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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17.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13

13. 수요일이 좋은 이유

“뭐? 수하라고?”

“그래, 그 웬즈데이!”

“그중에 센터!”


그 말에, 나머지 일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수하에게 몰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우리를 패던 불량한 모습들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날개를 잃고 떨어진 천사를 바라보듯 눈을 끔벅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꺄악, 진짜 수하가 왔다고?”


‘수하’라는 말은 교내에 돌림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일진들 뿐 아니라 정문으로 하교하던 학생들까지 몰려오면서 후문 안팎은 금세 인파로 가득 찼다. 공교롭게도 개중에는 선생님까지 있었다.


“언니, 사인 좀 해주세요!”

“꺄아악, 웬즈데이 수하, 사랑해요!”

“언니, 제발 이 쪽 좀 봐주세요.”


여기저기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안수하는 일어서자마자 나진언을 챙겼다.


“진언아, 괜찮니?”

“응, 누나…”


안수하와 나진언이 주고받은 한 마디에, 주위에 둘러선 학생들이 또 소리를 질렀다.


“나진언이 수하 동생이래!”

“정말? 그래서 지금껏 혼자 논 거야?”

“유명인 동생인 거 알려질까 봐?”

“우와, 대박. 진짜 츤데레네.”

“그런 줄도 모르고 따 시켰네. 어쩌지?”

“진언아, 미안해. 이리 와!”


가관도 아니었다. 나진언의 표정은 오히려 더 비통해졌고, 안수하의 눈빛 역시 차가워졌다. 방기순이 학생들 사이를 헤치며 길을 열었다. 나는 이번에도 안수하와 나진언의 뒤에서 척후병처럼 그들을 쫓았다. 학생들은 골목 끝까지 안수하를 따라왔다. 우리는 도로까지 나와서 택시를 잡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서들 타십시오!”


앞 좌석에 탄 방기순이 소리쳤고, 나진언과 안수하가 먼저 뒷자리에 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뒷좌석에 타는 동시에 문을 닫으려 했다.  


“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


안수하의 말에 나와 방기순은 다시 밖으로 나와 경호원처럼 그녀의 옆에 섰다.


“꺄아악! 언니 예뻐요!”

“언니 제발 사인 하나만요!”

“오늘 수요일인데 제발요.”


안수하는 그런 학생들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외면하고, 어떤 녀석들은 괴롭히고, 어떤 녀석들은 일진입네 하고 뭐라도 된 듯 행세하고… 너희, 그거 알고 있니? 너희는 지금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바로 너희 자신의 미래를 죽이고 있다는 걸?”


안수하의 말에, 좌중이 일순 고요해졌다.


‘아, 역시 그랬었지.’


나는 그제야 걸그룹 웬즈데이를 떠올렸다. 한참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요 몇 년 TV를 보지 않아 잘은 몰랐지만 최근 가장 핫한 그룹 중 하나라는 건 주변에 늘어선 광고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때로는 신비로운 모습을, 때로는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러면서도 늘 진솔함을 잃지 않아 사람들은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수요일이 제일 좋았어요. 주말처럼 푹 쉬지는 못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날이고, 지나온 날을 돌아보는 날이고, 또 앞으로 쉴 날을 기대하는 날이잖아요. 그 힘으로 다시 목요일과 금요일을 살아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연습생 시절부터 제가 멤버들을 설득했고, 대표님한테도 계속 부탁드렸어요. 우리는 수요일 같은 그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쉼표 같은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웬즈데이의 리더이기도 한 수하가 언젠가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했던 수상소감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안수하는 한동안 망연한 눈빛으로, 그러나 한편 결연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도 나처럼 되기 싫으면, 친구에게 잘해.”


나는 최근 웬즈데이 수하가 ‘학폭 논란’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의 중학교 때 친구가 수하와 싸운 일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고, 그게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대중들로부터 탈퇴 압박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 그저 작은 다툼에 불과했지만, 평소 수하가 보여준 이미지를 생각하면 다투고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펜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광고가 먼저 끊겼을 테고, 기업들은 소속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했을 수도 있으리라. 자연스레 내부에서도 수하를 원망했을 테고, 돈이 급한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 한 마디가 더없이 크게 다가왔다.


안수하는 설핏 웃으며 이내 쓸쓸한 얼굴로 다시 택시에 탔다. 도로가에 모여든 학생들은 연신 핸드폰으로 안수하를 찍어댔고, 몇몇은 안수하의 말을 곱씹으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안녕.”


나는 녀석들에게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뒷자리에 타는 동시에 문을 닫았다. 방기순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인천 무의도로 가주세요.”     


택시는 마치 아이를 달래듯 덜컹거리며 달렸다. 날씨는 적잖이 더웠지만 차 안으로 센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그럭저럭 숨 쉴만했다.


저마다 성치 않은 얼굴로, 우리는 한동안 숨을 가라앉혔다. 나진언은 계속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 분을 삭였고, 안수하는 그런 나진언의 손을 꼭 쥐었다. 방기순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급하게 정돈했고, 나는 방금 전 상황을 곱씹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미안하구나, 돕지 못했어.”


