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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Oct 13. 2024

우울이 내 버팀목일까봐

지금을 잃어버리기를 간절히

참 그렇다. 사실은


내일 병원에서는


먼저 꾸중을 들어야겠고 또 무슨 이야기든 해야 하는데 무슨 이야기가 좋을까

좋을까라기보다는 무엇을 고백해야할까 ?


이 병에 대한 의심이 내게 아직도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이를 병이라 해얄지 내 성향이라 해얄지 그걸 내가 고르고 있는 거다. 오만 나의 지치지 않는 오만


자꾸 묻고 싶다. 선생님 이게 병이 맞긴 한가요? 선생님께서 약팔고계신건아닌지요.

참는다. 적어도 내 오만만은 모든 내 성향 중 가장 확실하므로.


무기력하거나 조울이 들거나 하면서도 젊은이들을 보면 차오르는 시기질투와후회비교

이런것들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될까?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이를 잊어가는 것 같다. 정말 머릿속에서 계산하기 어려울만큼이다 할 정도로 까먹고 있다’ 한탄하며 공감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 경우 젊음이 큰 관심사이기까지 해.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해볼 순 없다. 뻔뻔하고 약간 미친 것 같은 나를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 무엇에 관해서도, 특히 나 자신을 내보일 때  완전무결하게  솔직하고 싶은데...발목 잡힌다. 젊다면... 모든 것이 이 시점보다는 힘이 날 것 같다. 솔직히 그렇다.


이걸, 말해야 할까?

이렇게 들뜨는 질투와 집요한 관심ㅡ젊음에 관한ㅡ 같은 것들은 명랑하고, 그러니까 단순하고 맑은 편인 사람이나 가질만한 것이 아니냔 거다.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젊지 못하니까 나는 우아하기라도, 조금 더 아름답기라도 아니면 뭐 좀 고매하고 무언가 갖춘 것처럼이라도 보이고 싶어지는, 보이고 싶어하는 이 마음이 우울도와 병행할 수가 있는지


싫다 주름, 노쇠한 분위기, 뻔한 흰머리 방향, 쿰쿰함, 시선, 퍼진 몸뚱아리, 아니 누군들 지금 읊는 이것들을 좋다 하겠냐만 나는 신경질적으로 이것들을 감추고 싶을 뿐더러 무형의 분위기에까지 극도로 화가 난다. 맞는 과정인가?

심지어 이렇게 좀 가리고 이런 복장이면 이만큼은 피해갈 수 있겠다 하고 아주 공들인다. 내 20대에 이렇게 몸에 공들이던 시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신경을 쏟지 않아도 될만큼 외모가 출중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절대로

그 때 나는 늙으면 늙으라지 펴바르면 뭘 하겠어 내게 내리꽂는 빛줄기여 바람이여 나는 맞서주리라 했고

또 더 또렷하게 향긋하게 꾸며내는 것에도 대체로 무관심했다. ㅡ왜냐, 소질도 없었고 뭐가 나를 더 돋보이게 하는지 도통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몇 개의 타입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 봐야 내눈에 그게 그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젊음을 보내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다. 미래의 내가 어찌나 한심해서 회한에 차는지 너는 알기나 하겠니.ㅡ 내 눈은 그대로 내가 가진 생기도 있는 만큼 그대로 보이면 그만이지 하고 살았다. 머리카락을 부풀리고 모양새를 다듬는 것 역시 포기했다. 어떤이는 내 머리카락 가르마를 슬쩍 손톱으로 건드리며 ‘이거를 좀... 너무 붙이지 말고 옆으로 가게 하면 어때요?’ 하기도 했다. 마음 단단히 먹은 그에게 딱히 무슨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이 방향을 어쩌라고. 그러나 나는 지금 무얼 바라고 있는가. 머리카락 뿌리볼륨이며 옷매무새며 아이섀도우에 온갖 연구를 거듭하며 뭐 어떻게인가, 보이게 하도록 나를 꾸며대며 살고 있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달라졌지? 없던 아니 발견하질 못했던 우울이 토악질처럼 솟구쳐 일상이 망가져가면서 더 나를 꾸미고 트렌드를 찾아댔던 것. 대는 것. 그리고 이것들이 같이 가고 있는 것. 분명 같이 눈감고 다음 아침에 함께 떠지는 이것들이 궁금하다

괜찮은가?

괜찮다 하는 저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

어느 선까지를 괜찮다, 그럭저럭 그렇다 정도로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결국은 내 우울이 가면이 아닐지 이게 뭔 병원놀이이며 약타령인지...하는 자성에 가까운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글쎄 비하와 자학의 일환일까

그런데 또 그렇다 여긴다면 이건 우울의 한 증상일 것도 같다.



... 두렵다.

우울이 내 버팀목이 아닐까 진정

내게 우울마저 없다면 동력도 사유도 없을 것 같아 점차 이것이 실로 실인 것으로 내게 뚜벅뚜벅 오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사뭇 반가운 마음이 지금에도 슬쩍 비죽 튀어나오니 이걸 어쩔 노릇이야

이 시기는 분명히... 어떤 분명한 내 시기인데

이 시기가 넘어가서의 나를 벌써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은 이

병든 마음, 병들었다고 선언을 하는 나의 뇌 갈 데 없는 이 속

지금을 유지하려는 수상한 관성

딱히 괴롭지 않은 내 감상 그러나 또 흠칫 딱히 괴롭지 않게 느끼면서 이걸 지속하려는 꾀가 들여다보여 심각하게 뇌까리는 이 심정    


조금 더 잃고 싶다. 이미 잃은 것을 단호히 원하지 않는 지금을 조금 더 잃어 가면서 새로 오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 그 편이 어떨까 정리하면.

내가 이미 잃었던 것들은 우스꽝스럽지만 환했고 아늑하게 내 등을 뜨끈하게 쓸어내려주던 그런 것들인데...

지금을 잃기를 바란다. 잃어내기를.

내 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들, 바리바리 구분도 뭣도 없이 둘둘 말려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개 아무데나 자리잡고 뭉쳐진 짐들 다 한 보자기에 싸 묶어 토해버리고 그것만이 흉통 한 가운데서 오직 홀로 자리를 차지하기를. 주문이 되어 한 밤에는 고요처럼 고독처럼 아무 소리 없이 힘이 센 단 하나가 되어 지금의 날들과는 달라지게 해주기를. 잃어내기를.

‘잃어내기를!’

잃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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