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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10. 2022

꼴찌에서 우등생으로

  학원 부원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며 찾아 갔더니 대뜸 아이하나를 맡아 달라고 하신다. 지금  비는 시간이 없다고 말씀드렸건만 막무가내였다.


“신 선생, 그러니까 내가 부탁을 하는 거자나. 시간을 좀 빼 주라”


난감한 일이었다. 누구를 빼고 대신 맡는단 말인가?


“그럼 당분간 12시 30에 시작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어 그래, 고맙네 고마워. 신 선생”


 부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분간 평일 한번은 12시 30분 시작이었다. 그 대신 일요일은 오전 11시로 잡아 주었다.

처음 녀석을 만나 성적을 체크하는데 A4용지에 다른 애들 이름은 없고 그 녀석 이름이 있는 줄에만 빨간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반 33명 정원에 33등……. 잠시 멘붕이 왔다. 이미 맡는다고 부원장과는 약속을 했으니 깰 수는 없었다. 다행히 문과였고 2학년이었다. 아이만 잘 따라준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의 정신 상태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할 수 있겠나?”

“네”

“소리가 그것밖에 안 돼? 할 수 있겠어?”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영어 샘이랑은 달라. 안하면 매를 든다. 알았나?”

“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자신이 먼저 더 난감했다. 꼴찌다. 그렇다면 전혀 기본이 안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공부 자세도 안 되어 있는 녀석이다. 이 녀석을 어떻게 끌고 간다? 부원장이 원망스러웠다. 뭐 이런 애를…….


기초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했다.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하나하면 팔을 굽히고 둘에 팔을 편다.”

“하나……. 둘”

“복창해라. 하나하면 ‘나는 왜 이럴까’ 둘하면 ‘정신을 차리자’”

“하나……. 둘”


 어떤 때는 원산폭격을 시켰다. 과일을 들고 온 어머니가 보시고는 황망히 나가셨다.


 “똑바로 해. 자식아. 엄마가 왔다고 봐줄 거 같아?”


집중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였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이 놈의 집중력을 키울 수 있을까? 순간 마당 한편에 있던 탁구대가 생각났다.


“저기 마당 옆 창고에 세워져 있는 거 탁구대냐?

“예”

“그럼 샘이랑 탁구한번 칠까?”


부모 입장에서는 비싼 과외비 내고 공부시켜 달랬더니 탁구나 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가르침의 하나다. 그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탁구를 치고 올라왔지만 심드렁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저는 탁구 별로 안 좋아 합니다”

“그럼 저건 누가 치는데?”

“엄마 아빠가 치는 데요”

‘뭐라고? 그럼 넌 뭘 좋아하는데?“  

“저는 농구를 좋아 합니다”


그날로 마당 한 편에 농구대를 설치해달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다음 시간에 갔더니 농구대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일요일이면 한 게임을 하고 공부를 했다.


어느 날 내가 와 있는데도 녀석이 올라오지 않았다. 녀석의 방은 2층에 있었다. 내가 내려 가봤더니 한참 채팅을 하고 있었다.


“뭐 이런 놈이 있어? 빨리 따라와”

“아 지금 끝나는 데요”

“가서 매하나 들고 와”


녀석이 나가더니 얇은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왔다.


“이게 매야? 몽둥이 구해와”

“집에 그런 거 없는 데예”

“저기 마당에 나뭇가지라도 꺽어 와”

“저거 비싼 건데요. 아버지가 아끼는 거라서…….”

“너 뒤져서 매 같은 거 나오면 죽는다.”


내가 녀석의 방을 뒤지니 대나무로 된 퉁소가 나왔다.


“여기 좋은 거 있네”

“그건 악긴 데에”

“악기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엉덩이 대라”


녀석은 그날 불이 나게 맞았다. 병 주고 약 준다고 해야 할까?


“아프냐? 샘도 아프다. 나는 뭐 때리면 기분이 좋은 줄 아냐? 제대로 안하면 앞으로 오늘보다 더 한 벌을 주겠다. 알았어?”

“예…….”


그래도 녀석은 착했다.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잘 따랐다. 성적도 조금씩 나아졌다. 수학기초와 고1학년 수학과정을 마치고 2학년 수학에 들어갔다. 시간은 어느새 2학년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그해 겨울방학 전에 술에 취한 그 집 아버지와의 불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추운 겨울에 어머니가 우리 아파트까지 찾아와 용서를 빌었다. 내 이름 하나로 관리실에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기가 애 아빠를 대신해 사과를 하니 제발 노여움을 푸시라 했다. 술에 취하면 난동을 부리곤 해서 가족들도 다 주눅이 들어 있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다음에 수업하러 갔더니 아버지가 용서를 구했다. 어쩌겠는가? 술이 문제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3학년이 되었다. 학교 성적이 나왔다. 수학성적이 반 3등이었다. 녀석은 2학기가 되어서는 수학성적이 전교 3등이 되었다. 전 과목 석차도 전교3등이었다. 녀석은 성균관대를 합격했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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