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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Oct 11. 2024

구릿빛 얼굴이 좋다.





써니빌은 H전주는 아니지만, 수변전실에 야외에 있다. 전원주택으로 조성한 부지의 한쪽 구석에 콩색으로 칠한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고 그 안에 고압을 받아 저압으로 변전해서 각 가정으로 공급하는 시설이 있다. 거기는 모자를 쓰고 나가야 한다. 모자는 써도, 운전을 하면서 여기까지 온 썬그라스는 바꿔 껴야 한다. 썬그라스에는 도수가 없어서 계량기의 글자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돋보기를 쓰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점검을 했다. 이제 이 마을을 조성하고 분양하는 대표를 만나면 된다.


  “대표님, 지에스전기입니다. 이제 점검을 마쳤는데, 집에 계십니까?”

  “예, 집에 있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차에 가서는, 이제 글씨는 안 봐도 되니까 썬그라스로 바꿔 썼다. 점검할 때 썼던 카우보이모자는 차에서는 또 쓸 수가 없다. 모자 뒷차양이 운전석 의자 머리받이에 걸려 불편하기 때문이다. 700m 되는 거리를 운전을 해 가서 이대표를 만났다.

  “전기는 이상 없습니다.”

  “아, 예. 그런데 썬그라스가 잘 어울리십니다.”

  “예, 감사합니다. 요즘 날씨가 하도 강렬해서 썬그라스를 써야 합니다. 저기 빨래도 보세요. 다 구워졌습니다.”

  “빨래가 구워져요?”

  “예. 요즘은 빨래를 말리는 정도를 지나서 햇볕에 굽는답니다. 햇볕이 하도 강렬해져서요. 빨래가 잘 구워졌겠는데요?”

  “이제 거둬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썬그라스가 보통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이뿐이 아닙니다. 제 차에는 카우보이모자도 있습니다. 썬그라스에 카우보이모자에.... 제가 멋을 내려고 끼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 대항해 살아남으려면 하는 수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쨌든 연세에도 저항해서 이렇게 활발히 활동하시는 모습을 뵈니 참 좋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썬그라스에 모자만 쓰는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햇볕에 나가 살려면 얼굴에 썬크림도 발라야 한다. 그래야 더 늙으면 얼굴 피부가 쪼글쪼글해지지 않는다마 뭐라나. 아침마다 발랐다. 세수하고 면도하고 바르는 로션만 바르고 살았는데, 이 일을 하면서 날이 뜨거워져 얼굴이 타지 않게 썬크림도 발랐다. 


  이것도 깜빡 잊고 그냥 나가기 일수였다. 면도를 하고 스킨을 바르는 것이야, 면도를 하면 까끌거리는 느낌이 워낙 까칠해서 잊지 않고 바르게 된다. 그 다음에는 뭐, 신경 쓰이는 것이 없으니까 차 열쇠 주머니에 넣고, ‘이것 없으면 하루를 못 살지’하는 카드를 넣은 목걸이를 목에 걸면 출근 준비 끝이다.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넣고, 출입문 앞에 사다 놓은 물병을 하나 손에 들고 집을 나선다. 차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려면 생각이 난다.

  “아이고, 썬 크림을 안 발랐네....”

시동을 끄고 집으로 다시 올라왔다. 이걸 한 번을 더 하고는 아주 썬 크림을 차에 뒀다. 시동을 걸고는 썬 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차 소리가 부드러워져, 시동을 켰는지 안 켰는지 모르게 될 때쯤이면 썬 크림도 다 바른다.  


  이대표와 헤어져서 차로 돌아왔다. 출발하기 전에는 꼭 물을 마신다. 아침에 내 차에서 회사의 법인차로 옮겨 탈 때 간장소금을 타 놓은 물병을 열어 물을 마셨다. 나는 평소에도 간식은 별로 먹지 않는다. 때와 때 사이에는 물만 주로 마신다. 땡볕에 돌아다니고, 더군다나 전기가 어떻게 흐를까, 고압 판넬을 열 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점검을 마치고 나면 물을 많이 찾게 된다. 다른 때는 물을 마셔도 의식해서 물을 찾게 되지만, 전기 점검을 할 때는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물을 찾게 되는 편이다. 


  지금 차를 출발하기 전에 물을 마실 때는 괜찮다. 양손으로 물병 뚜껑을 열고, 움직이지 않을 때 물을 마시고, 다 먹으면 다시 두 손으로 물병을 닫아서 운전석 옆에 놓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마실 때는 늘 꺼림직했다. 왼손은 운전대를 잡아야지, 오른손으로 물병을 잡고, 운전대를 잡은 왼손으로 뚜껑을 가져가, 오른손에 잡은 물병을 돌려 열어야 한다. 물을 마실 때도 눈을 앞에서 뗄 수 없으니까 물병 입구가 한 번에 입에 정확히 들어가기 어렵다. 입술 밑에 닿았다가, 입술에 닿았다가, 한 두 번은 꼭 입가에 닿았다가 입에 들어 건다. 


