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 작가 Jan 21. 2023

가슴 가득 눈 내리던 날

언제나 그래왔듯이 여행은 즉흥적이고 준비 없이 가야 설렘이 더합니다. 소풍 전날 가슴 설렘에 잠 못 이루던 초등학생처럼 잠 못 들고 뒤척이다, 알람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깨어 준비를 합니다. 차에 오르니 새벽 4시. 날씨는 적당히 포근합니다. 너무 오랫 만에 떠나는 사진 여행입니다.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를 올라서니 새벽 5시 반입니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아직도 많은 양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내리는 비로 인해 앞은 보이지 않고 음악 소리만 귀를 자극합니다. 싸아한 공기가 명료함을 더합니다.

어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터널을 지나 강원도로 들어서니 도로와 하늘에 눈이 가득합니다. 진짜 눈이 맞는지 다시 살펴봐도, 제설작업이 미처 이뤄지지 못한 도로에는 하얀 눈이 가득합니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나아갑니다. 음악도 때맞춰 부드러운 노래로 바뀝니다.

조심스럽게 달리는 도로 주변으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의 설경이 펼쳐집니다. 멈추지 못하고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눈은 참 사람을 들뜨게 합니다.

마음을 들뜨게 하던 눈은 주문진 BTS정류장 방향으로 들어서자 서서히 비로 바뀝니다. 바닥에 눈이 가득한 걸 보니 비로 바뀐 지 얼마 안 된 듯합니다. 날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습니다. 일출은 꿈도 꾸지 않았기에 괜찮았지만 바다 날씨는 어떨지 걱정이 됩니다. 첫 번째 목적지인 BTS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유리에는 강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데 강한 바람과 빗방울이 세차게 얼굴을 때립니다. 바다는 어서 오라고 격렬히 반깁니다.

시린 바다 바람에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영상을 촬영합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 여유가 없습니다. 우산이 바람에 날려 맨몸으로 비를 마주하다 보니 그 짧은 시간에 온몸이 흠뻑 젖습니다.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서 바람에 버티고 있는 갈매기들이 대단합니다. 자동차의 히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카페에서 따듯한 차로 잠시 몸을 녹이며 대관령 양떼목장과 월정사를 놓고 고민합니다. 두 곳 모두 가본 지 거의 15년이 지난 듯합니다. 월동 장비가 없는 저는 대관령으로 가기로 하고 출발합니다. 대관령 옛길로 오르는 도로에 들어서니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고스란히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참 신기한 경험입니다. 이런 눈을 얼마 만에 보는지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눈이 쌓인 대관령 옛길을 오릅니다. 간혹 보이는 차들도 속도를 올리지 못하고 천천히 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도로에서 중간에 멈춘다면 다시 올라가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드는 순간, 말 그대로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언덕 도로 중간에 승용차가 꼼짝 못 하고 서 있습니다. 마주 내려오는 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였더니 차가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재빠르게 기어를 수동모드로 조작하고 지그재그로 운전을 합니다. 30분 같은 3분을 지나 겨우겨우 오르기 시작합니다.

힘겹게 올라 간 대관령 정상에는 등산객을 싣고 온 버스들과 승용차들로 도로가 뒤엉켜 있습니다. 조그만 틈도 없이 가득 들어찬 차들로 인해 빈자리가 없습니다. 차 전체가 눈으로 덮인 차를 바라보는 차주는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주차를 포기하고 천천히 내려갑니다. 일찍 돌아갈 생각에 올라 선 고속도로는 이미 차들로 주차장이 되어있습니다. 밀리는 고속도로를 나와 월정사로 향합니다.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월정사에 도착하니, 여행객들과 카메라를 어깨에 맨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귀찮아서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지 못합니다. 주차를 하고 천천히 월정사 경내로 이동합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여기저기 촬영을 하느라 정신없습니다. 뭐를 찍어야 하나 고민을 합니다. 절에 마음을 쉬러 자주 왔지만 풍광을 찍으려니 난감해집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한 두장 촬영합니다. 눈이 내려앉은 산사의 색감이 참 아름답습니다.

절을 돌아 나와 전나무 숲으로 향합니다. 반가운 얼굴이 보입니다. 별빛뜨락 사진 클럽에서 3대의 버스가 왔다더니 여기서도 사진동호회 회원 분들을 만납니다. 또 다른 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인스타 친구입니다. 사진을 교환하며 기분 좋게 웃어봅니다(이래서 죄지으면 안 되는 듯합니다. 어디서든 다 걸리거든요 ㅎㅎ). 어쩌다 보니 저도 사진의 모델이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버스로 오신 분들이 가시고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분명 컬러로 촬영했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라 속 사진들은 모노톤이 되어 있습니다. 짧은 겨울 해는 어둠을 쉬이 끌고 와 밤인 듯 어두워집니다. 산채정식이 맛있다는 식당에 들어서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아직도 눈으로 가득한 마음과 눈은 더없이 즐겁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진에서 기하학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