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긴 시간 덕택에, 대전은 구도심 골목길이 어디 있나 찾아봤습니다. 목척시장, 1905년 대전역의 개통과 함께 형성된 곳으로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설명입니다. 개천을 마주 보고 조선인들이 주로 거주했다는 인동시장 소개도 있지만 오늘은 목척시장이 목적지입니다. 차를 세우고 보니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왔었던 '대전 아트시네마' 근처군요. 지나가는 분을 붙잡고 자세한 위치를 물어 발걸음을 움직입니다. 더워도 좋으니 햇빛을 바랐지만, 오늘 대전 날씨는 흐림입니다.
그동안 돌아봤었던 인천이나 군산, 전주 등의 구도심 골목을 생각하고 갔더니 생각보다 보존상태나 집들의 모습이 말이 아닙니다. 여기도 재개발 광풍이 불었던 듯, 열에 아홉은 빈집입니다. 집은 사람이 거주하면 같이 생기를 머금지만, 집에서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면 그 집은 생명력을 잃고 썩어가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집들이 거의 폐허와 비슷하게 변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아직도 많은 나이 드신 분들이 거주하는 듯, 여기저기 몇 분이 보입니다. 비록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어도 괜스레 죄송하고 조심스러워서, 선뜻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합니다. 앉아 계시는 어르신이 눈치 보여서 같은 골목을 세 번이나 돌다가 겨우 한 장을 촬영합니다. 송강호가 노무현 대통령 역으로 열연했던 '변호인'을 촬영했던 건물 뒤편 모습입니다.
저는 구도심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지만, 보존가치가 있는 것과 아닌 것들을 구분해서 살렸으면 좋겠지만, 이곳의 사정도 원주민들은 떠나고 재개발 이익을 바라는 타지 사람들이 집만 구입하고 방치된 상태입니다. 일을 나가시는 듯한 분도 보이고, 아직도 '신기(끼)'가 가득할 것 같이 석류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무속인 집도 보입니다. 누군가는 마치 벽 색깔과 맞춘 듯, 같은 색의 수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이어서인지 집들이 일본식이 많습니다. 여기도 구도심을 살린다는 미명 하에 벽화작업이 있었던 듯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구도심의 골목길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좁은 공간에 모여서 부대끼고 살았던 모습이 비슷합니다. 세월이 지나 텅 빈 공간이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도 비슷하고요. 그나마 거주하고 계신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완전히 사라질 공간들입니다.
골목은 70-80년대 우리네 삶에 있어 주거의 한 방식이었지만, 산업 노동자 양산을 위해 탈농촌을 시켰었던 군사정권의 독재 하에, 도시 빈민들이 정을 나누고 아이들을 같이 기르고,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지금은 역할이 다해서 아파트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고요. 다른 곳보다 더 심한 상태의 골목을 보고 있자니,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보다는 허전함이 더합니다. 재정비를 한 것인지, 어울리지 않게 도로는 구획정리가 확실하게 되어있습니다. 골목 깊숙이 제 기능을 내어준 유모차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의 등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