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는 힘들다고 하세요
새벽 다섯 시 반, 서소리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었다. 작은 관사는 무척 고요했다. 침대, 책상, 옷장, 그리고 작은 창문 하나,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외려 잡다한 물건들이 없이 사람 하나 꽉 차는 이 빈방이 좋았다.
서소리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산 공기가 시원하게 밀려들었다.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였다. 어스름 속에서도 철봉과 그네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 무사히, 감사히 잘 부탁드려요!”
서소리가 손을 모은 채 학교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왠지 운동장의 모습이 낯설었다. 오늘따라 빛이 드리워진 연극무대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장 한쪽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두 눈을 부릅뜬 채 한 남자를 비추었다. 덩치가 큰 남자는 빛을 등진 채 삽으로 뭔가를 열심히 퍼 날랐다.
“설마.”
서소리는 고개를 절레 흔들더니, 그만 웃고 말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
서소리는 어제 오후를 떠올렸다. 미루가 놀이터에서 무릎을 다쳤을 때, 함께 놀던 수진이와 은수가 쫓아와서 말했다.
“곰돌이샘이 있어요!”
곧바로 달려간 보건지소에서 우렁찬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능숙하게 미루를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놀이터의 맨바닥을 가리키며 물었다.
“폐교될 학교 아이들은… 다쳐도, 되나요?”
심하게 떨리던 목소리. 그가 무슨 일을 벌일 수도 있음을, 그때 예상했어야 했다. 서소리는 다시금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그녀는 옷장을 열어 츄리닝을 꺼내 입었다. 곧바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신발장 구석에 챙겨놓은 등산용 삽을 꺼냈다. 호신용으로 따로 챙겨둔 것이었다.
“이럴 때 쓰려고 사둔 건 아니지만…”
작은 삽을 들고 관사 문을 나섰다. 그대로 조깅하듯 운동장까지 달렸다.
우렁찬은 여전히 삽질을 하고 있었다.
- 철썩, 철썩
삽이 모래를 푸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마치 갯벌에서 뒹굴다 온 것처럼 온몸이 땀과 모래에 절어 있었다. 후드티는 등에 찰싹 달라붙었고, 목덜미에선 땀방울이 뚝뚝 쏟아졌다. 봄날이라도 새벽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 삽, 또 한 삽, 퍼서 옮기고 또 옮겼다. 그의 어깨에서 김이 솔솔 피어올랐다.
서소리는 멈춰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요.”
우렁찬이 돌아보았다. 순간 표정이 굳었다.
“어어?”
“꼭 이러셔야 했어요?”
우렁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밤새셨어요?”
“저, 그게…”
“혼자서요?”
“……”
서소리가 한숨을 쉬었다.
“교장 선생님 허락 못 받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우렁찬이 가만히 서서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더니 슬쩍 서소리의 손에 든 것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왜 그걸…”
서소리가 웃으며 답했다.
“자고로, 사고는 같이 쳐야 덜 혼나거든요.”
- 푸웁
우렁찬이 저도 모르게 웃고는, 급히 흙 묻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언제 이렇게 웃었던가. 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를 단속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소리가 조용히 덧붙였다.
“웃고 싶을 때는, 웃어요.”
“……”
“울고 싶을 땐 울고요.”
서소리의 어깨너머로 아침 해가 떠올랐다. 햇살이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에 비치는 순간, 우렁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렸고, 다른 손으로는 팔등을 비볐다. 그러면서 차로 달려가 선글라스를 끼고 후드티를 눌러썼다. 급하게 차를 몰아 학교를 빠져나갔다.
서소리는 한동안 차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았다. 차가 교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멍하니 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지금은 알려고 하지 말자. 다시 고개를 돌려 수북하게 쌓인 모래를 바라보았다. 밤새 혼자 퍼 나른 흔적들. 그 덕분에 폭신폭신해진 놀이터의 밑바닥.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겠지만,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이었다.
“일단 마저 깔자.”
서소리는 작은 삽을 펼쳐서 흩어진 모래를 그러모았다. 그리고는 모래판을 찬찬히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다음날, 또 다음 날 아침. 옥분은 세탁소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보건지소는 이틀째 불이 꺼져있었다.
“거 참, 이상하네.”
밤낮없이 늘 켜져 있던 불이 꺼져있으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사람이 오든 안 오든 항시 문도 빼꼼 열려있었는데, 어제오늘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엄마, 곰돌이샘 진짜 이틀째 문 안 열어?”
