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 인턴이 되다 6화
내가 일했던 회사는 디자인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문화와 복지가 좋은 편에 속했다. 가장 좋았던 순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자율 출퇴근
회사는 8시부터 11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는 자율 출퇴근 제도를 운영했다. 출근 시간이 자유롭긴 했지만, 보통은 8시30분에서 9시 사이에 출근을 했던 것 같다. 일반적인 회사와 비슷하게 9-6를 유지했음에도 이 제도가 나에게 최고였던 이유는 6개월 동안 아침 알람에 대한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혹시나" 하는 불안 때문에 알람을 30개 정도 맞춰두는 편이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부터는 그래도 10개 정도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병원을 다녀오는 것 마저도 자유로워서 좋았다. 자리를 비운 시간만큼 일을 추가로 하면 되어서, 몸이 아플 때도 부담감이 덜했다. (부담감이 덜하니 회사를 다니면서 아팠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님' 자 호칭 사용
회사에서는 모든 직원이 '님'으로 통일된 호칭을 사용했다. 인턴을 하기 전, 회사 공고에서 '님' 자 호칭을 사용하며 수평적인 문화를 중시한다는 문구를 볼 때마다 "호칭 하나로 그런 차이가 생길까?"하는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실제로 '님' 자 호칭을 사용하는 문화를 경험해보니, 호칭의 변화만으로도 수평적인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처음에는 누구를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다. 그러나 '님' 자 호칭에 익숙해지고 나니 다른 동료 분들과 나이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아 의견을 표현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덕분에 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평적인 문화, 좋은 분위기
내가 일했던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를 매우 중시했다. 일단 인턴과 정규직을 구분하지 않아서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었고 논리적인 근거만 있다면 의견이 반영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인턴임에도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해볼 수 있는 기회들이 정말 많았다. (인턴의 목적이 경험이 아니라 그저 월급이었다면, 힘들다고 느껴질 수 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피플팀에서도 온보딩을 굉장히 신경써주셨다. 특히 입사 후 100일이 되면 집으로 꽃다발과 쿠키 세트를 보내주시는데, 처음에 이 선물을 받고 '인턴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준다고?' 하고 놀라기도 했다.
조식 제공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조식 복지를 꽤나 좋아했다. (TMI지만 조식에는 밥류, 빵류, 기타류 등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고 한 달 전에 30일치를 미리 선택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살면서 하루에 3끼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회사 조식 덕분에 3끼를 먹게 되면서 6개월 동안 갑작스럽게 살이 찌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자유로운 복장
회사를 다니면서 후드티 쇼핑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자유로운 복장 덕분에 청바지와 잘 어울리는 후드티를 사랑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복장이 뭐가 중요해?'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반성해)
자유로운 연차 사용
자유롭게 연차를 사용할 수 있어서 날씨가 좋은 4월에 연차를 쓰고 도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 당시 일하는 것이 너무 적성에 맞아서 굉장히 행복한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 여행까지 가니 행복함이 Max 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물론 돌아오니 굉장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예를 들면 갑자기 바뀐 회사의 조직 체계..예를 들면 갑자기 바뀐 회사의 조직 체계..) 그럼에도 이 복지가 거의 마지막에 언급된 이유는, 일을 더 하고 싶었던 내게 자유로운 연차 사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feat. 성장에 갈증을 느끼는 인턴)
재택 근무
앞에 나온 다양한 복지들 중 나에게 제일 맞지 않았던 복지는 재택 근무였다. 카페에 가지 않고도 방에서 할일을 잘하는 내게 재택 근무는 최고의 복지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대학교 과제나 개인적인 할 일을 하는 것과 회사 업무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던 것이다.
먼저 회사의 재택 근무 횟수를 이야기해보자면, 인턴 초반 3개월 정도는 주 1회 재택 근무가 기본이었고 후반 3개월에는 주 2회 재택 근무로 변경되었다. (해당 횟수는 팀바이 팀으로 리더의 재량에 따라 변경이 가능했다)
재택 근무가 나에게 맞지 않았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회사에서는 큰 모니터 두 대와 노트북을 사용해 여러 개의 창을 띄우고 작업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는 노트북 한 대로만 일을 해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또한, 재택 근무 날 회의를 할 때는 서로의 목소리만 들으며 회의를 진행했는데,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할 수 없어 답답했다. 실제로 가끔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INFJ는 약간의 전화 공포증이 있어서 이런 상황이 더 괴로웠다)
이런 이유로 재택 근무 날에도 회사에 몇 번 나간 적이 있다. (근데 이제 보통 목금에 다들 재택을 하니 팀에 사람이 없는 이슈로 결국은 재택을 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돌이켜보니, 6개월 동안 좋은 조직 문화 속에서 행복한 기억들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조직 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나게 되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회사를 목표로 인턴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우연히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나로서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가 가고 싶은 회사를 찾기 위해서는,
자소서에 나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소서에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고집스럽게 적었더니, 그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을 만났고, 그분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처럼 좋은 분들이 많은 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자소서에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고집스럽게 적는 것이 오히려 좋을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홍연, 인턴이 되다> 시리즈는 글로벌 마케팅 인턴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홍연툰도 https://www.instagram.com/red.yeon_/ 연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