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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22.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14

14.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노?

“하…”


보통은 받기 불편하면 그냥 끊거나 꺼버리면 되는데, 아들의 전화만큼은 끊기 어려운지 방기순은 계속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안수하를 방갈로에 두고 바닷가로 나왔을 때, 방기순이 한 말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기 전에 우리 기웅이 목소리만큼은 딱 한번 들어보고 가고 싶소. 네 사람의 복수가 끝나면… 공중전화에 잠시 들렸다가 갈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 방기순의 손과 입술, 그리고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아, 기웅아…”


방기순과 함께 온몸을 떨던 핸드폰이 이내 진동을 멈췄다. 그러자 방기순은 세상이 전부 망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다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아들’이었다.


안수하가 말했다.


“받아보세요.”


나진언이 거들었다.


“어젯밤에 말씀하셨잖아요. 제일 듣고 싶은 목소리라고.”


나도 앞 좌석을 툭툭 쳤다.


“어서요, 아저씨.”


방기순은 다시 벌떡 상체를 세우더니 이내 결심한 듯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소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한 뼘 통화’로 설정되어 있었는지, 그 말은 우리에게도 다 들렸다.


“야이 씨, 빌어먹을 인간아. 어디를 그렇게 처 싸돌아 다니노? 그래 죽는다고 나가서 안 들어오면, 내가 겁먹고 슬금슬금 길 줄 알았나? 내가 태성태권도에 기웅이 보냈다고 삐짔나? 정신 차려라, 인간아. 그러면 진짜 정신 차리고 도장 운영할 줄 알았다. 태권도장은 학원인기라, 어이? 거가 무슨 한민족의 특수한 무예정신을 잇는 수련관이노? 그러니 관원들 다 빠져나가지. 십수 년 참다가, 그래도 어르고 달래다가, 하다 하다 안 되고 이혼서류까지 내밀믄 정신 차릴 줄 알았더만, 뭐? 왜 지 혼자 상처를 처 받고 술독에 빠진 건데? 기웅 아빠, 퍼뜩 온나. 태성태권도도 문 닫았다. 관장이 몸이 아프단다. 간질을 오래 알았다더라.”


방기순이 차마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아줌마는 잔소리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니 죽기만 해 봐라, 알제? 나랑 기웅이까지 내버려 두고, 무책임하게 혼자 뒤질라꼬? 그게 그 빌어먹을, 뭐시기, 태권도 정신이가? 니 그거밖에 안 되는 사내였나? 불알 확 띠고 뒤져라. 그냥 죽기만 해 봐라, 지옥까지 쫓아가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기다. 알간?”

“……”

“대답해라, 이 인간아! 어디서 니랑 황태성이 싸운 거보고, 니 문 닫은 도장에 상담하러 온 학생들도 있다. 쪽지까지 써 붙여놓고 갔데이. 너한테 태권도 배운다꼬.”

“……”


방기순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때, 수화기 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아, 어디 있어. 보고 싶어. 아빠 보고 싶어!”


남자아이가 엉엉 울었고, 그 아이를 따라 엄마도 울음을 삼켰다.


“뒤질라믄 우리도 데리고 가라꼬. 이이? 그냥 나랑 기웅이 먼저 확 죽어뿌까? 그 뭐야, 번개탄?”


‘번개탄’이란 말에 화들짝 놀란 방기순이 엉겁결에 입을 열었다.


“안 돼! 안 된다. 니, 분명히 안 된다고 경고했다. 알지?”


방기순의 대답에 놀란 아줌마가, 애써 울음을 삼키고는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어데고, 이 빙신아!”   


방기순도 소리쳤다.


“몰라, 이 여편네야! 끊어!”


택시는 계속 달렸다. 기사는 이 상황이 뭔가 싶어 우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연기 연습입니다.”


나는 아저씨에게 말했다. 백미러로 슬쩍 안수하의 얼굴을 확인한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아, 그 걸그룹, 저도 압니다. 우리 딸이 펜이거든요.”


안수하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러나 안수하 역시 이내 무언가를 생각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나진언이 먼저 방기순에게 말을 걸었다.


“멋진 아빠였나 봐요?”

“무슨…”

“나도 아빠가 좀 보고 싶어 봤으면 좋겠는데, 이 꼰데는 영영 보기 싫거든요.”

“……”


안수하가 말했다.