앞머리를 정리한 방기순이 후방거울을 통해 나진언을 보았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고 있는 녀석을 살폈다. 한동안 울분을 토해내던 나진언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말했어요.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된다고요. 그러다 보니 화가 나고 슬퍼도, 밉고 짜증 나도, 괴롭고 무서워도 늘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친구들은 그런 저를 이상한 애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진들은 저를 시험해보려고 했고요. 발로 차고 때려도 울지 않는지, 돈을 뺏고 따돌려도 가만히 있는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렇게 억압이 되면 점점 미치게 되거든.”


안수하가 말하면서 쓸쓸하게 웃었다.


“하긴, 우리가 그래서 여기 모인 건가. 지하실에 꾹꾹 눌러둔 감정을 더는 어쩌지 못해서… 아예 그 전부를 바다에 흘려버리려고 말이지.”


나진언이 말했다.


“그 새끼들, 또 만나면 죽일 거예요.”


그러더니 멋쩍게 웃었다.


“아니, 이제 그럴 일이 없으려나?”


안수하가 물었다.


“이제 좀 용기가 생겼니?”

“덕분에요.”


나진언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함께 와주셔서. 소리칠 수 있었어요. 울분을 토할 수 있었어요. 싸울 수 있었어요. 덕분에 많이 홀가분해졌어요.”


어제오늘 한 번도 후드를 벗지 않은 나진언이, 가만히 후드를 내리고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야 뭐 한 것도 없는데, 그보다 수하 씨가…”


방기순이 후방거울로 안수하를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요즘 가수에 관심이 없어서 못 알아봤네요. 그래도 인기 걸그룹이라면, 이 일도 매스컴에 노출될 텐데요.”


안수하가 담담한 얼굴로 답하였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걸요. 세상이 저를 버렸고, 저도 이제 세상을 버릴 테니까요.”

“아, 예…”


바로 옆에서 맨얼굴의 안수하를 보고 있자니, 나는 다시 한번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안수하는 정말 아름다웠다. 큰 눈과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같은 표현마저도 그녀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나 한편으론 더없이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문득 내가 머물던 낙원고시원에서 자살한 208호 청년이 떠올랐다. 교정직 공무원에 합격해 놓고 죽음을 선택했던 그 청년. 이제 앞으로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숨 막히게 했을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나는 안수하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로 살아가던 연예인이, 인기를 전부 잃고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리고 그 비난마저 잦아들면 이제 평생 무관심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동인천역의 선로에 뛰어든 내 또래의 남자도 떠올랐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물 없이 살아야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서히 숨이 다해 죽거나, 그전에 스스로 죽거나. 어쩌면 그래서 이들은 진작 바닷가에 모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 쳐다봐요.”


안수하의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합니다. 딴생각하느라…”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수하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앞을 보며 말했다.


“이제는 다 괜찮아요. 마음을 먹으니 편해요. 그리고 진언이를 지켜줄 수 있어서 기뻐요.”

“누나…”


안수하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실은 어릴 때 남동생을 잃었어요. 그것도 심장병으로. 부모님은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어요. 내가 자주 놀래켜서, 장난을 쳐서 심장이 놀랜 게 아닌가 싶었죠. 그때부터였나 봐요. 나는 엄마, 아빠도 그렇게 떠나버릴까 싶어 잠을 자지 못했어요. 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이 잘 뛰고 있나를 확인해야 했지요.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아버지가 부정맥으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는 나도 손목을 그었어요. 엄마까지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으려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 오늘 아침에 안수하가 나진언을 깨우려다가 그의 가슴께에 귀를 대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방기순이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래요. 불쌍한 우리 엄마. 엄마는 나를, 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아빠는 나랑 진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어요. 나는 진수랑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혼자서도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을 걸 아니까. 그때부터는 친구도 사귀지 않았어요. 마음을 주면, 너무 좋아하면 언제 떠나가 버릴까 무서웠으니까요.”


내가 물었다.


“그럼 그 중학교 때 친구는…”

“나한테 먼저 다가와준 친구예요.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늘 곁을 지켜주었죠. 나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요. 하지만 나는 작은 다툼에도 상처를 받고 늘 떠나려 했고, 도망가려 했죠. 남겨지는 게, 버려지는 게 두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그 친구도 지쳤을 거예요. 고등학교 올라가고 연습생 생활 시작하면서 연락을 끊었어요. 그게 그 친구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고요.”


뒷좌석의 가운데에 앉은 안수하는 한동안 말없이 앞만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 무조건 달려갈 거야. 짜짜라짜라짜라 짜짜짠!     


택시 기사의 전화인 줄 알았지만, 아저씨는 묵묵히 운전을 할 뿐이었다. 반면 그 옆에 앉은 방기순은 전화를 보며 갑자기 안절부절못했다.


“언제 이걸 켰지? 아, 어젯밤 신고하려고 켰었지…”

“누군데요?”


나는 슬쩍 그의 어깨너머로 핸드폰을 보았다. 거기에는 ‘울아들’이란 세 글자가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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