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12
12. 참교육에 대하
나와 안수하는 부천의 한 학교 앞 분식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역시 떡볶이는 학교 앞 분식집이 젤 맛있네요.”
“저는 김치볶음밥으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떡볶이와 볶음밥을 주문하고, 학교 후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곧 학생들이 하나, 둘 저 문으로 나올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진언이를 괴롭혔던 일진들을 찾아 뒷골목으로 데려갈 참이었다. 나와 안수하는 먼저 와서 주문을 했고, 방기순과 나진언은 ‘복수혈전’이 벌어질 장소를 둘러보러 갔다.
분식집의 앞에는 거대한 솥단지가 놓여있었다. 주인아저씨는 그 안에 담긴 김치볶음밥을 종이그릇에 담아 옆에 선 아줌마에게 넘겼고, 아줌마는 계란프라이를 그 위에 얹어 손님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이곳에서는 떡볶이보다 김치볶음밥이 더 많이 팔리고 있었다.
“여기 떡볶이랑 김치볶음밥 나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볶음밥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일회용 수저로 프라이를 꾹꾹 눌러 쪼갰다. 숟가락이 물러서 밥이 잘 퍼지지 않았다.
“흐음, 맛있는 냄새… 어디 한번 먹어볼까요?”
“그래요, 최후의 만찬일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먼저 김치볶음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3천5백 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제법 먹을 만했다. 밥알이 꼬들꼬들해서 좀 팩팩하긴 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 또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너 요즘 나를 보는 눈빛이 너무 평범해.”
분식집 안쪽에서 볶음밥을 먹고 있던 커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돌아보니 청바지에 노란 반팔티를 입은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볶음밥을 오물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문득 대학시절 노란 옷을 즐겨 입던 현서가 떠올랐다. 옆에 선 키 큰 남학생이 화들짝 놀라서 뿔테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건 영락없는 내 모습이었다. 여학생은 못 본 척 밥을 계속 삼켰다. 그제야 남학생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랬니? 점수가 안 나와서 그런가 봐.”
“그래서?”
“너 몰랐어? 니가 웬즈데이 수하보다 예뻐.”
수험생 커플인 듯했다. 그 말에 여학생이 풋, 하며 웃었다. 밥풀이 내 목에 튀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거기, 밥풀이요.”
안수하가 뒤늦게 밥풀을 발견하고 여학생처럼 풋, 웃었다. 나는 여학생의 입에서 튄 밥풀을 조심스레 목에서 떼어냈다. 되도록 티를 내지 않았다. 어린 커플이 알아차리고 미안해하는 것조차 불편할 것 같다. 왠지 대학시절의 현서와 나를 방해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예쁘지요?”
안수하가 마스크를 살짝 들어서 못난이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 것으로 보아 조용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을 보니, 정말 낯이 익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 같은데, 가만, 그러고 보니 웬즈데이의…’
무언가가 퍼뜩 떠오른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한 가지를 묻고자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우리 것도 시켰어요?”
곧 방기순과 나진언이 분식집에 들어섰다. 나진언의 물음에 안수하가 먼저 답하였다.
“아니, 시키면 바로 나오던데?”
나진언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면서도 계속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를 자꾸 중얼거렸다.
“이제 난 참지 않을 거다. 너희는 다 죽었어.”
나는 볶음밥을 우물거리며 나진언의 핸드폰을 넘겨다보았다.
- 뭐? 이 미친 새끼가, 학교는 안 옴?
- 너희들 면상 보기 싫어서 안 갔다.
- 헐… 뭐?????? 너 나진언 맞음?
일진들은 갑작스레 대담해진 나진언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어디야? 돈은?
- 너희 줄 돈 없어 병신들아.
- 씨발, 넌 진짜 죽는다. 어디냐니까!
- 밖으로 나오면 된다. 분식집이다.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고, 나진언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떨림이 두려움보다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진언은 분명 엷게 웃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 나온데요. 기다리래요.”
“응? 그래, 이거 마저 먹고, 으음…”
방기순은 떡볶이 국물에 버무린 계란을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마치 그 계란이 일진들의 운명이라는 듯이. 사방으로 튄 떡볶이 국물이야말로 녀석들의 핏물과 같다는 듯이.
