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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23.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15

15. 미네르바의 부엉이

카페 문이 열리면서 작게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안수하를 지켜보았다. 모쪼록 두 사람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기를, 묵은 원한이 있다면 잘 풀어지기를, 얽히고설킨 이야기와 이야기의 실타래가 잘 풀리며 서로의 상처를 매만지기를. 행여 서로를 원망하고 싸우더라도, 그 긴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를. 해피엔딩이 어렵다면 열린 결말까지는 나오기를.


그러나 내 얄팍한 생각은 전부 기우에 불과했다.


“선정이니?”

“수하니?”


잠시 후 두 사람은 마주 섰다. 검고 큰 뿔테안경을 쓴 친구의 테이블에는 수험서가 놓여있었다. 안수하가 선글라스를 벗고 두 손을 내밀었고, 친구도 안수하를 알아보고 그 손을 맞잡았다.    


“수하야.”

“선정아.”


두 사람은 서로를 다시 한번 불러보았다.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해.”

“아니 내가 더…”

“나야말로…”


둘은 이내 서로를 꼭 부둥켜안았다.      


저녁이 될 때까지, 둘은 울었다. 간간히 한두 마디씩 주고받았으나, 발음이 뭉개져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카페 미네르바 부엉이의 한쪽 구석에 앉아 세 남자는 딴청을 피웠다. 방기순은 연신 찬물만 들이켰고, 나진언은 콜라를, 나는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기순은 다시 차가운 녹차를 시켰고, 나진언은 사이다를, 나는 아이스 카라멜라떼를 마셨다.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있으니 정작 안수하와 친구의 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귀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여자들은 주로 남자친구나 소개팅 얘기를 했고, 띄엄띄엄 보이는 남자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시험이나 게임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간간히 스프링 단어장을 펼쳐놓고 스터디를 하는 그룹도 보였다.


“그런데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무슨 뜻이지?”


한쪽에서 이 카페와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입은 남자가 얼음을 우적우적 씹으며 묻자, 맞은편에 앉은 비슷한 차림새의 남자가 답하였다.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그리스 신화에는 아테네로 나올걸?”

“아, 아테네, 들어본 거 같아.”

“그 아테나인지, 안테나인지가 황혼녘 산책을 할 때마다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를 데리고 나갔다는 거야.”

“그래서?”

“산책하면서 생각을 했을 거 아냐? 그래서 뭐 철학을 상징한다나, 어쩐다나?”

“쳇, 그러니까 수험생들한테 더 열심히 공부해라, 뭐 그런 뜻인가?”

“그냥 좋은 게 좋다는 거겠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부장님도 나한테 비슷한 말 한 적 있다.”

“뭔 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저녁에 날개를 편다?”

“그래, 오랜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모든 일이 끝난 저녁에야 지혜로운 판단이 가능하다는 뭐 그런 뜻이야.”

“나한테는 야근을 독려하면서 한 말이거든?”

“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저녁에 날개를 펴니까, 너희도 저녁 먹고 복귀해서 날개를 펴야 한다고 말이야.”

“미친…”

“우리 부장님도 철학과 출신이다, 참.”


그 말을 엿듣던 방기순의 얼굴이 웃음을 참느라 벌게졌다. 아직 제대로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치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나진언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섰다.


“나 잠깐 옆에 PC방 좀 다녀올게요.”

“빨리 와.”


나진언이 잠깐 자리를 비웠고, 방기순도 담배를 사러 나갔다. 나는 잠시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서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 엄마, 급히 대학교 때 친구들 만나고 있어서 내일 들어갈 것 같아요.     


어차피 인천 집에 갈 때마다 그런 적이 많아서 엄마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 밥은 꼭 챙겨 먹고, 알았지?

- 네, 그럴게요.     


나는 엄마에게 답장을 보내고 다시 안수하 쪽을 쳐다보았다. 이제 두 사람은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듯 두 손을 맞잡은 상태로 오래 묵혀둔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저녁이 되면서 손님이 늘어선 지 그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은은한 눈빛만 봐도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것 같았다.


방기순이 담배를 피고 돌아왔을 때, 안수하의 친구는 책을 잔뜩 끌어안고 일어섰다.


안수하가 말했다.


“안녕, 나의 마니또.”


친구가 답했다.


“그리웠어, 글구 고마워.”   


친구는 밖으로 나서려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수하는 그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잠시 후 안수하는 우리 쪽 테이블로 넘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미안해요.”


내가 물었다.


“친구가 수험생인가 봐요. 잘 된 거죠?”


안수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곧 무직이 될 테니까, 이쪽으로 공부하러 오려고요. 같이 공무원 시험 준비할까 싶어요.”


그 말에 방기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심이십니까?”


안수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래야 선정이가 안심할 거 같아서요. 곧 죽을 사람이 무슨 공부를 해요.”


방기순이 미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아저씨는, 아들한테 안 돌아가실 거예요?”


카페 미네르바 부엉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방기순의 얼굴은 다시 벌게졌고, 안수하 역시 복잡한 얼굴로 카페 한쪽에 그려진 부엉이만 바라보았다. 그 옆에는 아까 남자들이 얘기했던 문구가 적혀있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때마침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짙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일이 끝난 저녁에야 지혜로운 판단이 가능하다는 뜻이랍니다. 그러니 우리 방갈로로 돌아가서 앞으로의 행보를 논의할까요? 물론 저의 복수가 아직 남았다는 걸, 유념해 주시고요.”


때마침 PC방에 갔던 나진언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형, 누나, 그리고 아저씨!”


안수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찾았어요!”

“뭘?”


나진언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보, 보이스피싱, 우운반책!”    

 



무의도의 방갈로에서 맞은 두 번째 밤. 안수하가 여전히 퉁퉁 부은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하루를 더 묵을 줄은 몰랐네요.”


