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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Oct 15. 2023

괜히 마음만 바빴던 늦은 가을 경복궁에서

경복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쏟아지는 비로 '오늘 경복궁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고즈넉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을 빠져 나오는 순간, 그건  저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죠. 토요일인건 감안 하더라도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매표소에 늘어선 줄과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 사람들이 넘쳐 납니다. 오늘도 주제가 '사람'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카메라를 꺼냅니다.

지나치는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외국 관광객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방에서 오신 분들과, 체험학습하는 학생들 정도입니다. 근정전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고 있는 예쁜 이국 소녀도 보이고, 처마의 아름다움을 담는 여인도 보입니다.

몇 번의 비가 계절을 재촉하더니, 가을을 느낄 여유도 없이 계절이 깊어진 듯 합니다. 가을 깊숙히 걸어 들어가는 연인도 보입니다.

가을 볕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사람도, 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담고 있는 사람도 화사함이 번져 옵니다. 앉아서 모델이 되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사람의 포즈가 더욱 고와서 저도 모르게 입가에 호선이 그려집니다.

왕과 신하들은 어딜 저리 바삐 가는지,

진지하게 통화를 하고 있는 푸른 눈의 이방인도, 가파른 계단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국정을 근심하는 왕도 이 가을의 풍경입니다.

개화기 조선 선비들을 보는 듯, 코에 걸친 선글라스가 재미를 더합니다.

향원정까지 올라오니 그 많던 사람들이 조금 덜 합니다. 을씨년스레 아직 향원정의 가을은 깊어지질 않아서 물에 비친 반영만 담습니다.

향원정을 천천히 걸어 나와 국립민속박물관 방향으로 나옵니다. 하루를 넘어가고 있는 햇살이 노란 빛을 더합니다. 사람들도 서서히 궁을 나서고 있습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의 모습이, 하는 일 없이 바빴었던 하루를 조용히 어루만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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