에게 고맙고, 사랑하는 손주 라헬, 라온, 시온, 하온이 건강하게 잘 자라 준 것도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다.

우리 가정을 위해 묵묵히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어준 모든 분들에게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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