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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Feb 19. 2023

이 겨울 끝내기 전 정리하는 제주 여행 3

제주도에 있는 4일(1.22-25)동안 우리나라의 4계절을 다 겪은 듯합니다. 첫날 내리던 비와 바람, 둘째 날의 쨍한 하늘과 바람, 셋째 날과 마지막 넷째 날의 거센 눈보라와 폭풍, 그리고 맑은 하늘까지. 그 4일 동안 빠지지 않는 유일한 것이 강한 바람이네요.

올 겨울,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지 못했었던 눈을 강원도에서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제주도에서 몰아치는 눈 폭풍을 겪어보니 이건 말이 안 나옵니다. 셋째 날 새벽 호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오늘은 사진이 예쁘겠구나'하고 준비를 합니다. 호텔 로비를 나서는데 매서운 바람이 몸으로 들이칩니다.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른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에 위치한 카페로 이동합니다.

제주의 자연을 담고 있는 카페 '오른'. 앞에는 너른 바다와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강한 바람소리와 파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잠시 해가 비치던 하늘은 이내 검은 구름과 함께 눈보라가 드세게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쏟아지는 걸 보니, 새벽에 잠깐 품었던 사진에 대한 희망이 다 사라집니다. 오늘은 실내에서 밖을 바라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카페 투어입니다. 한 시간 정도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던 눈이 잠깐 잦아드는 틈을 타서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제주에서 터널형 나무 프레임의 웨딩사진으로 유명한 안돌오름에 있는 카페 ‘안도르’입니다. 중부 산간 지역을 지나오는 길이라 그런지 눈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눈앞이 안 보이는 눈을 뚫고 카페로 들어서니 건물 전체를 감싸고 눈 폭풍이 몰아칩니다. 드센 눈을 피해서 카페로 피신한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카페를 나와서 한라산까지는 못 올라가더라도 1,100 고지는 한 번 가봐야겠다 생각을 합니다. 네비에 1,100고지 주차장을 찍고 출발합니다. 눈 폭풍이 더욱 거세집니다. 올라가는 저를 뒤로하고 간간히 내려가는 차들은 있지만 올라가는 차는 저 이외에는 없습니다. 2-3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눈 폭풍을 뚫고 올라갑니다. 이거 뭐 고지 탈환도 아니고 무슨 짓인가 싶습니다. 

멈추면 미끄러지겠다 싶어서 겨우겨우 올라가는데 앞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이, 거세게 쏟아지는 눈은 처음 봅니다. 2㎞ 정도를 남겨 둔 상황에서 차를 돌려 내려옵니다. 이대로 가다간 차가 고립될 것 같습니다(실제로 다음 날 제주방송에 고립된 차들에 대한 뉴스가 나옵니다). 산굼부리 주차장에서 잠시 눈 폭풍을 피합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눈을 보며 산굼부리를 나와 우도로 가는 선착장으로 이동합니다. 2미터가 넘는 파도와 강한 눈바람에 차가 흔들거릴 정도입니다. 잠깐 잠깐 나오는 해가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더 이상 촬영이 힘들어 호텔로 향합니다. 오늘은 술이나 한 잔 하고 일찍 자야겠네요. 

이른 아침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어제의 눈 폭풍으로 제주를 떠나지 못한 4만 명의 관광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비를 살펴보니 공항 가는 길이 빨간색입니다. 조금 서둘러서 공항으로 우회를 해서 출발합니다. 하늘은 새벽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합니다. 제주도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제주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달려가던 순간, 멀리 대비 요소가 눈에 보입니다. 차를 세우고 500미터 정도를 눈에 푹푹 빠져 가면서 이동합니다. 차로 지나치다 마주한 앵글이 맞습니다.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차를 주차했던 곳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장 촬영합니다. 일찍 도착한 제주 공항은 말 그대로 전쟁터입니다. 어제 떠나지 못한 사람들과, 오늘 떠날 사람들이 겹쳐서 아수라장입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공항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어수선함을 뒤로하고 에어팟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깁니다. 제주에서의 4일이 폭풍처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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