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해야 하는 이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나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공유할 희로애락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까? 여러 감정을 공유할 정도로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아서일까?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까? 속이 좁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순례길을 걸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동행하는 것은 나를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몬하르딘에서 로그로뇨까지 약 40km라고 까미노 닌자 어플에 나와있었기 때문에 내일 도착지를 로그로뇨까지 갈지, 비아나까지 갈지 결정하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평소와 같이 5시 ~ 6시 사이에 눈이 떠졌기 때문에 준비하고 나왔다.
우연히 리타와 출발 시간이 겹쳐 우리는 같이 걸어갔다. 서로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속도를 맞춰 걷는 것만으로도 평소보다 덜 힘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중간 벤치에서 헤어진 뒤 나는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을 땐 조금 재밌는 현장을 목격했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과 "당신의 동전 한 닢이 여기 있는 동물들의 먹이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라는 한국어 푯말이 있었다. 먼 이국땅에서 동물을 위해 기부해 달라는 한국어 푯말이 너무 신기했다.
신기함을 뒤로한 채 여러 마을을 혼자서 걷던 중 날이 더워진 날씨에 약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레스 델 리오에서 콜라와 바나나를 먹은 뒤, 물을 받아 비아나로 출발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걷던 중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시라우끼에서 봤던 덴마크 친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문뜩 나에게 특이한 질문을 했다.
"너는 왜 이 더운 날 긴팔을 입고 있니?"
기능성 티셔츠라는 단어를 영어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파고로 번역한 독일어를 보여줬다. 사실 나는 그가 독일어로 독일인과 대화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당연히 독일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독일어를 할 수 있는 덴마크인이었다.
정말 너무 미안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덴마크에서 유명한 것은 레고와 인어공주라는 사실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덴마크 또한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의 배낭은 군용 배낭이었으며, 신발은 군화였다.
나는 호카 오네오네를 신고 있었는데,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도 군화를 신고 올걸....'
군화는 중등산화보다 가볍고 방수도 되기 때문에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는 아쉽게도 푸드트럭 앞에서 헤어졌다. 비아나에 도착한 뒤 나는 9.8km 떨어진 로그로뇨까지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고민하던 중 덴마크 친구와 재회했다. 그는 비아나에서 머문다고 했다.
나는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로그로뇨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을 예약했다.
그렇게 약 10km를 혼자 걷게 됐다. 그때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식수대가 없는 길.
씨에스타 타임.
점점 줄어가는 물.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늘.
데워진 아스팔트.
나 홀로 걷는 길.
이대로 가다 쓰러지면 다음 날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로그로뇨에 도착했지만, 예약한 호텔은 로그로뇨 끝에 있어 약 10km를 더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그날 총 48km를 걷게 됐다. 호텔에 도착한 뒤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비아나까지 힘들지 않게 왔던 이유는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동행한다면 아무리 힘든 길도 힘들지 않게 느껴지며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보다 재밌게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