“그래도 태성 아저씨라는 분이, 크게 다친 게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방기순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진언이 핸드폰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때 아저씨랑 원수 아저씨랑 싸운 영상, 둘이 나눈 대화까지 다 찍어놨어요. 이거 인터넷에 풀어드릴까요?”

“……”

“제목은 ‘태권 영웅의 비밀’ 어때요? 이거 알려지면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방기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진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라? 나는 아저씨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거야말로 진짜 복수 아녜요? 아저씨를 파산시키고 자살까지 이르게 했는데, 상대도 똑같이 몰락해야 사이다죠.”


방기순이 조용히 말했다.


“어디 좀 보자.”


나진언이 핸드폰에 찍어둔 영상을 재생해서 앞 좌석으로 내밀었다.


“여기요.”


그것을 받아 든 방기순이 찬찬히 영상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침울해있던 방기순이 그걸 보면서 갑자기 킥킥거리며 웃었다.


“큭, 내가 이겼어. 내가 녀석을 이겼어. 그래, 그럼 그렇지.”


특히 황태성과 나눈 대화를 돌려볼 때는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할머니처럼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자식, 천벌을 받을 놈. 그러니까 입에 거품이나 물고…”


나진언이 말했다.


“태권도장 밖에서 누가 영상을 찍어서 벌써 올렸을 수도 있어요. 아저씨 도장에 누가 찾아왔다는 걸 보면.”

“큭큭큭, 내려찍기에 쓰러지는 놈의 면상을 봐! 역시, 그때 내가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면 올림픽 2연패가 아닌, 3연패도 했을 걸?”

“아저씨?”

“천벌 받을 놈.”

“그거 올리지요? 영상뿐 아니라 대화까지 세상에 알려지면…”


방기순은 금세 침울해진 얼굴로 답하였다.


“놈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그때는 뇌전증 같은 건 없었는데, 이제 그런 게 생긴 걸 보면… 놈도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얼마나 괴로웠겠어.”

“네? 아저씨?”

“녀석도 시합 뛰면서 많이도 맞았겠지. 이래저래 뇌가 고장 났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요, 아저씨를 이렇게…”


방기순이 핸드폰의 어딘가를 꾹 눌렀다. 그와 동시에 나진언의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컴퓨터 파일을 지울 때 나는 소리였던가? 나진언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아저씨 지금 그 영상 지운 거예요?”


방기순은 좌석에 기댄 채 핸드폰을 뒤로 내밀었다.  


“복수는 다 했어. 이 정도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저씨는 파산까지 하고 죽으려고까지…”

“녀석이랑 싸워서 이겼으면 됐어. 그걸로 됐다.”

“하아, 진짜 이거 아까워서…”


방기순이 조용히 말했다.


“너도 알잖아. 차라리 맞는 게 낫지, 카톡감옥 같은 데 끌려 다니면서 가상공간에서 계속 욕먹고 괴롭힘 당하는 거… 그 끝나지 않는 족쇄랄까, 그 고통이 어떤 건지를 말이야.”


안수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원한 올가미지요.”  


나진언이 핸드폰을 받아서 후드 티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아휴, 뭐 아저씨 결정이니 알겠어요.”


방기순이 말했다.


“미안하다. 나는 더 심한 복수를 해주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면 태성이 녀석이랑 다를 게 뭔가 싶고… 그냥 줘 팬 걸로 됐어.”

“저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요. 그냥 저는 아저씨가 지금까지 당한 걸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서…”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우리는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했고,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을 했고, 전에는 선택하지 못한 걸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이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 나와 같은 처지에서, 나와 같은 생각에 공감하고,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자체로 마음이 꽉 차오르는 기분. 이걸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나진언이 멋쩍은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다음은 누가 복수할 차례예요? 방 아저씨랑 나는 이제 됐고, 석정이 형, 아니면 누나?”


나도 안수하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참 누나, 그 사기꾼 보이스피싱범 있잖아요? 화이트해커 카페에 올렸는데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그 사이, 안수하랑 나진언은 우리가 모르는 대화를 많이 나눈 것 같았다. 어젯밤에 듣기로는 그녀가 사기를 당했다고 했는데, 그게 보이스피싱 사기였나 보다. 하긴 나도 그 새벽에 참 많은 사실을 털어놓았었지.


“가만, 석정이 형도 엄마가 보이스피싱 당했다고 했죠?”

“그랬지.”

“그러면 카페 형들한테 좀 더 도움을 청해볼까요?”

