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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10. 2022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아이


“선생님, 누가 찾아 오셨어요”

“누가? 어디 계신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사무실 아가씨가 누가 찾아왔다는 얘기를 전했다. 기다린다는 커피숍을 찾아 호출을 했다. 살짝 일어서는 여성분이 보였다. 아우라가 장난이 아닌 귀부인이었다. 순간 내가 당황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머니 어떻게 오셨느냐도 아니고 순간 내가 뱉은 말은 “부인, 어떻게 오셨습니까?”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 얼굴이 화끈해 진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무슨 일로 절 찾아 오셨는지?”

“우리 얘를 한번 맡아 주십사 하고…….”


 부인은 누구의 소개로 날 찾아왔노라 했지만 그 누가 누구인지는 극구 얘길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잘 아는 분이라고만 했다.


“근데……. 요즘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스케줄이 다 차서…….”

“네 선생님, 그냥 우리 애를 한번 만나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정말 정중하고도 간절하게 내게 부탁을 했다. 그 부탁을 극구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 일단 한번 아이를 보겠다고 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귀부인은 도도함이란 없이 그때는 정말 절실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 마음에 내 마음이 열렸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에 집을 찾았다. 그렇게 큰집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늦은 시간이지만 불을 환하게 밝혀 놓아 정원이며 뒤쪽 잔디언덕이 대낮처럼 밝았다. 아마도 허세보다는 나를 위한 배려 같았다. 고마웠다. 어머니가 현관에서 반겨주었다.

실내에는 그때 처음 보는 아이와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와 통성명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고3이라고?”

“네…….”


여리게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성적이 형편없었다. 모의고사 총점이 채 100점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는 모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알겠지?”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서 아이가 가지고 있는 중압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알고 푸는 게 하나도 없는 거지?”

“네…….”

“학교에 가면 잠만 자지?”

“네…….”


아이의 대답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짐작을 하고 있었을 부모님들까지 이정도 일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대대적인 수술……. 그런 게 필요했다. 아이가 안쓰러웠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 동안 학교와 부모는 무얼 했을까?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 눈앞의 현실이 이러하니……. 난감했다.


“전 과목 과외선생님을 붙여야 합니다.”

“학교는 출석일 수만 맞춥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아이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실 수 있다면 고려를 해 보겠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운전석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뭘 어떻게 하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오만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이튿날 전화가 왔다. 모든 걸 내게 맡기겠노라고 했다. 내 마음이 분주했다. 이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위해서는 배테랑 선생님들이 필요했다. 국영수는 최고의 선생님으로 하고 나머지 학과는 대학원생으로 포진을 했다. 대학원생 중에는 아이를 잠자는 시간 빼고 관리할 여선생님도 있었다.

24시간 스케줄을 만들었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다. 선생님 조각이 끝나고 회의를 시작으로 곧바로 그날부터 공부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내가 들어갈 수업 시간이었다. 낮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버텨낼 체력이 있을까 하는 거였다.




 드디어 아이와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을 맡으면 초기엔 정신교육에 치중한다. 물론 아이와의 래포(Rapport)형성은 기본이다. 얌전하고 다소곳했다. 예쁜 아이였다. 그것이 아이의 처음 모습이었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알지”

“네…….”

“모든 건 네가 어떻게 따라오느냐 하는데 달렸다. 할 수 있겠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수학의 기본부터 시작했다. 더하기 빼기부터 시작했다. 사칙연산부터 시작한 것이다. 기하도 역시 그랬다. 길이 넓이 부피를 구하는 기본부터 시작했다. 머리가 없진 않았다. 이런 아이를 왜 지금까지 방치를 했을까? 그동안의 선생님들은 무얼 한 걸까? 또 화가 났다.


 아이는 정말 열심이었다. 아이를 총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내내 보고를 받았다.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공부였다. 아이는 학교를 아예 가지 않거나 출석만 하고 조퇴하는 날이 많았다. 어차피 학교에서는 아이가 따라갈 수 있는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석일 수만 채우는 전략을 편 것이다. 24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모든 선생님이 타이트하게 녀석을 지도했다. 하루를 삼일처럼 썼다. 그 강행군을 아이가 따라와 주었다. 무서운 집념이었다. 어떻게 저 체구에서 저런 집념이 나오는 걸까 의아했다. 모든 선생님들의 지도과정을 체크했다.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프린트로 하던 기본 공부를 마치고 정석을 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제를 풀고 있는 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감동이었다. 녀석의 등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몰두하면서 쓱쓱 풀어나가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대견했다. 그 강행군에 토 한번 안 달고 따라와 주는 녀석이 기특하고 대견했던 것이다. 내가 수업을 하는 날에는 마치는 시간이 거의 새벽 2시였다. 그런데 그날 새벽 6시에 총괄선생님이 들어가면 책상 앞에 앉아 수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빨리 자도 2시 10분이고 아이가 일어나 세수라도 하려면 5시 50분에는 일어났을 터이다. 채 4시간을 자지 않고 버티는 것이었다.


 한번은 수업을 하는데 아이가 코피가 터졌다. 안쓰러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했더니 괜찮단다. 더 할 수 있단다. 코피가 잘 멈추지 않았다. 녀석은 제 콧구멍을 휴지로 털어 막았다. 그런데 잠시 후 공부를 하는 중에 책 위로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가 휴지를 모두 적시고 떨어진 것이다. 독종. 독종이다. 그 말이 생각났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당시는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다. 이화여대를 지원했다. 예비고사를 치고 난 뒤 본고사를 치러 갈 때다. 하루 먼저 호텔을 잡고 총괄선생님만 딸려 보냈다. 봐야 할 내용을 모두 정리를 해서 한보따리를 싸서 갔다. 반드시 다 보게 해야 한다. 신신당부를 했다.


“괜찮아. 그 동안 열심히 했으니 지금껏 한 것처럼 하면 돼. 절대 욕심내지 말고 방심하지 마라. 알겠지?”

“네…….”


녀석은 그 큰 눈망울로 나를 쳐다봤다. 의지가 보였다. 그 눈을 보고 내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 얼른 눈을 피했다. 모든 것은 끝났다. 진인사 대천명. 이제는 하늘의 결정만 남은 것이다.


발표 당일 날 새벽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이 이른 시간에 무슨 전화지? 혹시??


“여보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울먹이면서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 계속했다. 합격이었다. 기나긴 싸움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함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절대 저버리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그때처럼 실감한 날이 없었다.



신영호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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