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권리를 포장한 핑계
집 근처 실내 놀이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 좁은 문도 문제지만 들어가더라도 바퀴에 묻은 흙 때문에 거절당할 것 같아 늘 와이프만 아들과 함께 간다.
"아빠 저번처럼 휠체어 주차하고 목발 짚고 들어가면 안 돼? 엄마보다 아빠랑 더 놀고 싶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이렇다 할 답변을 못하고 다음에 가자 라며 미룬 게 2년째..
사실 여러 번 시도했으나 다른 아빠들이 공 풀장, 방방이를 타며 놀아주는 모습들을 봤기에 시도해보지 않고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난다. 그럴수록 아들의 불만도 늘어난다. 이것은 내 '장애'의 문제로 보기에는 핑계로 보인다. 지성이 말처럼 당당하게 목발 짚고 들어가 함께해줄 수 있을 텐데 여전히 핑계만 대는 아빠가 되고 있다.
서울에 살 때는 실내 놀이터 직원이 휠체어 바퀴에 소독약을 뿌려주고 들어갈 수 있도록 확실한 서비스를 해줬다. 그것을 핑계로 대면 나의 권리를 위한 요구로서 포장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일단 부딪혀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난 여전히 어렵다.
난 여전히 권리를 추구하며 더 많은 핑계를 대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다. 아빠로서의 책임을 '장애로 인한 배제, 권리 침해'로 포장하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