みんな元氣.

모두 씩씩해.

by ou pire
8925811189_1.jpg 이미지 출처 : 알라딘


마이조 오타로의 소설은 문자의 순환이 무척이나 빠르다. 게다가 이야기의 원인과 결과가 없다. 이 사람의 서사는 뒤죽박죽, 반죽이 제대로 믹스되어있지 않은 것처럼 중구난방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모두 씩씩해는 이미 절판된 책이지만, 그래서 더 좋다. 이 책은 거의 읽히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해를 위해서 쓰인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느낌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의 음부를 가지고 벌이는 기괴한 망상 또한 그렇게 보아야 한다. 그것은 성충동이, 리비도가 자기의 온몸을 뒤덮어 마침내 내가 침식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강렬한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


어느 날 주인공 비와(枇杷)의 여동생인 아사(아침)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에 의해 바꿔치기당한다. 가족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아사는 아침을 뜻하며, 비와가 아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아침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즉 시간의 순환이 사라지고, 영원한 반복만이 남았다는 뜻이다. 비와는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다. 아사가 사라짐으로써 비와의 시간은 멈췄다. 이때 아사가 가족을 떠나며 하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바로 소설의 제목인 “모두 씩씩해”이다. 이 “모두 씩씩해”는 후반부에 이렇게 대강 밝혀진다.


“사랑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 거고, 지금도 있지만, 사랑받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분명 괜찮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은 세상 모든 게 그렇다. 모두 괜찮다. 모두 씩씩하다. 너무 씩씩해서 곤란하다는 건, 너무 사랑해서 곤란하다는 거고, 너무 사랑받아서 곤란하다는 거다. 나는 낙하하면서 사랑의 그물에 대비해 등을 긴장시켰다. 지금은 어쨌든 곤란하지 않다."


원문으로 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씩씩함은 일본어로 겡끼이다. 겡끼는 곤란(콘난)으로 이어지고, 콘난은 코이(사랑)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지. 이미 이런 시니피앙(음성이미지)의 연달은 발화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산은 카사, 카사(달무리), 카사이(인명), 카사이(지명), 카사이(과채), 카사이(화재)와 통하고 사건과 영화배우 류 치슈(성에 해당하는 한자를 카사로 읽을 수 있다)의 관계성도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이러한 시니피앙의 연쇄로부터 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줄지어 나열되면서 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가능성도 있을지 모른다는 의미에서의, ‘가능성으로서의 가능성’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여러 가지 더 많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선택지는 계속 만들 수 있다. 아직 선택지가 되지 않은 데에서도 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선택지 안에서 나는 좀 더 잘 생각해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 말을 해야지.”

시간이 멈추었던 비와는 다시 가능성을 향해 열린다. 미래를 향해 시간을 열어낼 수 있게 된다. 시니피앙의 정교한 연쇄로부터 출현하는 것은 라캉이 말했던 실재이자 공백의 세계이다. 언어의 연쇄는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백이 출현하는 것을 언어로는 막을 수가 없다. 그 빈공간을 직면한 주체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린다.


비와는 자기의 이름처럼 비파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말하는 존재가 된다. 이 말하는 존재는 앞서의 말하는 것과 다르게,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한 번 가능성으로 열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같은 비와이어도, 이렇게 말해야 될 것이다. 비파枇杷나무처럼 한 곳에 정박되어 시간이 정지되어있던 비와에서, 자기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한 비와(琵琶)로.

마이조 오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것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고, 꼭 그 의미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비와는 말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건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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