그때, 세탁소 구석에서 인형을 안고 놀던 은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수진 언니는 다 나았다고 보여주러 가야 한다는데…”
“쫌만 기다려 봐, 우리 딸. 곰돌이 선생님이 출장 갔을 수도 있으니까.”
은수가 새는 발음으로, 이해가 안 가는 단어를 짚었다.
“튤짱?”
“아픈 사람 고쳐주려고 멀리 갔다 오는 거야.”
옥분은 은수를 안심시키고 앞치마를 벗었다. 잠시 건넌방에 있는 어머니, 순자를 불렀다.
“엄마! 은수 좀 봐줘. 잠깐 보건지소 좀 다녀올게!”
“보건지소? 거긴, 또 왜?”
“아무튼, 금방 갔다 올게!”
옥분은 세탁소 문을 잠그고 보건지소로 달려갔다. 가만히 문들 두드렸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
여전히 조용했다. 옥분은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선생님, 들어가도 돼요?”
안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렀다. 첼로 소리인가? 그러나 다시 귀를 기울이니 악기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끙끙 앓는 소리였다. 옥분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실도 대기실도 불이 꺼져있었다. 옥분은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선생님?”
우렁찬이 이불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모로 누웠다. 축축한 머리카락이 이마에 눌어붙어 있었다.
“선생님!”
옥분이 쫓아가서 머리에 손을 대보았다. 열이 펄펄 끓었다.
“끄응…”
우렁찬이 눈을 감은 채 신음했다.
“햇님아…”
옥분은 우선 수건에 찬물을 묻혀와서 이마에 얹었다.
“햇님아, 미안해…”
우렁찬이 잔뜩 인상을 쓴 채 중얼거렸다. 꿈을 꾸는 건지, 무의식적인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내가 지켜줬어야 했는데…”
그는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깊은 무의식에 남은 잔상, 혹은 상처일까. 옥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침상 옆에는 흙투성이의 옷가지가 널려있었다. 그래, 아무리 체구가 좋아도 밤새 무리했으니 탈이 날 법도 하지. 옥분이 혀를 끌끌 차면서 우렁찬의 옷들을 따로 수거했다. 그리고는 세탁소로 돌아가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동시에 부엌에서 죽을 끓였다.
“무슨 옷이 그렇게 만신창이냐?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옥분의 엄마, 박순자가 흙투성이 옷을 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번에 온 보건의 선생님인데, 학교 운동장에 모래 깔고는 그대로 뻗었나 봐.”
“혼자 저기에 모래를 깔았다고?”
박순자는 혀를 내두르며 가만히 보건지소를 올려다보았다.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 왔나 보네.”
“어르신들은 보건의 온 거, 알고들 계셔?”
“그럼, 당연하지. 순덕이가 벌써 다 얘기했어. 여기에 피난 온 사람이 있다고.”
‘피난’이라는 말에 옥분은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피난이라니?”
“아, 그래. 피신이라고 했나? 아니야, 가는귀는 먹었지만, 분명히 들었어. 피난이라고 했어. 에잉? 그러고 보니 전쟁통도 아닌데 무슨? 순덕이, 그 늙은이가 말을 잘못한 거네.”
“엄마는 뭐, 걱정되진 않고?”
“걱정되긴. 뭐, 의사가 마을에 있어서 나쁠 게 있나? 니 아부지도 의사한테 빨리 갔으면 그렇게 안 갔어.”
“엄만, 또 그 소리!”
옥분은 고개를 절레 흔들고는, 펄펄 끓는 죽을 휘저었다. 그러고 있자니,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스무 해 전, 옥분은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 두운리를 떠나서 도시로 갔다. 그리고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병원에 취직했다. 대도시는 정말로 화려했다. 빛나는 네온사인과 어마어마한 건물들, 도로를 꽉 매운 사람들. 하지만 정신이 없었다. 너무 빠르고 복잡해서 이명이 올 정도였다.
그곳에서 남편 이철순을 만났고, 3년 만에 결혼도 했다. 순한 남자였으나 사업 수완은 없었다. 과일가게를 열었지만 속는 일이 많았다. 엉뚱한 과일을 잘못 띄어오거나, 속아서 비싸게 사 오기 일쑤였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옥분은 간호조무사를 그만두고 과일가게를 도왔다. 하지만 가게는 문을 닫았고, 그다음에는 세탁소도 하고 반찬가게도 했다.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일을 했다.
