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삼각지대(Ego Triangle) - 소유와 인정의 자아 사이에
왜 우리는 성공해도 허전할까?
왜 누군가의 시선에 따라 내 삶이 결정되는 느낌이 들까?
이런 질문은 결국 '진짜 나'라는 자아에 도달하게 한다.
그리고, 자존심과 자신감과 자존감을 구별할 수 있는가?
이 글의 끝자락에, 그에 대한 나의 답이 있다.
자아를 세 겹으로 나누어 본다.
버뮤다 삼각지대가 아닌,
자아 삼각지대.
영어로는 Ego Triangle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소유의 자아, 인정의 자아, 그리고 나만의 진짜 자아.
타인의 시선에 따른 삶이 정답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성취와 증명이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되고, 성공이 행복이 된다.
이는 사회의 구조 상 자연스럽고 단단하게 형성된 무의식적 신념이다.
어릴 적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육기관의 평가 시스템은 성적에 따라서 당근과 채찍을 주며, 대부분의 부모 역시 그런 비슷한 구조에서 자라왔기에 자신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직장과 사회에서 또 평가받으며 비교하고 또 그들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게 되는 굴레 속에 산다.
숨이 찬다.
타인을 통해 형성되는 자아인 소유와 인정의 자아. 그것은 성취하고 증명하고 세상에 성공한 나를 선보이는 것이다.
소유의 자아는 가진 것들로부터 형성된다.
재산, 서울의 아파트, 고급 차, 사업체 같은 것들.
사회의 기준에서 "가졌다"는 것은 곧 가치 있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신호가 된다.
이 자아는 ‘나는 이만큼 가진 사람이다’라는 자기 정의 위에 놓인다.
소유를 통해 남들보다 더 누리기도 하고, 인정받기도 하고, 우위에 서기도 한다. 반대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원망한다.
소유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려고 할 때다. 그리고 소유로만 타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세상을 판단할 때이다.
그리고, 그 소유를 위한 과정에서 떳떳하고, 정당했는지 혹은 사회 정의와 인간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하다. 가치 실현을 위한 소유와 그를 위해 투입한 노력과 가치관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열정은 숭고하다.
인정의 자아는 사회적 위치, 타인의 시선,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판으로부터 형성된다.
학벌과 직업, 동료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입지, 자랑스러운 딸...
그 모든 것이 존재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위치에 서 있길 바랐고,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정에 갇혀 스스로 잃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인정의 자아에만 몰두하여 형성된 자아는 마치 모래성처럼 비가 온다면 쉽게 쓸려 내려간다. 그리고 평생 가득 채워지지 못한다. 부어도 부어도 쓰면 소진되는 연료이기에 나를 인정해 줄 타인이 무한정 필요하다.
인정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값진 소금이기도 하다. 건강한 성장을 위해 우리는 적절한 인정을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인정과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쌓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실력을 쌓아나간다.
오직 소유와 인정만으로 형성된 자아의 공통점은 성취하고 증명할수록 그 끝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소유를 통해 인정을 받기도 하고, 때론 인정받는 것이 소유를 가져오기도 하다.
지상에서 우주까지 이어진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더 앞서 있는 사람들의 빛나는 뒷모습을 본다. 성층권까지만 가도 산소가 줄어 숨이 차다. 내 앞에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막상 내가 상상했던 행복이 아니기에 맹목적인 증명은 공허하고 허탈하다.
나만의 진짜 자아는 내면의 감정과 스스로에 대한 감각이다.
그건 아주 작고 조용한 내면의 소리다. 귀가 밝아야 들을 수 있다.
밖의 잡음과 구별해 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불안과 진심을 구별할 수 있을 테니.
이 자아는 이렇게 묻는다.
"너는 어떤 삶을 원해?"
"너의 눈빛은 언제 살아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그려?"
요즘은 감각적으로 알아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감각에 집중하여 느끼는 연습을 통해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나에게는 없을 것만 같던 취향을 탄생시킨다.
간지러운 바람, 입체적으로 울리는 파도 소리,
멍하니 바라보는 자연 풍경,
마음이 설레는 사람과의 시간.
그런 순간들이 자아의 중심을 두드린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감각은, 누군가에게는 서울 아파트보다 더 큰 자산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부여했거나 성취한 이름표들을 떼어내고, 남의 시선이 없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아직 어렵다. 심지어 욕구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인정하고, 선택하고, 일구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그다음으로 찾아온 질문은 사회와 나 사이의 거리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와 추구하는 삶 사이에서 인정의 자아와 진짜 자아가 충돌할 때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때로 날 깊이 괴롭힌다.
‘결혼은 했니?’라는 질문보다 먼저, ‘너는 어떤 삶을 좋아하니?’라고 묻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세 자아는 공존한다. 하나만 추구하며 살 수는 없고, 하나를 외면한 채 살 수도 없다.
진짜 나만의 자아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이 마음대로만 산다는 것은 아니다. 자아 삼각지대 안의 중심점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느 중심점으로 사는 것이 자신의 가치와 행복에 맞을지에 대한 규정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어느 위치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때론 그 추구점에 따라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인정하기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자존심은 소유와 인정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형성된다. 남이 높여주면 높아지고, 남이 깎아 내리면 깎인다.
자신감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확신과 감각이다.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자존감은 높고 낮음보다는 있고 없고의 영역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포기한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괜찮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무게중심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 질문은 올해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것. 그리고 그 방향에 따라 작은 결단을 내리는 용기를 갖고 싶다.
당신의 자아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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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말이 많아졌다> 시리즈는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의 조각들을 꺼내어 쓰는 기록입니다.
연애, 자아, 가족, 군대—삶의 여러 장면 속 감정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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