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모리 아키나는 비너스에 관련된 곡을 많이 발표했다. 그 중에서 계기가 되는 곡이라면 바로 이 "달밤의 비너스"이다. Bitter&Sweet의 곡들은 나카모리 아키나의 음악인생에서 여러모로 계기가 되는 작품이 많다.
보통 헤겔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술어로 "부정"을 꼽는다. 헤겔철학을 공부하여 프랑스에서 강의했던 코제브는 헤겔철학을 죽음의 이념을 계기로 삼아 전진하는 체계로 설명한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코제브가 말하는 헤겔철학의 요체는 그것이 정신의 운동을 설명한다는 것이며, "정신이란 즉자존재(동일성, 정립, 주어진 존재, 자연)이면서 동시에 대자존재(부정성, 반정립, 행동, 인간) 그리고 즉자대자존재(총체성, 종합, 작품, 역사 = 운동)이기 때문이다."(알렉상드르 코제브, 역사와 현실 변증법, 설헌영 옮김, 한벗 304~305쪽)
이 설명이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간결한 해석이다. 여기서 달밤의 비너스는 대자존재를 가리키며, 행동에 나서는 비너스는 현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신의 신격을 탈락시킴으로써 죽음과 파괴의 과정에 이른다.
먼저 4집 앨범 에트랑제(이방인, 아웃사이더)의 비너스탄생이라는 곡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비너스는 아무 것도 모르는 비너스이다. 자연으로부터 비너스가 태어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으며 여기서 비너스는 사랑이라는 주어진 존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찬미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순간은 비너스와 자연이 일치하여 동일시되어 있는 상태. 그러나 "사랑이 인간을 바꾸어버린다"는 가사를 통해 미래의 변화가 암시되어있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목소리를 빌어 비너스의 변화는 이미 예고되어있는 것이다.
https://youtu.be/FHEDzptOZlM
Bitter&Sweet의 비너스는 "달밤의 비너스"이다. 여기에서 비너스는 사랑의 순간으로 인해 고통받는 비너스.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한 비너스이다. 인격체가 행동에 돌입했다는 것은 어떤 생각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너스는 기존의 자신을 부정하고 사랑에 몰입하고 있다. 껍질을 벗어버린다는 가사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랑에 몰입하여 신격을 탈락시킴으로써 자기부정과 자기파괴에 이르는 것이다.
가사 중에서 "어지러운 사랑에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라는 대목은 스스로의 신격을 부정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대목이다.
달밤의 비너스는 스스로의 신격을 부정하고 행동에 나서는 인간으로서의 비너스가 암시되어 있다.
https://youtu.be/RWQqomQn2AQ
이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지만 Stock의 비너스는 자연의 비너스, 부정의 비너스의 종합으로서의 비너스를 다룬다. 신격을 탈피하여 인간으로 육화된 비너스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격에서 이탈한 비너스에 대해서 노래하다보니 그러한 신화神化자체의 의미가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비너스는 누구인가? 모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존재이거나, 사랑을 받는 존재라면 그 순간에 모두가 비너스와 같은 신격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cce174fe540041b/30
따라서 나카모리 아키나가 이야기하는 세 가지 비너스는 탄생현존 - 고통부정 - 환희찬미종합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정확히 모든 사물의 내적본질을 관찰하는 방법인 정신의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최초의 비너스인 "비너스 탄생"과 "부정의 비너스인 "달밤의 비너스" 그리고 최종적으로 처녀전설에서 신화에 이르러 사랑을 찬미하며 살아가는 신적인 인간으로서 비너스가 다루어진다. 이처럼 Stock은 기존의 앨범에서 부족했던 의미를 보완하고 보충하는 역할도 하는 앨범이었던 셈이다.
비너스의 심리상태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고 지위가 바뀔 때마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목소리가 바뀌고 강조점이 달라지는 점도 감상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목소리는 비너스의 모든 전개과정을 알고 있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