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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Jul 07. 2024

사람이 떠나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

시절인연

노을이 지는 한강 위 지하철 안 귀퉁이에서 지친 몸을 음악에 맡기고 있었다. '사람이 떠나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로 시작하는 '시절인연'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괜스레 울컥했다. 지하철 문 넘어 붉게 흐르는 한강 때문이었을까? 트롯의 흔해 빠진 노랫말이 가슴을 후벼 파다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여러 명에게 링크를 보내면서 내 인간관계를 다시 점검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친한 친구, 선후배, 직장동료 등 지인들 중에서도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게 되었다. 현재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느닷없이 링크를 보내도 편하니깐.


대학 시절, 시민운동 시절, 정치활동 시절, 대학원 과정 시절 만났던 인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는 헤어지기 아쉬워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수많은 말을 섞으며 우리의 시간은 오래갈 줄 알았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은 내 기억의 한켠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않는다.


얼마 전 종로의 골뱅이 골목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그 좁디좁은 골목에서 뿜어져 나오여름의 열기, 습도, 냄새는 시공간을 초월해 그 시절을 소환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이었나 보다.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뭐에 홀린 듯 그 시절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곳을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가 간명해진다. 나는 두 가지로 분류한다. 나에게 늘상 곁에 있는 가족 또는  도움은 안되고 손해를 보더라도 소중한 들, 내 취향과 코드는 아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구분한다. 최악의 관계는 소중하지도 이익도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인연으로 만들기위해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을 규정하고, 인정한다. 이해가 안 되는데 노력하면 이해가 될까? 곱씹을수록 더 이해가 안 되는 게 사람이다. 또한 내가 이해가 되는 방향으로 사람은 고치기 힘들다. 그냥 그 사람은 000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인정하면 된다.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다면 안 보거나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면 관조적으로 보면 된다.


또 기분 좋게 살기 위해서 잽싸게 처해진 상황을 규정한다.  이때 중요한 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것 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쪽으로 생각하는 습관이다. 한 친구가 "그 남자는 하룻밤 나랑 자기 위해서 만난 것 같아..." 자조적으로 말하며 소주 한잔에 눈물을 글썽인다. 왜? 썸남이랑 헤어진 이유로 제일 기분이 나쁜 결론을 내리며 힘들어할까? (솔직히 그 말이 맞아 보였지만). 나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 좋아?"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 말았다.  하룻밤 인연으로 규정하고 기분을 스스로 망칠 필요는 없다.


정치권에서 만난 선배와 여의도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선배가 "돈벌이에 집중하다 보니 사회적 관계가 한정되어 삶이 피폐해진다"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아는 사람 많고 그 관계를 감당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사회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선배는 조금 고민하다가 '사회적 이웃'이 없다고. 같이 일을 하는 관계 말고 삶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일구는 이웃이 없다고... 이웃? 가까이 사는 사람?


'사회적 이웃'을 사회적으로 가까이 삶을 영위하는 사람으로 해석했다. 직장동료도 아닌 동호회 사람들도 아닌 동네 이웃도 아닌 관계의 형태. 서로가 중요시 여기는 공통의 가치를 발견하고, 공감하면서 일상 속에서 공유하는 그런 이웃! 나의 관계 분류에서  '사회적 이웃'을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절이 지나가면 그 시절의 인연들도 떠나간다. 어쩌면 서로의 필요가 다했음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도 또 '시절 인연'이겠지만 이  '사회적 이웃'을 만들어 서로의 필요 보다 자신의 공허와 고독을 채울 필요가 있다. 아니 삶을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그 사람들과 이웃해야겠다.  '이웃'이 '인연' 보다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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