잠시 후, 수업을 끝낸 학생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후문이라서 그런지 선생들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오네요.”
나진언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먼발치에서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꺽다리와, 딱 그 녀석을 반으로 눌러놓은 듯 스팸처럼 네모진 뚱뚱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주위로 삐딱한 차림새의 남녀 학생들 서너 명이 다른 학생들을 툭툭 치면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이내 분식집 앞에 비장하게 서있는 나진언을 발견했다.
“어? 찐따 새끼, 수업도 안 들어오고 우리 기다렸냐?”
“돈은 가져왔어? 카톡 씹은 거 3백 대다.”
“씨발년아, 어디서 계속 쳐다봐. 눈깔 안 깔어?”
여기저기서 욕이 날아들었다.
“이, 이 나쁜…”
나진언이 간신히 입을 열어 뭐라고 대꾸를 하려던 참이었다.
“괜찮다, 진언아.”
방기순이 나진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앞장서서 일진들에게 한번 눈을 부라렸다.
“어라? 머리 벗겨진 아저씨는 또 뭔데?”
“헐, 니네 꼰대냐?”
“뭐예요? 처 맞기 싫으면 꺼지세요.”
녀석들은 계속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방기순은 혀를 끌끌 차면서 기세등등하게 먼저 옆 골목으로 빠졌다.
“따라들 오지.”
나와 안수하도 방기순의 뒤를 쫓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옆 골목에 있는 공터에서 방기순의 처절한 응징이 있을 것이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자 평소에는 불량 청소년들을 피해 다니던 나조차도 용기가 났다. 나는 방기순을 따라붙으며 슬쩍 눈에 힘을 주고 녀석들을 보았다.
“어라? 거기 븅신 형, 뭘 보는데요?”
나는 곧바로 눈을 깔고 방기순을 쫓아갔다. 그러나 안수하는 잠시 의연한 태도로 꼿꼿이 서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나진언의 손을 잡고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진언아.”
“그, 그랬어요. 누나…”
안수하가 떨리는 목소리도 말했다.
“이제 괜찮아, 누나가 있잖아.”
그 말에 나진언의 얼굴이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 흥분과 원망으로 붉게 물들었다.
방기순이 지체하는 그들을 돌아보더니, 뭐라 채근하려고 입을 열었다.
“저기, 빨리…”
바로 그때였다.
“이야아아아아아아!”
나진언이 울부짖으며 꺽다리와 뚱뚱이를 향해 돌진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정말 귀청을 찢어놓을 듯한 외침이었다.
“개새끼들아아아아아아!”
그러더니 나진언은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기세로 꺽다리의 배를 들이받았다. 당황한 꺽다리는 나진언의 상체를 끌어안은 채로 나자빠졌다.
“죽어어어어엇! 그아아아아!”
나진언은 침을 흘리며 두 팔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던 뚱뚱이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발로 나진언을 후려 찼다.
“어억!”
그러나 나진언은 다시 고개를 세우고 두 팔을 휘둘렀다. 다른 학생들 역시 흰 눈을 뜬 채 좀비처럼 달려드는 나진언의 기세에 눌려 우왕좌왕했고, 여학생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깡말랐던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주로 때리기보다는 맞는 쪽이었다. 한 번은 동네 친구들과 ‘마라톤 놀이’를 했는데, 말 그대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뛰노는 걸 좋아했던 내게, 동네에서 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땡’ 소리가 나기 무섭게 앞서나갔고, 비교적 가파른 언덕을 돌고 돌아 십여 명이나 되는 형들을 제치고 일등으로 결승선에 들어섰다.
“형들, 나 일등 한 거 맞지?”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칭찬이 아닌, 정말 갑작스런 주먹세례였다. 환하게 웃다가 영문도 모른 채 형들에게 얻어터졌을 때의 그 비통함이란. 그때 형들은 나를 밟으며 이렇게 말했던가.
“모든 운동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는 거야.”
“뭐?”
“마라톤은 원래 천천히 뛰는 거야, 새꺄.”
