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맛이야.
나는 오늘도 이 커피로 바쁜 하루에 쉼표를 찍는다. 나의 직업은 건축 설계사다. 어릴 적 영화에서 돌돌 말린 설계 도면을 옆에 끼고 하얀색 셔츠를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본 뒤로 건축 설계사는 나에게 전문직의 상징이 되었고 나는 그 이미지를 따라 결국 이 자리까지 왔다. 만족한다. 내 성격과 맞고 보람도 안는다. 아쉽게도 같이 살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나의 철학과 실용이 만난 내 집이 따뜻해질 날이 올 것이다.
오늘도 나는 수첩과 설계 도면을 보여줄 수 있는 iPad Pro를 들고 고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고객을 만날 때면 항상 흥분하게 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상상과 욕망 그리고 과거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내밀한 욕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사실은 시부모와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어요',
'사실은 과시하고 싶어요',
'사실은 내 애인과 나눌 은밀한 공간이 필요해요',
'사실은, 사실은, 사실은….'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은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그들의 욕망을.
그런데 같은 욕망이라도 표현하는 것은 갖기 다르다. 전통 한옥 스타일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어릴 적 부모님과의 추억이 많은 경우다. 서양식 인테리어 또는 아방가드르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해외 유학이든 사업 때문이든 비행기를 좀 타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상상을 통해 과거를 엿보는 재미는 참으로 솔솔찮다.
가장 나를 흥분시키는 고객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깊은 생각, 철학, 그리고 배려가 모든 하기 때문이다.
유기견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한 마리 한 마리 데리고 온 것이 벌써 열 마리가 넘는다는 고객은 각기 다른 반려견이 서로 공격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공간을 디자인해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그 덕분에 6개월 동안 10여 군데의 동물병원 원장과 심층 인터뷰를 하고 관련 도서 20 여권을 탐독해서 계 박사를 자임하는 수준까지 되었다. 가끔 그 집에 가면 집주인보다 반려견들이 나를 더 반겨줘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나를 흥분시키는 고객 중의 으뜸은 당호(堂號)를 제시하면서 그 의미에 맞는 건축물을 나랑 머리 맞대고 상의하는 분들이다. 집이나 이름은 '짓는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죽은 사물에 이름을 지어서 생명체로 만드는 작업은 건축 설계자로서 하고 싶은 최고의 작업이다.
기억에 남은 당호 중에 이로재(履露齋)가 있다. 이슬(露)을 밟으며(履) 가야 하는 집(齋)이라는 뜻으로, 원전은 소학(小學)이다. 부모를 모시는 선비가 아침 일찍 부모님의 계시는 처소에 가서 문 열고 나오시는 부모님께 따뜻한 옷을 건네드리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새벽녘에 마당에 니려 앉은 이슬을 밟아야 하는 집. 즉, 효성이 지극한 가난한 선비의 집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 승효상 교수의 사무실 당호라고 많이 알려졌다.
그러고 보니 흥미로운 당호 중에 수눌당(守訥堂)도 있다. 어눌한 말(訥)을 지키는(守)는 사람이 사는 집(堂)이라는 뜻인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교수의 연구실이다. 겸손한 노 교수가 무념무상으로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런 분위기의 또 다른 당호로 수졸당(守拙堂)이 있다. 서툰 것(拙)을 지키는 사람의 집이라는 뜻인데 큰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 서툰 것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란다. 유홍준 교수의 당호다.
내친김에 인상 깊은 당호 몇 개 더 정리해 본다.
독락당(獨樂堂)은 마음이 홀로 서야(獨樂) 이(理)가 생긴다는 뜻으로 성리학자 희재 이언적의 당호다. 만취(晩翠)는 정말 재밌다. 늦게까지(晩) 푸르겠다(翠)는 뜻으로 벼슬을 마친 선비들이 낙향해서 여생을 보낸 거처에 많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왠지 이분들이 매일 술 마시며 풍류를 즐겼을 것 같다. 행락당(行樂堂)은 나의 서예 스승인 활천 선생님의 유년 시절에 경험한 당호라는데 늘 행복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광풍각(光風閣)은 또 어떤가.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맑은 날의 바람(光風)처럼 살겠다는 의미가 있다. 광(光)의 뜻 첫 번째는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라고 하니 고개가 끄떡거리게 된다. 밝고 눈부신 광풍각이 있다면 소박한 모습을 더욱 부각하는 제월당(霽月堂)이 있다. 비 갠 뒤(霽) 떠오르는 달(月)처럼 사는 집(堂)에서는 오히려 마음만은 풍성할 것 같다. 이외에 소박한 삶을 사는 부부가 백발이 될 때까지 지내는 수백당(守白堂), 울창한 억새(蘆) 옆에 지은 소박한 행랑채(軒) 같은 집인 노헌(蘆軒), 아예 세상에 드러나기 싫어 아무(某)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헌(某軒)도 있다. 한편, 오랜 세월(古)이 켜켜이 배어 나와 오히려 맑은 윤기(晴)를 비추는 집인 청고당(晴古堂)은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묻어 있을까?
그 세월은 크로노스의 시간일까? 카이로스의 시간일까? 22세로 생애를 마친 효명세자의 세월은 카이로스의 시간일 것이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효명세자는 사색과 독서를 하면서 길고 긴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4칸짜리 작은 집을 창덕궁 후원에 짓고 기오헌(寄傲軒)이라 불렀다. 이 말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 왔다고 한다.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남창에 기대어 마음을 다잡아 보니 좁은 방 안일망정 편안함을 알았노라).” 그런데, 기오(寄傲)의 해석이 묘하다. 오만한 마음(傲)을 보내는(寄) 것으로 봐도 되고, 비록 거처는 작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오기(傲)를 부린다(寄)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미가 주는 여백이다.
이것에 비하면 책(書) 둥지(巢)라는 송나라 육유(陸游)의 당호 서소(書巢)는 상대적으로 밋밋하다. 그래도 책(書) 동굴(窟)이라는 오대(五代)의 맹경익(孟景翌)의 당호 서굴(書窟), 책이 없어질까 봐 돌을 쌓아서 책 창고(倉)를 만든 노나라 사람 조평(曹平)의 당호 서창(書倉), 송나라 유식(劉式)이 죽자 그 아내가 남편이 읽었다는 1,000여 권을 자식에게 보여주며 먹글씨(墨)로 이루어진 집(莊)이라며 말한 묵장(墨莊) 같은 당호들은 하나같이 절실한 사연들 위에 세워졌다.
이렇듯 당호는 삶에 대한 집주인의 태도, 철학이 담겨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당호를 만날 때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을 너무 숭상하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집들은 101호, 102호, 103호 식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 집에 당호도 같이 사용한다면 얼마나 운치 있을까. 어려운 한자를 가지고 와서 당호를 억지로 만드는 것 또한 우습다. 우리 순수 우리말도 충분히 멋진 당호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난 그저 자기 생각이 조금이나마 담겨서 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서 부동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고객을 만나고 싶다.
오늘 만나러 가는 고객은 심상치 않다. 자신의 집터에 있는 오래된 나무를 절대 건들지 않고 나무를 중심으로 집을 다시 꾸미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고객은 또 어떤 생각을 나에게 풀어낼지 기대된다. 마치 지금 마시는 코스타리카 따라쥬처럼 진한 여운이 남은 대화를 상상해 본다.
공사판의 땀 내움이 느껴지는 깊은 맛의 코스타리카 따라쥬, 오늘도 너를 배신하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