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착한 딸이라는 틀. 그 안에 맞추지 못 하는 마음

<나를 알아가고, 말이 많아졌다> 4년간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 언어

by 바람꽃

나를 감추며 살아다.
좋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고, 살아가고 싶은 삶이 기존의 틀과는 달랐을 뿐인데,
설명하지 못한 채, 눈치 보며 애써 웃거나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설 명절 식탁 위, 뜨거운 국물은 식지 않았지만 내 안의 온도는 벌써 미지근해졌다.



엄마는 밥을 한 숟갈 뜨다 말고 다시 말했다.

'그래도 이번엔, 좋은 사람 생기면 좋겠다. 사위가 너무 보고 싶어'

옆에서 아빠도 거든다. '결혼은 모르겠고 어디서 예쁜 손주만 좀 데리고 와라'

젓가락을 놓고 물을 마시는 척 입을 다물었다.

입안에 있던 국물이 순간 쓴맛으로 변했다. 결혼 이야기는 감정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하고 싶었던 말들이 목구멍 어딘가에서 덩어리져 있는 것 같았다.




방패와 에어팟, 명절 생존 전략



시간이 조금씩 흐르다 보니, 나름의 요령을 찾아보고 있다.

우선, 가족들을 보러 가기 전에는 방패를 하나 챙겨가야 한다.

이런저런 공격과 화살을 막을 수 있는 방패 말이다. 내 방패는 무쇠도, 무적도 아니라 자주 뚫린다.

그래도 맞는 건 아프니, 살뜰히 챙기자. 아뿔사 여러 변종 수법에 종종 막지 못할 때도 있다.



때로는 듣는 척하면서 한쪽 귀로 흘리기 전법도 구사한다. 한쪽 귀에는 가상의 에어팟이 최대 볼륨으로 틀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모든 소리를 다 듣기에 나는 충분히 단단하지 못하다. 톡톡 터치해서 노이즈캔슬링 ON, 음악은 멜론 차트 top 10.

다만, 이 방법은 화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불러오니 더 강도를 높이는 다소의 부작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상의 에어팟-에스파 음원이 들린다

그리고 다음 방법은 레벨이 더 높은 숙련자들이 쓰는 방법이다. 역시도 '너무 결혼이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다'라고 울상을 짓는 것이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 오버해서 공감하고 속상해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격상 그 정도의 메소드 연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별로 결혼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해왔다. 하지만 그분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복 공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행복을 바라신다. 다만, 그들의 행복과 만족일지 나의 행복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나의 방패

아, 하나만 명확히 짚고 넘어가겠다. 나는 누군가와 평생 동반자로 살고 싶다.

꼭 결혼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고, 계약과 인정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사실 오래도록 꺼내지 못한 마음이 있다.

그건 단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그 방식이 기존의 틀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걸 말하지 않은 채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이 자꾸 쌓여갔다. ‘결혼’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관계의 방식. 그걸 있는 그대로 말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질까 봐 겁이 났다.



여러 삶의 방식과 관계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고, 가족 형태에 대한 고민이다.

중요한 건 관계의 이름이나 조건이 아니라, 감정의 결과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무게다.

사회적인 제도나 계약, 지어 성별 같이 상대방에 대한 틀과 조건도 상관없을 수 있다.



지금까지 연애는 늘 있었다. 설레고 행복한 연애도, 불안을 채우기 위한 만남도 있었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이 감정이 ‘정상’이 아닐까봐 겁났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야말로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되었다.



착한 딸로 살아남는 법, 너무 일찍 배웠다


어릴 적부터 동생을 챙겨야 했던 '쌍둥이 장녀'였고, 혼나지 않기 위해 항상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려 노력했다. 산만하고 어수룩해 걱정의 대상인 동생과 비교하며 스스로 안도했던 기억들, 자연스레 '덜 걱정스러운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틀에 맞추어 아주 성실하게 살아왔고 칭찬받는 아이였다.

어쩌면 누군가의 기준에 잘 맞는 아이로 살아남는 법을 너무 일찍 배운 건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조부모님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삶의 형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신 분들이다. 자식을 있는 대로 인정해 주기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세대 차이도 있겠지만, 그분들이 살아온 세상과 물려 내려오는 집안의 정신적 사고의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정을 꾸리는 딸’을 꿈꾼다.

나는 ‘나로 살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우리는 서로의 꿈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설득하려 한다.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정체성에 대해 처음 의문을 품고,

직접 탐색을 시도했던 건 미국 교환학생 시절이었다.

그곳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고,

남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과하다는 분위기였다.

자유로웠고, 조금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느꼈다. 꼭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K-30대 필승 공략 육각형 공식

10년도 더 지난 지금 깨닫고 있다. 그러면서 고군분투 중이다.

'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가 내게는 틀로 느껴진다.



부모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이 지난 몇 년간 인생의 주요 생각거리였고,

이제는 사회와 나의 적절한 거리가 화두가 되었다.

한국은 제도화된 결혼을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는 구조이다.

나는 그 기대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할까?

나는 지금 조금씩이라도 나의 틀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육각형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질문들


우리 집에서 착한 딸이 되기 위해서는 K-나이대별 퀘스트들을 하나하나 잘 돌파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딸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선택이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착한 딸'이라는 틀, 어쩌면 그 '틀'에는 잘 맞지 않을 수 있겠다.



이제는 ‘착한 딸’이라는 칭찬보다, 내 기준에 맞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더 듣고 싶다.

누군가는 말한다. 딸로서, 여성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예쁘게 각진 정육각형 안에 살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 틀은 모서리가 너무 날카롭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혹시 당신도, 눈앞에 놓인 틀에 들어가지 않는 자신을 불편해한 적이 있을까.

그럴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를 무조건 끼워 맞추기보다, 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내가 가진 세 자아를 마주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다음 편에서는 그 틀을 조금씩 벗겨내며 드러난 나의 세 자아, ‘소유 자아’, ‘인정 자아’, 그리고 ‘진짜 자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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