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삼각지대 (Ego Triangle)
경제적 자유가 목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소유’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법원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사법기관의 상징이 주는 웅장함과 묵직함에 감탄을 했다.
법원 경매장에 이름이 울려 퍼졌다.
“ooo님, 최고가 낙찰되셨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말했다.
“젊은 여자가 낙찰 받았네.”
얼떨떨한 얼굴로 앞으로 나가 서류 봉투를 받았다.
그 순간, 약간은 비현실적인 기분 속에서 묘한 뿌듯함과 흥분이 밀려왔다.
‘이렇게 몇 번 더 하다보면 부동산 여러채의 자산가가 될 수 있겠다.’
경제적 자유.
그것에 꽂혔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더 깊은 종교 세계로 이끌었다.
부동산 경매의 신을 추앙했고, 또래에 경매로 30억을 벌었다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샤워를 했다.
경매 브로커에게 홀린 듯, 그의 추천 물건 입찰을 위해 경주마처럼 법원에 달려갔다.
처음엔 자유를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점점 낙찰이 목적이 되었고, ‘가졌다’는 사실이 나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그 시기쯤 이런 말을 했다.
“나이 들수록 동창회 가면 돈 많은 애가 최고야.
어릴 땐 명문대, 대기업이 최고였지만
이제는 모임에서 밥 사고 돈 내는 사람이 제일 대접 받아.
서울대 가서 일용직으로 힘들게 사는 애도 있고,
공부는 못했는데 사업해서 돈 잘 버는 애도 있거든.”
그 말을 곱씹었다.
그래, 대한민국에서 소유로 증명하려면 결국 부동산이야.
그게 가장 확실하고, 강력하다.
매번 패찰할 때마다 오기가 생겼다.
하나에 꽂히면 미친 듯이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다 결국, 낙찰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가 진짜 시작이었다.
브로커는 법원에 정식 등록하지 않고도 대리입찰을 하는 신뢰하기 어려운 기관의 사람이었다.
수수료 송금 전 계약서를 써달라고 하자,
버럭 화를 내며 “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갑과 을이 되냐”고 했다.
말투도 어느새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뀌었다. 지금껏 알기론 스승과 제자였던 적이 없다.
은행 대출을 받으려 하자 법무사 사무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비용을 요구했다. 어이가 없어서 한참 줄다리기 끝에 겨우 적당한 선에서 깎았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건물의 많은 집들이 대단하신 전세 사기꾼 소유의 부동산이었다.
낙찰받은 집은 이미 명도가 끝나 비어있는 집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정체불명의 ‘아들’이란 사람이 메트리스 하나 깔고 살며 “이사비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사기꾼은 전화기 너머로 욕설을 하며 다짜고짜 집에 불을 지르겠단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처럼 전세사기꾼 전모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된통 당한 사람들의 단톡방에도 들어가 봤다. 그 안에서 본 삶들은, 너무 참담했다.
집도 직접 고쳤다.
화장실 타일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사람을 불렀더니, 처음 말한 금액과 수리 당일 부른 금액이 달랐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진심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이런 양아치'를 되뇌었다.
하나하나 해결하려니 긴장감에 도파민과 엔돌핀이 쏟아졌다. 각성이 되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정신이 과하게 살아 있는 느낌.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 느낀 건 있었다.
회사원은 온실 속의 화초이고,
사회는 등을 쳐먹으려는 하이에나들로 가득하다는 것.
결국, 모든 절차를 마치고 월세 세입자를 받았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유쾌한 부부였다.
근처 회사를 다니는 커플이었고, 그들도 화초류라는 약간의 동질감도 느꼈다.
안도감과 함께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약간의 허무함도 있었다.
재산이 자유의 수단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유가 자아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점점 부추겼다.
그 이후, 건물의 다른 집들도 줄줄이 경매에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원하는 금액엔 팔리지 않고 있다.
손해까지는 아니지만, 대단한 메리트도 없다.
월세 수익은 나지만, 감정적으로는 애매하다.
그래서 가끔 그 브로커를 원망한다.
건물 전체가 전세사기로 경매매물이 많은지 확인도 안 하고 부추겼다고.
남들은 더 싸게 샀는데, 왜 나만 이 가격에 샀냐고.
솔직히 브로커 탓만은 아니다.
감각이 잠시 마비돼 있었던 자신을 바라봤어야 했다.
소유를 통해 자아를 증명하고 싶었고, 증명에 눈이 멀어 있었다.
성급하지 않게 충분한 공부와 숙고의 시간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이 경험은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법, 세금, 대출, 사회의 민낯, 그리고 욕망의 모양까지.
과정을 겪으며, 주도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에 만족을 느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어른의 세계를 몸소 경험하고, 하나씩 배워나가고 성장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또한, 처음부터 기획하고 수익을 만든 것까지 하나의 비즈니스 축소판이었다.
앞으로도 경제적 자유를 위한 고민과 실천은 계속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숙명 같은 주제이다.
그렇기에 소유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소유로 자아를 증명하려는 욕망에 가치와 이성이 잠식되면 안 된다.
진정한 소유란, 결국 내면의 성찰이 다져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일굴 수 있고,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 첫 부동산 경매 체험기를 통해 진하게 남은 건,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건, 소유의 자아에 대해서 배운 한 편의 인생 수업이었다.
메아리쳐 들려오는 질문, 나의 중심은 무엇일까?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자아의 증명 방식’—사회적 타이틀과 인정에 대한 이야기.
〈인정 자아: 멋진 대기업 과장님의 콧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