십수 년을 그렇게 부를 쫓아 헤맸을까.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산골을 내려오다가 크게 넘어지셨단다. 옥분은 장례식장에서 울고 또 울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죄송스러웠다. 옥분은 결국 7년 전 철순과 함께 두운리로 돌아왔다.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은수를 얻었다.
처음에는 마을회관 옆 구판장에서 물건을 띄어 팔았다. 지금은 세탁소 간판만 걸어놓고, 정승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세탁소는 마실방이자, 방범소 같은 곳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르면 차 한 잔 대접하고, 빨래 맡기며 이야기 나누고, 밤에는 불을 켜두었다. 불나방처럼 도시의 부를 쫓다가 놓친 것들을 되찾고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마을 어른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 사이, 렁찬의 빨랫감은 탈수가 끝났고, 김치와 소고기를 송송 썰어 넣은 죽도 완성되었다. 옥분은 먼저 우렁찬의 빨래를 세탁소 앞의 빨랫줄에 걸어놓고, 죽을 따로 커다란 냄비에 담아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보자기에 쌌다.
“엄마, 보건지소에 다녀올게.”
“그래, 넘어지지 말구.”
옥분은 다시 보건지소의 2층으로 가서, 렁찬을 깨웠다.
“선생님, 일어나 보세요!”
“……”
그러나 우렁찬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옥분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직접 약을 찾았다. 몸살에 필요한 약병을 찾고, 직접 우렁찬에게 주사를 놓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놓아보는 주사였지만, 다행히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미지근한 물을 먹이고 조금 기다리니, 열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휴우…”
잠시 후 렁찬이 의식을 조금 회복했다.
“어어…”
“조금 괜찮으세요?”
“이제 죽 드세요.”
옥분이 죽을 떠서 내밀었지만, 렁찬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옥분이 재차 죽을 내밀었다. 하지만 렁찬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괘, 괜, 괘안찮습니…”
그런 렁찬을 보고 있자니, 다짜고짜 화가 치밀어서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힘들 때는!”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뭐만 물어보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이것도 필요 없고, 저것도 필요 없다. 오토바이는 짱짱하다. 살살 타면 된다. 내 뼈가 통뼈인 거 모르냐. 너희 바쁜데 무슨 건강검진이냐. 괜찮다. 나는 괜찮다. 아무렴 백 년은 살겠지. 나는 신경 쓰지 말 거라.
어쩌면 옥분은 자기 자신을 탓하는 건지도 몰랐다. 옥분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했다.
“힘들다고 하세요!”
“……”
“그리고! 도와달라고 해요!”
“……”
“제발! 힘들다고!”
렁찬은 그 말에 한동안 눈을 감고 끙끙거리더니, 이내 가만히 입을 벌렸다. 그래, 그래야지. 그 모습에 옥분도 다시금 의지를 되찾았다. 두 말, 세 말하며 거절하기 전에 죽을 연거푸 입에 넣었다. 렁찬은 몸 둘 바를 몰라하면서도 아무 말도 더 잇지 못했다. 그저 아이처럼 축 늘어져서 옥분이 입에 넣어주는 죽을 받아먹을 뿐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옥분은 따로 소분한 죽과 반찬 한 묶음을 렁찬의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따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앞으로 제가 자주 들를게요. 선생님은 보건의로 오셨죠? 저는 이 마을의 간호사예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제 말도 들어주셔야 해요. 알았죠?”
“그, 그게…”
“선생님이 이 마을에 사람 고치러 온 이상, 선생님도 우리 마을 사람이라고요. 그러니, 먼저는 자신부터 잘 돌보셔야 해요. 잘 먹고, 잘 지내셔야 아이들도 잘 고치죠. 제 말 맞죠?”
렁찬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간호조무사 자격증 있어요. 스무 해 전 거긴 하지만.”
“네?”
“도와드릴게요. 파트타임으로. 아니, 무보수로도 괜찮아요.”
우렁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그건…”
“월급 없어도 돼요. 마을에서 받는 것들 나눠 먹으면 되죠.”
옥분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보건지소가 마을 중심이 되어야 해요. 제 세탁소 말고.”
우렁찬은 한참을 옥분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그건…”
옥분은 돌아서며 말했다.
“돈은 필요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푹 쉬시구요. 오늘은 아이들보고 살살 놀라고 할 테니, 아무 걱정 마시구 푹 주무세요.”
우렁찬은 엷게 웃으며 눈으로 인사했다. 그리고는 참으로 오랜만에, 다음 날 아침까지 깊이, 아주 깊이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