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한 만큼 헛헛한 하루

by 캠강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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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간 세종시.


국가기관 강의는 늘 뿌듯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준다. 강의 경력이 오래됐느냐는 사실과 상관없이, 강의 전 긴장이 있어야 실수가 줄어든다. 긴장을 놓는 순간 말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흐트러지며, 참가자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그래서 강의 시작 전엔 크게 숨을 쉬면서 머릿속으로 한 시간 강의 시뮬레이션을 들어간다.


어떤 날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스스로가 대견해할 때도 있다.

‘역시.. 나야, 나.’

어깨가 살쩍 올라가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난 너무 잘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정반대의 날도 있다.


‘괜히 그랬어.’

‘말하지 말걸 그랬어.’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러붙는 날.

그럴 때면 내 마음과 몸은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처럼 가라앉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며칠 동안 같은 장면을 곱씹으며 자책한다. 정말… 한 끗 차이다. 정말 한 끗 차이. 똑같은 경험인데도 어떤 날은 날개가 되고, 어떤 날은 돌덩이가 된다.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다.

한 시간 강의지만 수많은 강사 중에서 나를 선택해 의뢰해 준 기관.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한다. 내게 ‘최선’이란 단순히 자료를 잘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 시간만큼은 진심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내 말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 안의 것들을 다 꺼내 놓는 일이다.

강의 종료 15분 전, 몇몇 분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휴지로 눈가를 닦고 있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표정. 그 눈과 표정은 내게 큰 여운이 되었다. 강의를 ‘잘’했다는 성취감과는 다른 결의 감동이다. 내 가슴도 뭉클해졌고,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마치 눈물을 한가득 담아 둔 듯 마음이 묵직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도, 글로 표현될 수 도 없는 벅찬 감동이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역시나 막혔다. 아마 3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미리 예약해 둔 장소에 차를 세웠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적했다. 여기저기 텐트를 치는 사람들, 나처럼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캠핑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차를 마시거나, 장작에 구워둔 고구마와 맥주를 곁들여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빨간 태양이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구름 사이로 흩어지는 모습은 감성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누가 봐도 흔한 풍경인데, 어떤 날은 그 흔한 풍경에 나도 담기고 싶다.


나는 두 달 전 미리 바짝 말려둔 장작 뭉치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불멍 .... 허락된 공간에서의 불장난은 언제나 설레게 한다.


어렸을 때 아궁이 불을 때며

밥을 짓는 할머니 옆에서 조잘거리며 고구마도 구워 먹고, 연기를 마셔 계속 콜록이면서도 그 향이 좋아 할머니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처럼 난방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 마당에서 번개탄에 불을 지펴 혹시라도 내 옷에 붙을세라 허우적거리며 연탄구멍에 넣고, 하얀 연탄연기에 콜록이며 연탄구멍을 맞추고, 또 따가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던 기억, 학교 주번일 땐 창고에서 부서진 의자를 가득 가져와 교실 한가운데 놓인 난로 안에 넣기도 하고, 쌓아두기도 하며 쉬는 시간엔 양은 도시락을 난로위에 쌓아 놓고 먹을 시간을 기다리며 설렜던 기억까지도 지금 어른이 된 내겐 따듯한 추억이다.


그래서인지 난 장작불이 좋다.

옛날 할머니 기억도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새록새록 기억해 낼 수 있어서. 너무 추운 날씨라 그런지 작은 불길에도 따뜻한 기운이 금세 볼에 와닿는다. 장작이 ‘탁, 탁’ 소리를 내며 갈라질 때마다, 마음속 긴장도 조금씩 풀어진다. 잔잔한 여운 속에서 오후 강의 시간을 되새긴다. 잘 해낸 순간들, 누군가의 눈빛, 고개 끄덕임.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

이런 마음을 언제든 표현할 수 있어 설렌다.



자, 이제 나는 뭘 할까.

내일은?

모레는?

내 나이 이제 오십하고 하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


내 남편을 만났던 25살 2월

지금 내 딸의 25살 2월이 되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성큼 다가왔고,

지난 아픔과 고통엔 누군가가 빼준 못 자국만 남아있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긴장을 품고, 진심을 들고, 다음을 향하는 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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