“그, 그게…”


나는 막상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나는 어디까지나 세 사람의 자살을 유예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을 뿐, 딱히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안수하가 내 눈치를 보더니 슬쩍 먼저 손을 들었다.


“나부터 만나러 가도 될까요?”


나진언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장 재촉해 볼게요. 몇몇 형들은 금융범죄 쪽으로는 날고 기거든요.”


안수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선정이…”

“그게 누군데요?”

“중학교 친구.”


그 말에, 우리 셋은 깜짝 놀라 안수하를 쳐다보았다. 안수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처음에는 선정이가 정말 미웠어요. 그 애가 인터넷에 우리 얘기를 올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고, 펜들이 등을 돌리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처음엔 그저 사실이 아니라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했어요. 무서웠으니까요. 추락하는 게 두려웠고, 저를 사랑해 주던 많은 이들로부터 버려지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결국 이렇게 또 내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가는구나…”

“누나…”

“그래서 선정이가 원망스러웠어요. 맞아요. 복수를 한다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그 애한테 하는 게 맞을 거예요.”


방기순이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저는 차마 여자는…”   

“저는 그런 식의 복수가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


안수하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만나보고 싶어서요. 인터넷에 학폭 논란이 생겼을 때, 저는 인기가 떨어지고 대중의 사랑이 식을 것만 걱정했지 정작 선정이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내가 가장 힘들 때 선정이가 다가와 줬는데, 선정이가 얼마나 힘든 지는 알지 못했어요. 순서가 바뀐 거예요. 지금은… 많이 늦었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그 애를 보고 싶어요.”


방기순이 물었다.


“그 사기꾼 녀석은 안 잡아도 괜찮을까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으니까요. 원한을 풀든 오해를 풀든 한 사람에게만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안수하가 결심한 듯 기사에게 말했다.


“그러면 지금 노량진으로 가주세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물었다.


“같이… 가주실 거죠?”

“물론이죠.”


택시는 이내 다시 방향을 틀었다. 안수하는 가면서 마치 대사를 외우듯 이런저런 말들을 혼자 읊어보았다.


“선정아, 잘 있었니?”

“선정아, 오랜만이야.”

“이게 얼마만이니?”

“반가워 선정아, 안녕?”


심지어는 나진언이 상대역(?)이 되어 안수하의 말들을 받아주거나 반박해보기도 했다. 안수하가 친구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잔뜩 숨을 죽인 채 손을 모으기도 했다. 다행히도 친구는 하숙집 근처인 노량진의 한 카페에서 안수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거 진짜 내가 더 땀나네요.”


직접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마치 자신의 사춘기 시절 친구를 만나러 가듯 초조해했다. 노량진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손바닥에 난 땀을 닦기 위해 연신 바지를 쓸어야 했다.


“여기에요.”


안수하의 말에 택시가 멈추었다. 방기순이 카드를 내밀며 기사에게 들으라는 듯이 매니저처럼 말했다.


“촬영장에 다 왔습니다. 다들 대본연습 다 했지요?”


그러나 택시 기사는 결제가 끝났는데도 출발하지 않고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방기순이 벌건 얼굴로 물었다.


“지금까지 나눈 얘기, 전부 대사, 그러니까 대본인데요?”  


나진언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사 아저씨, 왜요?”


혹여 여기서 택시 기사가 우리들의 행보를 이상하게 여기고 경찰서에 신고라도 한다면, 앞으로의 계획 아닌 계획들은 다 틀어지고 말 것이었다. 일행들은 바짝 긴장했다.


잠시 우리의 눈치를 살피던 택시 기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딸 주게… 수하 씨 사인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수하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택시 기사가 급히 메모지를 내밀었고, 안수하가 거기에 사인을 해주었다.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아이에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요즘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저도 오늘은 자랑스런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고맙습니다.”


안수하가 차창을 들여다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마치 같은 그룹에 속한 연예인처럼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방기순은 뒷짐을 진 채 헛기침을 하며 기사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진언은 실실 웃으며 안수하의 팔짱을 꼈다. 안수하는 주위를 살피며 다시금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썼다.


“저기네요. 카페 미네르바 부엉이.”


나는 보디가드처럼 한 발 앞서 걸었다. 멀리 한강 너머로 63빌딩이 보였다. 불이문을 돌아서 우린 안수하를 경호하며 함께 걸었다.  


“너무… 늦지 않았겠지요?


안수하가 잠시 멈춰 섰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쪼르르, 부엉이한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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