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산수유, 벚꽃
피는 꽃과 지는 꽃이 교차하는 시절이다. 잠깐 함께 동행하다 못내 아쉬움을 삼키며 이별하는 이들처럼 꽃들도 서로 이별을 한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지만, 꽃이 지는 일이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꽃이 지는 것은 때로는 꽃이 피는 것보다 더 경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느새 매화향이 뒤안길로 접어들면, 닮은 듯 다른 꽃이 핀다. 벚꽃이 부풀고 있다. 아침에 보았던 벚나무는 오후의 따뜻한 기운 속에 한층 풍성해 보인다. 벚꽃은 바로 눈앞에서 품어져 나오고 있는데,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가만히 서서 벚꽃 봉우리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벚꽃이 피어나는 경이의 순간을 볼지도 모른다.
벚꽃의 피고 지는 일은 속전속결이다. 피는가 하면 어느새 꽃잎을 일제히 허공에 뿌려댄다. 절정의 순간들은 눈이 내리는 듯한 소멸의 순간들이다. 그것은 오히려 경탄을 자아내는 미의 순간이다. 난 이 계절이 참 좋다.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
벚꽃이 피는 시절 한쪽에선 산수유가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 몽롱한 노란빛 산수유는 서서히 꿈을 깨며 풍경속으로 스러지고 있다.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꿈처럼 산수유 노란빛은 먼 옛 일이 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산수유 노란 꽃잎들은 왜 날리질 않을까, 그리고 흔적도 남기지 않을까? 황갈색 땅 위에는 지난겨울을 빨갛게 견디고 있었던 산수유 열매들만 떨어져 있을 뿐 노란빛은 황갈색에 섞어들었는지 가늠할 수 없고 육신의 눈엔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나의 눈엔 산수유 꽃의 노란 꽃잎은 연한 초록색으로 변색하고 있을 뿐이었다. 산수유 노란빛이 초록빛으로 옅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매화의 낙화가 벚꽃의 낙화와 다르지만, 유독 산수유의 낙화는 사뭇 다른 듯하다. 산수유꽃은 자기만의 조용한 사라짐의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