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흔적

by ou pire

1.


근대는 마술적 세계를 억압하여 만들어졌다. 근대의 핵심 가치는 “합리성”이기 때문이다. 합리성은 인과원칙을 핵심으로 삼는다. 원인-결과를 관찰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제 세상은 마술이나 신성함이 아니라, 합리성에 의해 설명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관찰”이다.

근대는 또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핵심과업으로 삼는다.


현재의 수입으로 보았을 때, 나는 인생을 살면서 10억 정도를 벌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절반 정도를 떼어내서 집을 마련하자. 은행으로부터 5억을 대출받는다. 미래의 수익을 현재로 끌어오는 것이 대출이다. 대출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생애에 “계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0억을 버는 것이 가능하다싶은 직장이라면, 5억의 대출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대출은 불가능하고, 집 마련도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미래의 수익을 땡겨오고, 그 땡겨온 돈으로 현재의 자산이 늘어나는 과정, 이 모든 것을 “신용credit”에 기반해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크레딧, 신용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붕괴한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뱅크런”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을 우리는 프로젝트라고들 한다.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만들어 계획이 끝나면 팀이 해체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따라 팀이 결성되는 등. 이제 회사 단위도 계획 단위로 재편성된다. 그것이 “자본”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는 효율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근대는 모든 것이 조직적, 인과적, 과학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원리가 “자본”이며,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인간은 계획하고 행위한다.





2.


근대 이전에 인간 행위의 중심은 “신”이었다. “신”이 세상에서 사라지자 마술도 사라지고 신성함의 감각도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파고들어온 것이 “자본”이었다. 그래서 서양인들에게 자본이 신성한 것이요 마술 대신 합리성이 자리를 잡아 종교는 “서비스”의 영역이 되었다.


동아시아에는? 동아시아에는 원래 신이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없었다. 유학이 성립된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유학은 학문원리부터가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유학적 합리성은 서구적 합리성과는 그 원리가 조금 다르긴하나, 어쨌든 합리적인 체제를 목표로 세워졌다는 점은 동일하다.


세종대왕이 빗물을 받아다가 강수량을 측정하여 합리적인 기상예측을 시도했다는 것이 그 사례이다. 또한 사람들의 발음기관을 연구해서 글자를 만든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확립에 훈민정음 창제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하나의 공동체 단위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려면, 같은 글자를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수명을 깎아가며 글자 만드는 것에 올인한다.


국왕은 수명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미 국왕의 위치에 오른 이상, 그는 공인이요, 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에 한 몸을 바친다. 이것이 유학적 지도자의 “합리성”이었다. 청나라의 옹정제가 잠을 포기하고 합리적 독재정을 위해서 워커홀릭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의 정조 또한 유학적 지도자에 있어서는 “성인”이었다. 그는 자기 수명을 깎아가며 통치에 올인했다. 그는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서 반대 당파에게 “연극”을 지시하기까지 하는 등, 국가의 세부적인 사안까지 신경 쓰느라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정조가 죽자 신하들이 “왕은 성인이었다”라고 평가한다. 동아시아의 유학 공동체에서는 합리적 지도자가 철인이자 동시에 공동체를 위해 사적인 육체를 갉아먹는 것이 필수 덕목이었다.


문제는 세종 이후의 조선이 그 초기의 합리성을 상실하고 서서히 무너지기만 했다는 점에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인류의 역사는 퉁치고 말하자면 “합리성”을 향해 전진해가는 역사였다. 이 합리성을 통해서 세상을 원인과 결과에 의거하여 설명하는 것. 결과가 있으면, 원인에 원인을 거듭하여 탐구하다 보면 세상 전부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태도. 그것이 관찰에 의해 가능하다는 태도. 이것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






3.


그런데 근대 창조자들의 의도와 다르게,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원인과 결과로만 세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든 사람이 데이비드 흄이다. 원인과 결과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이 흄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다닌다고 해서, 꼭 비가 내린다는 법은 없다.


이렇게 흄의 학문에 감동을 받아 근대의 학문을 제대로 정립해보고자 빡세게 공부한 사람이 칸트였다. 그래서 칸트에 이르러 근대의 학문은 깔끔하게 정리된다. 인간은 감성적인 면과 오성적인 면이 종합된 다면적인 존재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 자체를 촘촘하게 분석하여 어떤 면은 감성의 영역으로, 어떤 면은 오성(합리성)의 영역으로 따로 설명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능력을 종합하는 힘은 판단력이다. 그중에서도 “목적론적 판단력”이다. 인간은 목적이 없는 세상에 목적을 부여하여 사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부여능력에 의하여 인간은 세계를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능력(목적부여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다.


따라서 칸트에 이르러 학문적으로 근대는 완성되었다. 이제 인류가 이 업적을 잘 받아들여 정련해나가고, 인류 전체의 복지를 증진시키기만 하면 되었으나...


근대의 끝은 파시즘이었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따져 경제공황의 원인, 독일 몰락의 원인을 “유대인”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유대인을 저비용으로 죽일 합리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체계적인 학살을 계획한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만주를 침략하고, 태평양으로 전선을 넓힌다.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헛된 계획을 세우고, 조선인과 대만인을 강제로 차출하여 전쟁터에 보낸다. 그리고 미국에 선전 포고하면, 미국이 겁을 먹고 화친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식민지인들을 비밀리에 실험하고, 학살한다.


근대의 합리성이라는 꿈은 파시즘과 세계전쟁으로 귀결되었으나, 이는 현재도 진행형에 있다. 국가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러시아는 예로부터 유라시아주의를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즉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거대한 대륙의 진정한 지배자가 자신이라는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초의 지배자는 몽골제국이었다.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유목민적 전략을 통해서 무역세를 없애고 보호세만을 관철시켜 하나로 통하는 제국, 하나로 통하는 최초의 세계화를 이룩했다. 이 세계화의 흐름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낀 서유럽은 대항해를 통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했다. 대항해시대는 몽골제국의 세계지배로부터 이탈한 아웃사이더 서유럽의 살고자하는 발버둥으로부터 비롯된다.


러시아는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하여 굴욕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유라시아주의에 의하면 몽골제국의 세계지배를 최종적으로 이룩할 이들을 자신이라 여긴다.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며 세계지배를 꿈꿨던 나치독일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일본제국의 야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근대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자식들, 귀태들, 악령들은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그 끔찍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근대가 낳아놓은 비극이며, 오늘날 세계정치의 최대의 목표는 근대를 어떻게 진정시킬 것이냐? 다시 말해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보존하면서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야하는가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 강유원, "역사고전강의", 라티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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