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엽니다 #8

히, 힘들어요, 너무.

by 이하

어느새 초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보건지소 문이 열린 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우렁찬은 하루에 서너 명의 아이를 보았다. 다행히 감기나 배탈, 찰과상 같은 가벼운 증상들이었다. 그냥 놀러 온 아이들도 생겼다. 저학년 아이들은 숨바꼭질하려고 숨어들었다. 우렁찬은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날도 우렁찬은 선글라스를 낀 채 창가에 서 있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햇살이 뜨거워졌다. 창문 너머로 학교 운동장을 확인했다. 그가 깔아놓은 모래 덕분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보건지소 문이 급하게 열렸다.


“선생님!”


서소리가 숨을 헐떡이며, 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가늘게 숨을 쉬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렁찬이 벌떡 일어났다.


“이리, 주세요.”


그는 아이를 받아 진료 침대에 눕혔다. 이제 갓 입학한 남자아이였다. 얼굴이 창백했고, 입술이 파래지고 있었다.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언제부터죠?”

“방금요. 달리다가 갑자기…”


우렁찬은 청진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검지와 약지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는 청진기를 한번 놓쳤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는 손을 폈다가 오므려 보았다. 손금 사이로 땀이 잔뜩 배어들었다.


‘천식, 여덟 살, 그리고 아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잡념을 떨치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그는 먼저 아이의 등을 찬찬히 쓸어주고, 청진기를 가만히 대보았다. 애써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아이의 등을 통해 전해지는 심장박동은 예상보다 빠르고 불규칙했다.


- 쌕, 쌔액…


천명음이었다. 주로 기관지 같은 하기도가 좁아지면서 생기는 마찰음. 숨이 제대로 들고 나지 못했다. 아이의 호흡이 점점 빨라지면서 표정도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자신이 익히 알던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자 우렁찬의 호흡도 가빠졌다.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안 돼, 제발. 이번만큼은. 그는 중얼거리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그 순간, 우렁찬은 아이보다 먼저 자신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는 간신히 두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는 소리쳤다.


“옥분 씨!”


옥분이 세탁소에서 뛰쳐나왔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지만, 잠시 서서 기다렸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은 하늘이보다 먼저 우렁찬을 숨 쉬게 해야 했다. 그가 먼저 용기를 내어 지금으로, 지금 이 순간으로 걸어들어와야 할 것 같았다.


우렁찬이 그런 옥분을 보며 가만히 손을 내렸다. 옥분은 멀리서도 그런 렁찬의 얼굴에 두드러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햇빛 알레르기구나.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심인성인지 모르지만 우렁찬은 여러 가지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그렇기에 옥분은 기다렸다.


우렁찬이 마침내 꼭 쥔 두 손을 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손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입에 댔다. 자신이 앓아누웠을 때, 옥분이 했던 말을 간신히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말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올리려 했다.


“히, 힘들…”


옥분은 기다렸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임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달려간다면, 하늘이보다 먼저 우렁찬이 무너질 것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옥분은 직감했다.


‘아, 햇님이라 했던가.’


옥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우렁찬이 몸살에 걸려 의식을 잃었을 때 되뇌던 이름. 혹시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해 렁찬은 이렇게 괴로워했던 것일까. 그로 인해 햇님에게서 나온 햇살조차 제대로 쐬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옥분 또한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서, 안간힘을 다해 한발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히, 힘들어요, 너무.”


우렁찬이 외쳤다.


“도, 도, 도…”


더 크게.


“도와주세요!”


간절한 목소리가 두메산골 두운리에 메아리쳤다. 옥분은 전력으로 질주했다. 학창시절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처럼 그렇게 언덕을 향해 내달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진료실에 나란히 섰다.


“기관지확장제, 산소마스크요.”

“네!”


옥분은 재빨리 필요한 약과 물품을 세팅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크게 놀랐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천식과 관련한 약품과 장비는 거의 모두 갖추고 있었다. 언제 이런 것들을 또 들여온 거지. 보건지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군청에 요청해도 예산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부 자비로 마련한 것인가. 옥분은 고개를 절레 흔들면서도, 곧바로 약품을 전달했다.


렁찬은 네뷸라이저에 약을 넣었다. 약물을 미세한 입자로 분해시켜, 증기와 함께 숨 쉬게 해주는 연무식 흡입기였다. 손끝이 떨리면서 약병이 흔들렸고, 몇 방울이 옆으로 흘렀다.


‘집중하자.’


그는 아이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다.


“천천히 숨 쉬렴.”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갛게 충혈된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렁찬은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작고 차가운 손에 그의 온기가 전해졌다.


“곧 나아질 거야.”


몇 분이 지나자, 아이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새파란 입술에 조금씩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우렁찬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괜찮을 거야.’


십 분쯤 지나자, 아이의 호흡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우렁찬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다시 청진기를 데고는 숨을 죽여 귀를 기울였다. 커튼을 치고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 처치를 다 하고 난 뒤에는,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렇게 다시 몇 분이 지났을까. 조금씩 천명음이 사라지고, 심장박동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괜찮아, 햇님아.”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아이의 눈에도 초점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햇님아, 아니…”


우렁찬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가 떨려왔다.


“하늘아. 미안, 이제 괜찮아.”


그는 마스크를 벗기지 못했다. 긴장이 풀리자 외려 손끝이 더 심하게 떨렸다. 옥분이 다가와서 렁찬 대신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벗겨주었다.


서소리가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다만 조용히, 아이의 촉촉한 눈을 보았다. 그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이름은 박하늘. 두운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천식을 앓고 있었다. 작년부터 가끔 발작이 있었지만 이렇게 심한 건 처음이었다.


우렁찬이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어디 계시죠?”

“읍내 미용실에 계신데, 지금 오고 계세요.”


서소리의 대답에, 옥분이 끼어들었다.


“이정희 씨 아들이구나. 그 애가 천식이 있었어요?”

“네, 요즘 자주 기침을 했어요.”


우렁찬은 하늘이를 보았다. 아이는 이제 숨을 편하게 쉬었다. 마스크 너머로 작은 얼굴이 보였다. 렁찬은 땀에 젖은 이마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아이의 불안한 눈빛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하늘아.”

“네?”

“숨쉬기 힘들 때 있어?”

“종종요.”

“예를 들면?”

“밤에 자려고 누우면…”


우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한번 봐야겠어요.”


서소리가 물었다.


“집이요?”

“천식은, 환경이 중요하니까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한 시간 후, 하늘이 엄마 이정희가 도착했다.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 또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하늘아!”

“엄마…”


이정희가 아이를 부둥켜안고, 이마를 비볐다. 엄마와 아들의 눈물 줄기가 하나로 이어졌다.


“미안해, 엄마가 늦어서…”

“괜찮아요, 엄마. 선생님이 고쳐줬어요.”


이정희가 우렁찬에게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읍내에서 일해서 바로 못 와서.”

“그보다 먼저…”


우렁찬은 처방전을 건넸다. 글씨가 더욱 삐뚤빼뚤했다.


“이 약 드시고, 오늘은 푹 쉬세요. 그리고, 제가 집에 가봐도 될까요?”


이정희가 고개를 들었다.


“네? 집에요?”

“천식 원인을 찾아야 해요. 환경적 요인이 있을 수 있어서요.”

“네, 그럼 지금 가실래요?”

“그러시죠.”


곧바로 우렁찬이 팔을 걷어붙이며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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