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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ㅡQuestion Nov 08. 2023

지워지지 않는 미소

훈장과 함께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양치를 하기 위해 침실 밖을 나가던 중 비어있는 침대를 발견했다. 바로 타케다 할아버지의 침대였다. 정말 부지런하시다는 생각을 하며 씻고 알베르게를 떠났다.


시라우끼

달빛에 의지하며 길을 걷던 중 어제의 추억이 벌써 그리워 뒤를 돌아봤다. 가로등과 함께 시라우끼를 밝혀주는 별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별들이 스페인에서는 정말 잘 보였다.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기 너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길을 걷다가 물병을 떨어뜨렸다. 플라스틱 물병이었는데, 바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너무 과거의 추억만을 회상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처럼 느껴졌다.

마트가 나올 때까지 물 없이 걸어야만 했다. 순례자의 길 모든 마을에 마트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물 없이 걸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일진이 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며

오르막길과 내려 막길이 반복되는 길을 걸으면서도 내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어제 리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힘든 길을 걸어도 나의 얼굴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아요."


마음가짐의 차이일까?

물집 잡힌 발과 짓눌리는 어깨,

쑤셔오는 무릎과 올라오는 근육통,

아침부터 마시지 못한 물,


이 모든 것은 아직 나의 미소를 지우기엔 부족했다. 물집은 나의 훈장이라는 생각과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에 도착했다.


프랑스 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이 알베르게의 오픈 시간은 2시였기 때문에 숙소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2시에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고, 예약을 하지 않은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다행히 침대에 여분이 있었으며,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나는 운이 좋게 단층 침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순례길 첫 단층 침대였다. 아마 창문 때문에 2층 침대를 설치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Albergue Oasis Trails에서 본 풍경

창문 밖 풍경은 내가 씨에스타를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 네덜란드인과 대화를 하게 됐다. 그는 순례자 정식의 메뉴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돼,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 나는 리타와 리라를 만날 수 있었다.


리타는 시수르 메노르에서 같은 알베르게를 사용했던 친구였고, 리라는 어제 시라우끼에서 헤어진 친구였다. 많은 도시를 지나 주요 마을이 아닌 곳에서 같은 알베르게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라는 고민도 잠시, 그들과 회포를 푼 뒤 나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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