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왜 나르시시스트들을 섹시하다고 느꼈을까

그 반짝임은 투사가 만든 환상이었다

by 바람꽃


그들은 잘난 척했고, 그게 멋져 보였다


자기애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자기애적 성향이 지나치면, 관계 속에서 그 마음은 왜곡되어 드러난다.

물론 그런 성향 강하다고 모두 나르시시스트는 아니다. 자기애가 병적인 수준으로 발현되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갈등과 왜곡을 낳는 사람을 우리는 나르시시스트라 부른다.

그리고 이들은 반드시 과시적이거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 없어 보이고 소심한 유형도 있다.

내가 만났던 몇몇 사람들을 나르시시스트라 단정하진 않는다. 다만 자기애적 경향이 강한 사람들이었고, 그 점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상담사님이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ㅇㅇ씨는 왜 힘들면서도 그런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만났을까요?"

"글쎄요… 뭔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느끼셨을까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어느새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저도 마음 한구석에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잘나고 싶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요. 어쩌면 저도 비슷했는지도 몰라요."

"잘했어요.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생각을 해봤다. 묘하게 흥미를 느꼈던 몇몇 사람들의 공통점. 쉽게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마음이 로딩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런 내가 빠르게 반응했던 사람들에겐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만이 느끼는 어떤 섹시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느낌이 있는 몇몇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관심이 갔던 적이 있다.



몸이 좋고 잘생긴 회피형 남자, 성공을 향해 달리는 듯한 스마트한 선배, 금수저임을 강조하며 용산 아파트 몇 채를 자랑하던 전문직, 언제나 인기의 중심에 있고 싶어 했던 썸...



그들에겐 공통된 아우라가 있었다. 바로 "잘난 척"하는 분위기였다.

남들보다 똑똑하고, 남들보다 우월하고, 성공지향적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 반짝임의 정체는 결국 ‘인정 욕망’이었다. 놀랍게도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해는 마시라. 실제로 그런 사람들과 깊은 관계로 발전한 경우는 거의 없다. 연애의 90퍼센트는 저돌적으로 다가오던 사람들, 비교적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객관적 지표로 보았을 때 - 학벌, 연봉 등- 딱히 그들이 대단히 잘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우월하고 싶은, 상승 욕구'를 강하게 가졌던 사람들인 것 같다.

잘난 척 찾는 레이더, 내 안에 있었다

잠깐, '끌린다'는 건 뭘까?


생각해 보면, 끌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결핍에서 비롯된 충동적인 끌림이다. 내면의 풀리지 않은 상처나 결핍, 혹은 과거의 투사가 반복적인 끌림을 만든다. 비슷한 유형과 반복되는 관계에 빠진다면, 그건 이 부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관계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성숙한 끌림이다. 상대를 천천히 알아가며, 성격과 가치관, 인성을 이해하면서 생기는 감정이다. 신중하게 사람을 보는 방식이고, 더 안정적인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본인과 잘 맞을지도 현명하게 고려해 볼 수 있다.


30대에 깨달았다.

그들이 반짝여 보였던 이유는, 그 반짝임 속에 욕망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들은 타인의 인정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근본적인 자존감은 약했고, 그 공허함을 칭찬, 성취나 과시로 채우려 했다.

그 우월감은 사실 열등감에서 온 것이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의어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에 증명하려 하고, 타인의 시선에 의지하며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남이 채워주는 인정이 연료가 되어 그 위에 성공의 신기루를 만든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사라지고, 남는 건 허무함이다.

그들은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적으로도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이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그 틀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란 뜻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은 인정받기 위해 애쓴다. 나 역시 그 안에서 버티고, 맞춰가며 살아간다.


자기애적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인정받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문제는 그 욕망이 타인의 인정 없이 견딜 수 없는 상태로 고착될 때다.



반대로, 건강한 자기애란 이런 것이다.

타인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도 나를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힘.

자신을 위로하고,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트로피, 스펙, 소유물, 성공.

그 모든 것을 떼어낸 ‘나’.

그 나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짜 건강한 자기애다.



이제는 그런 반짝이는 껍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전만큼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반짝임에 시선을 두는 대신, 자신을 조금씩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이 글에서 말한 나르시시스트는 단순히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고, 타인을 조종하거나 상처입히는 관계를 반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혹시 자신도 인정 욕망에 흔들린 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고, 당신이 나르시시스트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를 알고, 말이 많아졌다> 시리즈는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의 조각들을 꺼내어 쓰는 기록입니다.

연애, 자아, 가족, 군대—삶의 여러 장면 속 감정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다음 편: 《‘착한 딸’이라는 틀, 나는 그 안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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