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는 세상의 러브레터

by ou 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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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입니다.



러브레터(1995)



러브레터는 이와이 슌지의 대표작으로 1995년에 공개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러브레터를 통해 첫사랑의 순수함을 드러내면서 유명해진 작품인데요.

또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등, 1990년대 시점에서 1980년대의 아련함을 추억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런데 공개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버지가 몰락한 세상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또한 이 영화의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1. 잃어버린 시간의 소환


시간의 소환.png


첫 장면은 설원에 누워있는 히로코(나카야마 미호의 1인 2역)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녀는 여기서 숨을 참고 있다가 내뱉죠. 그 이유는 죽은 연인 이츠키가 눈 덮인 산에서 조난당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추억을, 시간을 소환하면서 영화는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는 점, 끝과 시작이 교차하면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중요한 소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설원 장면을 무대로 Love Letter라는 제목이 출현하죠. 잃어버린 시간의 소환은 러브레터, 기호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질 겁니다.


죽어 없어진 자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즉 내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갑니다. 언어적인 표층에서 그 사람은 죽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그 사람은 영원히 숨 쉬며 함께 살아갑니다. 시간이 지나서 무뎌질 뿐이죠. 이 영화는 그렇게 무뎌진 기억, 사라져가는 시간을 다시 불러내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시간을 어떻게 진정시켜 다시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죠.




2. 기호를 통해 시간을 불러내다

기호를 더듬다.png

본격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이 소환되는 시점은, 히로코가 이츠키(남)의 졸업앨범을 보았을 때입니다. 히로코는 이츠키의 옛집 주소를 더듬고, 몰래 팔에다 그 주소를 기록합니다. 마치 타투를 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이츠키(남)의 옛 집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당연히 배달되지 않아야 할 편지이지만, 동명이인 이츠키(여, 나카야마 미호의 1인 2역)에게 도착하여 답장으로 되돌아옵니다. 사실 히로코가 적었던 주소는 애인 이츠키와 동명이인이었던 여자 이츠키의 집 주소였던 것이죠.


도착한 편지.png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에게 전달한 편지는 “오겡끼데스까(잘 지내고 있나요)”입니다. 일본에서 편지에 자주 쓰이는 인사말이죠. 우리나라로 치면 밥은 잘 먹고 있나요 정도 되겠군요.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어떤 의도와 목적을 담고 있는지, 수신자와 발신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는 법이죠. 히로코는 애인에게 보낼 목적으로 오겡끼데스까를 보냈죠. 그러므로 이 편지는 러브레터인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를 통해 수신과 발신이 이루어진 편지들은 그녀들로 하여금 이츠키(남)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불러옵니다. 히로코에게 이츠키(남)는 그리운 애인이었고, 이츠키(여)에게 이츠키(남)은 중학교 시절의 동창이자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이었죠. 그러나 이 관계는 기호의 전달을 통해서 엇갈리고 뒤바뀔 것입니다.


오해를 통해 전달된 기호의 전달이 그녀들에게 공통적인 잃어버린 시간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간의 평론에서도 많이 지적된 대목입니다. 발화, 즉 언어의 순수전달을 통해서 욕망의 형식과 더불어 정동이 전달되면 최종적으로 욕망이 뒤바뀌는 전이가 발생하죠.


전이1-horz.jpg 쇼트와 쇼트의 연결을 통해 전이를 보여주는 장면

따라서 사랑하는 자였던 히로코는 오겡끼데스까 이후에 (타인에게) 사랑받는 자로, 사랑받는 자였던 이츠키(여)는 오겡끼데스까 이후에 사랑하는 자(추억을 사랑하는 자)로 전이에 이릅니다. 이것이 고전 정신분석을 통하여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3. 아버지가 없는 세계


러브레터는 1995년의 작품입니다. 이 해는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옴진리교 테러사건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죠. 이와이 슌지와 절친이기도 한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이 주요 소재로서 아버지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하나의 테마이기도 합니다. 또한 옴진리교는 아버지의 역할이 부재한 일본 사회에서 대리 아버지 역할을 수행하던 사이비 종교의 폭주를 보여준 사건이었죠.

회상-horz.jpg 아버지가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쇼트들

러브레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에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힘겨워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힘든 점은 없니? 다 잘 될 거란다라고 위로해주는 아버지가 나올 법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등장하지 않죠. 더 나아가 이츠키(여)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장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얼어 죽은 잠자리가 죽은 아버지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아버지의 영정사진까지 등장합니다.


즉 이 세계는 아버지가 사라진 세계입니다. 아버지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무엇만이 남을까요? 아버지의 공백을 대체하기 위해서 레터, 기호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소환하는 것만이 남습니다. 제 이전 글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만, 아버지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오로지 기호의 무한전달만이 남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체하고자, 어떻게든 상징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들은 덧없는 기호의 전달을 통해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며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기호에 중독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을 찾은것.png 시간을 되찾다

마지막 장면은 이츠키(남)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쑥스러움에 입을 가리는 이츠키(여)의 모습으로 끝나는데요. 이 장면에서 가려진 팔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찾아서”가 됩니다. 중학교 후배들이 전달한 것은 독서카드 뒷면의 그림입니다. 이츠키(남)가 이츠키(여)의 옆모습을 그린 것이죠. 쑥스러워 말은 못 했지만 남자 이츠키의 첫사랑은 여자 이츠키였던 것입니다. 이 기호를 본 이츠키(여)는 확실히 내면의 기억을 되찾습니다.


애초에 잘못 전달된 편지(기호)로부터 내면의 추억이 되살아났고, 이츠키(여)와 히로코는 서로에게 많은 편지를 보냅니다. 이렇게 그녀들은 서로의 욕망의 형식을 주고받았죠. 이러한 과정 끝에 또 다른 기호(그림)를 전달받으면서 내면의 기억은 확신이 됩니다. 황당하게도 시간을 되찾으려 했던 히로코는 그러지 못했고, 이츠키(여)가 시간을 되찾게 됩니다. 그녀는 일하는 중에도, 아픈 와중에도 편지를 쓸 만큼 기호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리아버지.png 대리 아버지는 가짜 상징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체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


더 확실한 지점은 그 이전에 이츠키(여)가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부분이죠. 이 집에서 대리 아버지의 역할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는 그 존재가 대리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크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것을 넘어서 대리 아버지는 손녀가 태어났을 때 나무에 손녀의 이름(이츠키)을 붙여주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어떤 나무인지는 특정하지 못한 채 미소만을 띱니다. 대리 아버지는 실제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츠키라는 고유명사의 실제 장소를 확정 지어줄 수 없습니다. 대리 아버지는 아버지인 척하는 가짜 상징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인간은 상징계의 고유한 좌표를 찾기 위해 러브레터와 같이, 기호를 찾아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마지막 장면처럼 사랑을 받았던 존재라는 자신의 좌표를 확정 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라는 중심 기호의 부재가 인간에게 또 다른 기호에 중독되어야만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호중독의 현상을 불러온 것입니다.


인간은 타자의 흔적을 더듬으며 살아갑니다. 동시에 아버지가 없는 세계에서는 기호가 대리 아버지의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추억, 혹은 세계 속에서 나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기호를 찾아 중독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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