방기순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택시비도 모두 동이 났습니다. 내일이면 다 끝나겠지요?”


시간을 더 끌기 위해 뭐라도 핑계를 대야 했던 나는 애써 분한 얼굴로 답하였다.


“이 사기꾼만큼은 꼭 잡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만난 사람들과는 근본이 달라요. 범죄자니까요.”


나는 다시 눈에 힘을 주었다.


“나와 수하 씨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놈들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 거예요.”


방기순의 표정이 다시금 비장해졌다. 지금껏 늘 멍한 표정만 짓고 있던 나진언이 모처럼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제가 몇 가지 브리핑을 해드려도 될까요?”


안수하가 웃으며 말했다.


“오올, 브리핑이란 말도 알아?”

“그 정도는 껌이죠.”


나진언이 핸드폰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알바사이트에 ‘건당 2~30만 원’이라고 도배해 놓은 거 보이시죠?”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액 알바로 위장하고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모집하는 공고예요. 여기 회사 이름에는 대기업 금융권을 암시하는 이니셜이 있고, 직책에는 팀장이라고 되어있으니 다른 보험이나 카드모집 알바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나도 카드모집을 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저런 공고를 본 적이 있었다. 업무는 간단했다.      

1. ‘금융기관 팀장’이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그가 말한 장소로 간다.

2. 거기서 만난 사람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현금만 수령한다.

3. 받은 돈을 문자로 지정한 계좌로 송금한다.


이렇게만 하면 건당 2~30만 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력서도 받지 않는다는 소리에 혹했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수상해서 아예 지원도 하지 않았다.


‘아, 그 팀장이라는 사람이 지정한 곳에서 만난 사람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가 되겠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략 비슷한 취지로 얘기하는 나진언의 말을 경청했다. 나진언은 뭔가 으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천만 원, 2천만 원씩 모이면, 그걸 백만 원씩 쪼개서 여러 계좌로 보내야 한데요. 말 그대로 해외에 본부를 둔 진범들한테 보내는 셈이죠.”


방기순이 물었다.


“그래서 그 지원자들이 운반책이라는 얘기지? 그들 중에 한 명을 찾았고?”

“한두 번 하고 마는 것도 아니고, 상습적으로 가담하고 있다면 단순한 알바가 아니라는 얘기겠죠?”

“그런데, 그놈들을 어떻게 찾은 거지?”

“좀 전에 보여드렸다시피 모집공고랑 전화, 이메일, IP주소 정도만 파도 실력 있는 형들은 금방 모집책들을 특정할 수 있어요. 굳이 해커가 아니라도 그냥 모집공고에 전화만 한번 해보면 언젠가는 중책들과 접선할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우선 형들이 그쪽에 문의 메일을 보내서, 수신확인을 바탕으로 하나씩 정보를 빼냈데요.”

“그래서 그 상습 운반책이 있는 곳은?”

“김포 쪽이에요. 일당이 2~30만 원인데 벌써 수령한 것만 천만 단위가 넘으니 상습범이겠죠.”  


안수하가 말했다.


“그렇다면 잡아야겠네요.”


나진언이 물었다.


“석정 형, 정말 그놈 잡을 거예요?”


나는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답했다.


“아무나 한 놈만 걸리면 가만 안 두겠어. 피싱에 가담한 놈들은 다 똑같은 사기꾼이니까. 아니, 사기꾼이 아니라 살인자라고 생각해.”


혹여 복수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게 느껴질까 싶어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건 수하 씨한테 사기 친 놈들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운반책의 집 앞에서 잠복을 하기로 했다. 나진언의 말에 따르면 운반책은 지시를 받는 즉시 움직이기에 언제 집을 나설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만약 CCTV를 신경 써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오면 백프로예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오늘은 일찍 자야겠네요.”


안수하가 말했다.


“정말 마지막 밤이 되겠군요. 우리 잠깐 해변 좀 걸을까요?”


그녀가 가만히 문을 열어젖혔다. 처음 우리가 이곳에 모였을 때 조개껍질로 문짝에 새겨놓은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 하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이 방갈로로 돌아온다.

- 하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복수를 돕는다.  

- 하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는다.  

- 하나. 그렇다고 사람을 헤치거나 대중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 하나. 그러나 위험이 생겼을 때는 서로를 지킨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나진언이 말했다.


“뭔가, 정말 이제 마지막 같아요.”

“그러게…”

“게임의 막판을 앞두고 있는 기분이랄까.”


8월도 어느덧 마지막 주말로 접어들면서 바람이 한 결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어제오늘 해변을 찾았던 늦깎이 피서객들이 상당수 빠져나가면서 무의도도 점점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해변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바닷바람이 충분히 방갈로 쪽으로 밀려들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서지 않고 그대로 방갈로 안에 모여 앉아 바다를 보았다. 얼마쯤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자정이 지난 것을 확인한 안수하가 말을 이었다.


“하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이 방갈로로 돌아온다. 하나,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복수를 돕는다. 이제 석정 씨 복수만 남았네요. 그리고 하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날 한 시에 죽는다. 그게 내일이 되겠지요?”


방기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진언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문득 나는 뭐라도 그럴듯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이제 저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하루뿐이고, 결과가 어떻든 내일 다시 이 방갈로로 돌아와서는 안 되었다.


“음, 그러니까, 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럴듯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속을 내보이는 제안을 하여 저들을 자극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리라.


“음, 그러니까…”


내가 다시 용기를 내서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안수하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큰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아, 참!”

“왜요, 누나?”


안수하가 손에 쥔 무언가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짜잔-”

“이게 뭐죠?”


내가 묻자 안수하가 애써 웃으며 답했다.


“이거, 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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