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삼각지대(Ego Triangle)
추운 겨울에 밖에 돌아다닐 때면 종종 맑은 콧물을 졸졸 흘린다.
또, 울 때에도 유난히 맑은 콧물이 인중을 타고 흐른다.
군장교가 되기 전 동계 훈련 때 콧물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임하던 내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아직도 동기는 그 모습을 회상하며 놀린다.
맑은 콧물의 연대기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임원들이 모인 대회의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면접관들의 눈을 마주치며 자신감 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과장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과의 장으로서 프로젝트를 이끌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추고, 팀워크와 성과를 함께 도모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 질문이 나올까 봐 이틀 전부터 유투브에 '과장 역할'을 검색해놨다. 덕분에 알고리즘이 '직장에서 성공하기'로 가득 찼다.
나의 생각과 소신, 역량과 실적들을 풀어나갔다. 한 임원은 면접을 마친 뒤, 마치 면접 교과서를 보는 듯이 대답을 잘 한다며 웃었다.
우리 회사 진급 평가는 4가지 기준이 있다.
고과 평가, 면접 평가, 교육 학점 그리고 외국어 성적.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신시장 개척으로 야근을 하며 팀 내 유일한 A등급을 받았다.
교육 이수 학점도 초과하였고, 외국어 성적도 최고 가산점을 받았다. 면접도 잘 봤다.
대리에서 과장이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대기업 과장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좀 든든하다.
진급 후 더 좋은 연봉을 주는 회사로 이직할 상상도 한다.
주변에서도 과장 진급 케이스라고 알고 있었다.
가족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올해 진급 평가라고 이야기를 했다.
특히, 아버지는 나의 회사 생활과 성취에 관심이 참 많다.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를 하시며 오래전 은퇴하신 아버지는 그 마음을 나에게 투영하는 것 같다.
몇 주가 지났다. 인사팀에서는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 진급자에게 축하 꽃다발을 보내주기 위해 주소를 확인한다.
이상하다. 하나둘씩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어... 왜 나는 연락이 안 오지, 조금 더 기다려보자'라는 마음이 들며 불안해졌다.
결국 팀장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진급이 안 되었단다.
덜컥, 마음이 땅 속 깊이 내리 꺼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서 울었다. 회사에서 눈물이 나온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그날, 정신없이 퇴근을 했다. 침대에 누우니 세상 서럽게 눈물이 났다.
방이 떠나갈 정도로 엉엉 소리를 내며 물었다.
"으어엉... 꺼억꺼억... 자존심 상해... 엉엉..."
진급 축하 꽃다발 대신, 나는 콧물 범벅 휴지 다발을 받았다. 제작: 나. 후원: 자존심
그깟 진급이 안되었다고 이렇게까지 자존심이 구겨지고, 마음이 아플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놀라울 정도였다.
아니, 사실은 당연히 진급이 될 줄 알았다.
지금까지는 정당하게 노력을 했다면, 항상 그만큼의 결과가 따라왔다. 진급은 명칭 하나 바뀌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하나가 나를 증명해줄 기회처럼 느껴진다. 당신도 그런 날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각종 요건을 충족하여 면접에 오른 사람은 3명. 그중에 진급자 자리는 3명.
다 된 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 팀에서 이 회사를 7년 다닌 대리가 조기 진급 대상자로 치고 올라왔다.
최종 4명의 경쟁 구도.
그중 두 명은 신입 사원 때부터 다닌 충성 직원.
나머지 한 명은 나와 같은 시기에 입사한 경력직.
그는 지원직으로 "할 일 없어서 여유롭고 심심해요"라고 자주 말했다.
그 팀은 몇 년째 적자를 내다가, 그 시기에 큰 프로젝트 수주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는 면접에서 오직 그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만 주구장창 받았고,
“저는 현재 관여하지 않고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다.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진급.
그렇다고 누군가가 진급이 안 되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하필 내가 진급이 안 되었느냐이다.
타인의 성공은 때때로 나의 실패를 비춘다. 그 웃음 안에 감추고 싶은 표정이 떠오를 때, 우리는 조용히 자기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졌다.
팀장과 그 위의 담당은 따로 불러 위로를 해주었다. 나름 이유를 설명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평가 기준에 대해서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윗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이 회사를 얼마나 더 오래 다녔는지에 대한 충성도,
팀 전체의 실적과 상황,
곧 터질 대형 프로젝트 앞에서 '다 된 밥에 재 뿌리고 싶지 않은' 윗사람들의 마음.
그 마음은 수치화되지 않고, 공식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것을 결정짓는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세상의 외력이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며칠은 집 안에 칩거했다. 기운 없이 앓아누웠다.
자꾸 진급 발표가 언제 나냐는 아버지의 집요한 물음에,
담담한 척 아쉽게도 진급이 안 되었다고 말하기까지 꼬박 이삼주는 걸렸다.
자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정의 열매를 먹고사는 '인정의 자아'가 넘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나고 손도 까졌다.
그건 남들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증명되고 그 안에서 나의 가치를 찾는 자아이다.
당연히 필요하고 필연적인 부분이다. 그런 부분들이 채워져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정'의 부분이 전체를 전복할 때이다. 비판 없이 세상의 잣대만을 받아들일 때이다.
세상에서 얼마나 '인정' 받고 가치 있는 인간인지는 수치적으로 계산되기 일쑤이다.
이를 테면, 연봉, 직급, 학벌, 재산, 외모의 등급 등등...
타이틀과 직위와 같은 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자아의 일부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박혀있었다.
그렇기에 존재가 부정된 양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뀔 수 있는 상황이고 조건들이다.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자아를 사회적인 인정과 지위에만 위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정의 자아를 삶의 중심으로 여기며 살 수 있다. 무엇이 틀리고 옳은 것은 없다.
의식적인 선택이건 무의식적인 굴레이건 간에 개인의 삶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삶과는 다른 자세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살아보고 싶다.
아, 처음에 콧물 이야기를 왜 했느냐. 수미상관을 이뤄야 하니까 이쯤에서 말하겠다.
나 홀로 방에서 울어 젖히며, 멋진 대기업 과장님이 되지 못해 맑은 콧물을 흘린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슬픈 감정은 콧물로 유려하게 표현되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울 때는 청초하게 눈물만 또르르 흐르지만, 콧물을 많이 흘리는 나는 예쁘게 울기에는 글렀다.
침대 위에는 맑은 콧물을 닦은 많은 휴지 조각들이 마치 위로하듯 이불 위에 쓰러져 있었다. 하나 둘씩, 나처럼.
눈물은 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콧물은 다르다. 콧물은 감정이 통제선을 넘었다는 신호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이, 그 날 얼굴을 밀고 나왔다.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콧물을 흘렸나요? 인정으로 채우지 못해 무너져 내리며 흘린, 그 진짜 감정의 흔적 말입니다.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매주 시리즈 연재 중으로 구독 부탁 드립니다.
<나를 알고, 말이 많아졌다> 시리즈는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의 조각들을 꺼내어 쓰는 기록입니다.
연애, 자아, 가족, 군대—삶의 여러 장면 속 감정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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