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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Feb 12. 2024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104마을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달동네,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

1967년도에 서울시가 도심 정비를 한다고 용산, 남대문, 종로 등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갈 데 없는 도시빈민들이 불암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한 곳입니다. 

2009년 재개발 허가가 나면서 주민들이 떠나고 이제는 몇 가구 남지 않은 곳입니다. 온 동네를 돌아봐도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은 10가구 정도였으니까요.

구도심의 골목길은 황량하고 쓸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싫어하는 저로서는 몇 번이나 가볼까 하다가 말았는데, 연휴 마지막 날, 원고도 탈고 했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104마을 입구에 있는 8층 아파트에 올라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불암산 허리를 돌아 나온 안개가 자욱한 104마을은 이미 마을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굴뚝 연기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상까지 그냥 걸었습니다. 오르는 동안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104마을이 그 속살을 드러냅니다. 

넝쿨이 늘어진 골목 구석구석은 구도심의 골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벽화가 그 생명을 다해 색이 바래고 있습니다.  

제가 구도심의 골목길을 촬영할 때 원칙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사람이 살던 공간이고, 지금 사람이 살고 있으며, 우리 윗세대, 혹은 우리 세대까지도 이 골목의 공동체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밝고 환하게 표현하자’입니다. 이 원칙에 따라 최대한 밝게, 생기 있게 촬영하려고 하지만 마을은 너무 스산합니다.

빈집(공가)을 나타내는 붉은 동그라미가 이제는 폐기되어버린 집이란 유기체의 낙인처럼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한 쪽 벽 구석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더욱 가슴 아픈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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