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에 만나면 3시부터 설렌다는 엄마와 강원도 강의

아빠를 기억하며

by 캠강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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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우리 가족이 총출동하던 날은 아빠가 강원도로 출장 갈 때였다.


군부대에 납품할 물건을 싣는 날이면 아빠 차는 늘 가득 찼다. 트렁크에도, 차 지붕 위에도 짐이 올라갔다. 38선 바로 아래 철원도 가고, 속초도 갔다.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오를 때면 나는 ‘우와—’ 하며 재미있어 했다. 그땐 몰랐다. 운전하던 아빠 등의 땀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비탈지고 비포장인 길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긴장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혹시라도 .. 라는 생각이 있으셨는지 엄마는 항상 뒷자리에서 날 안고 쉼 없이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고, 오빤 아빠 옆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도 개울이 보이면 아빠는 잠깐 차를 세웠다. “잠시 다녀오겠다” 하고는 커다란 수박 한 통을 시원한 개울물에 담가 두고, 텐트를 쳐 주신 뒤 바쁘게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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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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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연천



깜깜한 밤이면 노곤한 표정으로 텐트에서 하루를 지새웠다. 잠시 몸을 눕히고 나면, 언제 일어나셨는지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성냥개비로 ‘탁, 탁’ 한 번에 불을 지피고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주셨다. 뜨겁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구마를 김치에 휙휙 감아 내 입에 넣어주던 그 손. 나는 매일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때 그 강원도로 강의를 하기 위해 엄마와 다시 출발했다.
여전히 구불구불하고, 좁고 한적한 그 길은 아빠를 생각나게 했다. 깜깜한 저녁에도 우리가 머물던 개울가를 정확히 찾아오시던 아버지는 정말 인간 네비게이션이었다. 지도도 없고, 네비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렇게 길을 기억하셨을까.


영하 12도. 추운걸 알고 있지만 강의를 해야하기에 두껍게 입진 못했다. 한달전 잡힌 강원도 강의라고 하니 엄마는 며칠 전부터 오늘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그리곤 계속 설레셨다며 아이같은 천진한 웃음을 보이셨다. 새벽부터 믹스커피 10개를 털어 만든 뜨끈한 보온병을 내게 내밀며 마시면 몸이 녹을거라 했다.




엄마의 눈과 입, 콧노래까지 예쁜 얼굴이다. 80이 되셨는데도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울까싶다.

너무 설레서 잠도 못 이루시고, 믹스커피 10봉지를 뜯으며 설레셨을 엄말 생각하니 보기만 해도 아까운 엄마다.


며칠전부터 설렜다는 이야기를 가는 도중에 몇번이고 하셨는데, 정말 좋으신가보다.

어.. 어디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것 같은데...문득 어린왕자의 여우가 떠올랐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설레기 시작할 거야”


길들여진다는 건,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일.

엄마에게 ‘어딘가를 간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과거를 함께 건너온 시간 여행자, 나와 함께 다시 떠난다는 뜻이겠지.


약속 시간 전부터 설레는 마음. 그 설렘은 아마 오랫동안 서로에게 시간을 들여온 사람만이 갖는 감정일 것이다.나도 그렇다. 요즘처럼 시간이 무섭게 빨리 지나가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내 모습이 민낯으로 드러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도 내가 기다리는 날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듯, 엑스를 하듯,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우리는 늘 바쁘다. 해야 할 일들이 끝이 없다. 집안일, 일정, 약속, 책임.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마음이 앞서 달리고, 몸은 뒤에서 끌려오곤 한다. 그런데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이상하게도 숨이 길어지지 않나. 창밖 풍경이 지나가고, 산이 보이고, 하늘이 넓어지면… 말없이도 마음이 조금 풀린다.


엄마는 그런 순간을 알고 있는 사람 같다.

엄마에게 내 시간은 딸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삶이기도 할 것이다.
강의를 하러 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아마 대견함과 안심을 함께 느낄지 모른다. “우리 딸이 자기 길을 잘 가고 있구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너무 애쓰지 말았으면…” 하는 기도를 하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강단에 서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내 삶이 아빠 같다고도 하셨다.

너무 멋지다고 했다.


어렸을땐 착하다고 자랑하셨는데,

지금은 여기 저기 방송 하며, 책도 쓰고 강의 다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하신다.

방송출연 안한지가 벌써 몇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의 추억을 되새기고,
나는 엄마와의 현재를 새로 만들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바쁜 삶 한가운데 잠깐 멈춰 서서
서로의 숨소리를 확인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엄마가 내 강의를 같이 간다는 건,
추억을 다시 걷는 일이면서, 동시에 오늘을 치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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