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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Dec 23. 2021

외로운 당신에게

12월 23일의 악필 편지

당신이 ‘자발적 고립, 혹은 터질 듯한 외로움’에 놓여 있다는 말씀이 편지를 덮고 나서도 눈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입니다. 터질 것처럼 외로우면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것이요. 그러나 이전의 연애에서 깊이 상처받은 당신은 그러기 쉽지 않을 테지요. 또 상처받는 일이 두려울 테니까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누군가가 당신에게 의지하는 것도 두렵다는 말씀도 저에게는 같은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자신조차 지탱하기 버거운데 어떻게 타인에게 나의 일부를 내어 줄 수 있을까요. 상처받기 두려운데 어떻게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싸매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다시 마음을 열더라도 그 사람이 떠나가는 것이 두렵다는 뜻 같아요.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건 외로움을 해갈해주고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로 당신의 상처를 오래 안아 줄 수 있는 관계겠지요. 그런 인연이 찾아와 당신을 치유해주기를 바라는 건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꿈꾸는 것만큼 허황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럼에도 당신이 그런 치유를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리라 생각해요.


저 스스로를 돌이켜 보건데, 저 또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쓸 때 그러하셨듯 저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아마 저는 평생 그 고독 속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당신의 마음을 어쩐지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외로운 것이 두렵지만, 더 외로워지는 것은 더 두려운 그 마음,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끝없이 가라앉기만 하는 하루하루…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바닥까지 침잠하던 나날들에서, 제 곁에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외로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저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왕자님은 아니었지만 평생을 저와 함께 했고, 그렇기에 저를 가장 잘 아는 친구들이었지요. 저는 그 존재들을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기로 했지요. 썩 마음에 드는 동반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동반자는 동반자였습니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저는 지독한 고독을 삼켜야 했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외로움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저의 동반자로 인정함으로, 저는 ‘외로운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존재를 버티고 견디는 힘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 외로움의 힘으로 저는 지금 당신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고독의 다리를 건너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지요.


외롭든 아니든, 살아있다는 것은 삶을 이뤄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의 존재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하루치만큼의 우주를 쌓아올려간 것이지요. 그 의미의 전부를 지금 알 수 없겠지요. 어쩌면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지에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하늘은 아름답지요. 당신의 외로움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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