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우끼에서 멈춘 발걸음
나는 "P"이지만, 여행 계획은 철두철미하게 세우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이랑 의견 다툼이 있을 때가 있었다. 또한 "내일로"를 이용해 기차여행을 갔을 때, 친구는 너무 빡빡한 스케줄을 이기지 못하고, 전주에서 한복을 입은 채 어느 팔각정에서 숙면을 취한 적도 있다.
이런 성격의 나지만 스페인에서만큼은 일정과 계획에 상관없이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왕복 비행기 표가 아닌 편도 비행기 표만을 구매해 스페인에 왔다. 돌아가는 일정에 얽매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관은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여유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다음 마을까지 걸어갔다. 그 덕분에 내 발엔 물집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미국인 리라와 로르까까지 동행하던 중 나는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시라우끼라는 마을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곳에서 하루 머물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포근한 느낌을 주는 건물
푸른 하늘에 점찍은 구름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너무 완벽한 분위기에 취한 나는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한 뒤, 콜라를 마시고 성당 앞 밴치에 누워 시에스타를 즐겼다.
뙤약볕은 그간 강행군으로 피곤했던 나의 몸과 발을 마사지해 줬다.
1시간 정도 낮잠을 잤을까? 잠에서 깬 나는 생각했다.
'나는 쉴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휴학 없이 대학교 졸업 후 병사로 군입대를 한 뒤, 전역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취업을 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휴가를 쓰지 않아 퇴사 당시 휴가도 많이 남아있었다. 딱히 휴가나 반차를 사용해서 할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쉼과 여유로움을 배우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었다.)
분위기에 취한 것일까? 저녁식사는 정말 너무 맛있었다. 식사를 끝마치자 만 78세의 일본인 할아버님께서 모두에게 선물을 주셨다. 자신의 명함과 손수 접은 가리비였다.
2번의 순례길 도전
1,000Km가 넘는 일본 도보 종단 도전
나는 그의 도전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하지 못하지만, 모두에게 손수 접은 가리비를 선물로 주며 걷는 그의 모습에 뭔지 모를 감동을 느꼈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순례길에선 자주 느낀다.
맛있는 저녁과 종이 가리비는 계획에 없던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며 얻은 것들이다. 마음이 시키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우연찮게 즐길 수 있었던 사소한 추억은 행복한 감정을 수백 배 증폭시켰고,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가끔은 관성에서 벗어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