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빠리 미술관 산책

풀밭 위의 점심, 모더니즘의 시작

by 에투왈

낙선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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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정면에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이 오르세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선언하듯, 거침없이 당당한 기세로 나를 맞이했다. 여인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두 남자의 대화는 여전히 그림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19세기 살롱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 작품은 원래 1863년 살롱전 심사에서 거부당한 수많은 작품 중 하나였다. 무려 3천여 점 중 2천 점 가까이가 낙선하면서 화가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결국 나폴레옹 3세가 “국민이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하라”는 명령을 내려, 역사상 최초의 ‘낙선전(Salon des Refusés)’이 열리게 된다. 그 낙선전에서 가장 많은 조롱과 논란을 몰고 온 작품이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었다. 관람객들은 그림 앞에서 웃고 손가락질하며 조롱했고, 언론은 “품위 없는 외설”이라며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고전을 불러내 현실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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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네가 겨냥한 것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었다. 그는 라파엘로가 구상한 <파리스의 심판>과 티치아노의 <전원 교향곡> 같은 고전적 구도를 차용했다. 다만 라파엘로의 원작은 전해지지 않고, 그의 제자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판화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마네는 바로 그 고전의 언어를 가져와 현실의 빠리로 끌어들였다. 신화의 여인 대신 당대의 여인을 앉히고, 목가적 이상향 대신 도시적 긴장과 당당한 시선을 화폭 위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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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대담한 치환이 <풀밭 위의 점심>을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근대 회화의 혁신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그것은 시인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의 실천이기도 했다. 보들레르는 그의 저서 <현대생활의 화가, Le Peintre de la vie moderne>에서 현대성을 “덧없고 순간적인 것과,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의 결합”이라 정의했다. 마네의 그림은 그 말을 화폭 위에서 증명한다. 눈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분명 19세기 빠리의 한순간을 살아가는 현실의 인물이지만, 그녀의 당당한 눈빛은 시대를 넘어선 영원한 인간의 자유와 존재의 힘을 드러낸다. 순간 속에서 영원을 길어 올리는 일, 그것이 바로 마네가 이 그림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예술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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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이때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섰다. 젊은 평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마네를 두둔하며, “마네는 우리 세대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홀로 비난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진 화가”라고 옹호했다. 또 언젠가 그의 이름이 오늘의 조롱을 넘어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라 확신했다. 훗날 졸라는 소설 <작품(L’Œuvre)>을 집필해 시대와 싸우는 예술가의 고독을 문학으로 증언했고, 마네는 자신의 그림으로 그 외로운 투쟁을 현실 속에 새겨 넣었다. 마네는 졸라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작품(L’Œuvre)>에는 그의 죽마고우, 형제보다도 친한 폴 세잔이 모델로 등장한다. 안타깝게 이 책의 출간으로 두 사람의 우정에는 금이 갔고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폴 세잔이 엑상 프로방스에서 폭풍우 속에 그림을 그리다 죽음을 맞이하자 졸라는 사흘 밤낮으로 매일 눈물을 흘렸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오늘, 오르세의 입구 정면에 당당히 걸린 이 작품은 하나의 역설처럼 다가온다. 한때 웃음과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던 그림이, 이제는 미술관의 문을 여는 첫 목소리가 된 것이다. 시간은 조롱을 지워내고, 진실만을 남겼다.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은 19세기 빠리의 거리와 군중 속에서 피어났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현대성은 어떤 모습일까? 지하철 안의 스마트폰 불빛, SNS 속에 쏟아졌다 사라지는 수많은 이미지, 도심 광장에서 펼쳐지는 시위와 환호, 그리고 난민 행렬의 고단한 발걸음. 모두가 덧없고 순간적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변치 않는 인간의 감정과 갈망이 담겨 있다.
<풀밭 위의 점심>의 여인이 우리에게 던진 당당한 눈빛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남긴다.
“21세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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