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에는 태양신 킨이 살고 있었다. 킨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빛과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살아 숨 쉬는 뭇 생명들은 킨에게 감사를 표하며 섬겼다. 태양신 킨과 세상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조화에서 벗어나려는 존재가 생겼다.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들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게걸스럽게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탐냈다.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숲을 태워 땅을 차지했다. 심지어 같은 인간끼리도 전쟁을 벌여 뺏고 빼앗겼다.
태양신 킨은 인간들의 행동을 목격하고 너무나 슬펐다. 그리고 실망했다. 자신의 계획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빛과 온기를 내어주는 일에도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많이 나눠준다고 해도 구멍이 뚫린 인간의 마음을 채울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킨은 하늘을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그가 떠나자 세상은 어둠에 휩싸였다. 모든 생명체는 시들었으며 점점 죽어갔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태양신 킨을 만나서 겸허히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가장 아름답고 강한 전사들을 선별해 칸에게로 보냈다.
막중한 임무를 어깨에 짊어진 전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킨에게 향했다. 이들 전사 중 용감하고 지혜로운 젊은 전사 ‘테칼’은 어떻게 해서든 태양신 킨을 꼭 설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애로운 킨이 생명들을 끝까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로 걸어가던 중 테칼은 우연히 길가에 핀 아름다운 꽃을 발견했다. 마치 태양신 칸을 꼭 빼닮은 꽃이었다. 꽃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던 테칼은 그 꽃을 조심스럽게 품속에 넣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테칼과 전사들은 긴 여정 끝에 결국 킨을 만났다. 전사들은 킨에게 다시 하늘로 와 달라고 애원했지만 킨의 마음을 돌이키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테칼이 앞으로 나서서 품속에 간직했던 꽃을 바치며 말했다.
“위대한 태양신 킨이시여, 한번 보십시오. 이 꽃은 당신을 똑 닮은 꽃입니다. 이 꽃은 실수를 저지른 인간에게도 똑같은 미소를 보내줍니다. 비록 상대가 인간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꽃은 우리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모든 존재보다 뛰어난 킨께서는 인간들에게 더 큰 자비를 베푸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킨께서도 이 꽃을 받아주시고,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에게 다시 빛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킨은 테칼의 진심 어린 호소를 듣고 테칼의 손에 있던 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인간들은 앞으로 절대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로 완전히 하늘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사들은 눈물을 터뜨리며 킨의 발 앞에 무릎을 끓고 절했다.
약속대로 킨이 하늘로 돌아오자, 세상은 다시 밝아지고 모든 생명체는 생기를 되찾았다. 사람들은 킨과 테칼 사이의 대화를 기억하고 킨을 닮은 꽃에 금잔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금잔화를 태양신 킨의 축복을 받은 꽃으로 여기며 신성한 꽃으로 기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금잔화는 태양과 빛, 그리고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사랑받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화목원길 24)
때때로 견딜 수 없이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폭력적이고 나약한 사람들. 구역질이 날 만큼 진저리를 치게 되면 눈까지 질끈 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또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서도 괴로웠던 것은, 오래전 어느날 욕심만 가득했던 과거의 내가 잔인한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킨이 인간을 저버렸던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주어지면 창문을 열고 날아가는 새, 떠다니는 구름, 태양을 닮은 금잔화 같은 것들을 보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태양신 킨이 우리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던 일, 그리고 그와 했던 약속을 기억하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