거기서 대들었다가는 더 맞을 것 같아서 나는 묵묵히 그 발길질을 받아냈다. 마라톤은 원래 천천히 뛰는 거라니? 그러고 보니 내 친구들은 진작 속도를 한참 줄여서 형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진작 ‘게임의 룰’을 체득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동네 어귀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서는 게 보였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채, 넉넉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달려오던 한 남자, 바로 아버지였다. 그 모습을 보자 정말 어디서부터 그런 힘이 솟았는지 나는 온 힘을 다해 괴성을 내질렀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눈물과 콧물, 그리고 핏물을 쏟으면서도 형들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형들이 나를 더 세게 때리려 했다. 그러나 그중 누군가가 아버지를 알아보았고, 이내 형들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개새끼들아아아, 아아, 개새끼들아아!”
나는 그러고 나서도 한참이나 허공에 대고 소리쳤고, 그런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번쩍 들어서 자전거 뒷자리에 태웠다.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서야 깨달았다. 아버지의 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운동장이라는 것을.
나는 아까 나진언이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한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귀찮은 일을 싫어하세요. 아무리 친구들이 일진들한테 괴롭힘 당해도, 적당히 경고만 주고 넘어갈 때가 많아요. 교장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일진들 중 한 놈의 아빠가 판사이기도 하고요.”
녀석한테는 누구에게도 기댈 어른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안수하가 건넨 말 한마디가 나진언에게는 그 자체로 운동장이 되어준 것이다.
“이거 정말 미쳐버렸네?”
일진들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운동선수처럼 팔다리가 울퉁불퉁한 뚱뚱이는 그대로 나진언을 들어서 옆으로 던져버렸다. 때마침 몇몇 패거리들이 더 달려왔고, 그들은 일제히 나진언을 에워쌌다. 꺽다리가 소리쳤다.
“야, 죽여버려!”
“그래, 어디 죽여 봐! 죽여어어어!”
잠시 나진언의 기세에 멍하니 서있던 방기순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대빵 누구야!”
그러나 일진들은 방기순의 말을 무시하고 나진언을 패기 시작했다. 곧바로 내가 쫓아가서 학생들을 말리려 했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에 맞고 그대로 나자빠졌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이라도 해놓을 걸,’
간신히 턱을 어루만지며 일어서려 했지만, 또 다른 녀석들이 달려들어 나를 밟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방기순이 그들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방기순은 한 다리를 허공에 쭉 뻗은 채로 굳어버렸다. 태권도인으로서 어린 학생들을 두들겨 패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 씨벌, 내 발차기는 일반인한테는 살인 무긴데, 하물며 애들한테 어쩌지…”
방기순은 현실을 깨달은 듯 혼자 중얼거리면서 우왕좌왕했다.
“아저씨, 뭐 해? 피겨 스케이팅해?”
뚱뚱이가 그대로 쫓아와 땅에 디딘 방기순의 왼다리를 후려 찼고, 방기순은 곧바로 허공에 떴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어이쿠!”
녀석들한테 정신없이 맞으면서도, 나는 어쩐지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쯤이면 분명히 선생 한두 명은 달려와야 했다. 달려와서 이들을 말리고 중재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누구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후문 앞 골목이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기순이 무력하게 맞는 모습을 보던 나진언의 눈빛에도 얼핏 열패감이 스치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나진언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한쪽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저 녀석 뭐지?’
바로 그때였다. 안수하가 난장판이 된 우리들 사이로 쫓아오더니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 그만 두지 못해!”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연거푸 ‘그만둬!’를 외치며 나진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나진언을 끌어안았다.
“누나! 억, 저리 가요!”
“괜찮아, 윽, 괜찮…”
꺽다리랑 뚱뚱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뒤에서 지키고 서있던 일진 여학생들이 안수하에게 달려들어 머리끄덩이를 붙들었다.
“아줌마는 뭔데 끼어들어? 죽고 싶어?”
학생들이 안수하의 머리채를 붙들고 마구 흔들었다. 그 때문에 곧 안수하의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벗겨졌다.
“어?”
그 얼굴을 본 한 여학생이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곧이어 안수하를 둘러싼 다른 여학생들 역시 기겁하여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소녀들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들은 당황한 듯, 겁먹은 듯, 크게 놀란 듯 안절부절못하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리를 질렀다.
“꺄악- 웬즈데이, 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