  입술에 닿기 전에 입가에, 그러니까 차 시동을 걸고 백밀러를 보면서 허옇게 바른 썬 크림에 닿은 물병 입구를, 입에 다시 대고 물을 마실 때는, 

  “이거, 이래도 되나?”

하고 생각은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하는데 말이다. 스케줄표는 출발할 때 봐 뒀지만, 다시 출발할 때마다 확인을 해야 한다. 엉뚱한 데로 갔다가는 먼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수용가 목록을 잘 봐야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정확히 칠 수 있다. 그래야 엉뚱한 데로 가지 않는다. 연락처를 확인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도 봐야 한다. 이걸 다 혼자서 해야 하는데, 운전하면서 물병을 찾아 뚜껑도 따야 한다. 뚜껑을 손에 잡은 채로 물병 입구를 입에 정확히 대기란 쉽지 않다.   


  이때는 운전석 옆에 앉아서 시중드는 아내 생각이 난다. 아내는, 

  “물.” 

하고 손만 내 밀면 물병 뚜껑을 열어서 입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되게 쥐어 준다. 

  “배고파.” 

하기만 하면 무엇이고 잎에 쏙쏙 들어가게 해 준다. 옥수수고, 감자고, 바나나고, 뭐든지 준비를 해 두었다가 주문만 하면, 입에 쏙쏙 들어가도록 넣어 준다. 오죽하면 재영이가 가장 행복할 때가 ‘사모님을 모시고 운전할 때’라고 했을까? 혼자 살아온 재영이가 말만 하면 입에 쏙쏙 들어오는 행복을 그 때 맛 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운전을 하니까, 내가 다 해야 한다. 


  지난주에 발행된 TIME지를 읽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결코 가볍게 넘기고 말 일이 아닌 것이 있다. 썬 크림을 바르고, 거기에 댄 물 병 입구를 바로 입으로 가져가 물을 마셔야하는 일  말이다. 썬 크림이 암병 발생이 높은 물질이라고 하지 않는가?  


  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 보건후생국 소속의 연방정부기관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쓰는 손세정제, 썬크림, 여드름치료제, 건조샴푸, 땀 흐를 때 쓰는 스프레이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것을 의약품(Medication)으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걸 그냥 생활용품으로 아무데서나 사서 쓰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인체에 직접 닿는 물건을 의약품으로 구분해서 인체에 유해한지 아닌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관리하는 한단다. 


  미국 FDA에서도 정보진공상태(Information Vacuum)가 있단다. 신상품을 개발하고 허가를 받아 판매는 하지만 아직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실험이 다 되지 않은 기간이 정보진공상태란다. 한 민간 기관에서 정보진공상태에 있는 의약품을 먼저 실험을 했는데, 여기서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언론에 먼저 발표를 한 모양이다. 그래서 FDA에서 회수조치가 발동되기도 했단다. 그러고도 FDA에서는

  “민간단체에서 고발을 해서 회수명령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FDA의 조사 결과 암유발물질이 포함된 것이 확인  되어서 회수조치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고 발표를 했단다. 언론이 그래도 민간단체의 편을 들어 은근히 FDA를 꼬집는 글을 쓰고 있다. 


  문제는 지금 나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썬 크림이 여기에 있다. 손세정제도 바르지 않고, 여드름치료제도 사용하지 않지만, 썬크림은 바르고 있다.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크림을 얼굴에 바르고는, 내 손으로 그 발암물질을 내 입으로 발라 넣고 있다. 운전을 하면서 물병 뚜껑을 열어 마시다가 여러 번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래도 얼굴은 좀 타고, 햇볕에 피부가 빨리 늙어 주름이 많이 져도, 암병이 발생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그전에 생활하던 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전에는 비누로 세수만할 때는 얼굴에 로션만 발랐다. 면도를 하면 로션을 바르기 전에 스킨을 발랐다. 스킨에는 알콜 성분이 조금 있어서 면도날에 조금 베인 곳이나 깎인 피부에 치료제도 되기 때문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 휴일에는 세수도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지 않는다. 땀이 나면 그것이 크림이라도 되는 듯이 얼굴을 쓱쓱 문질러 닦고는 말기도 한다. 


  이제 햇볕에 하루 종일 나다니며 일을 할 때도 이렇게만 바르고 나가야겠다. 모자는 쓰지만, 썬 크림은 바르지 않을 작정이다. 좀 타면 어떤가? 겉은 타도 속은 멀쩡하지 않겠는가? 썬 크림을 발라서 얼굴빛은 훤하고 깨끗해도, 화학제품으로 만든 독이 들어가서 속을 썩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우리 속에 세균이 들어가면 내 몸에 면역력으로 세균을 이겨 낼 수는 있다. 세균이 정 많으면 내 몸에서는 비상대책이 있다. 설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에 있는 영양분과 세균이 한꺼번에 몸 밖으로 나간다. 이제는 몸을 잘 추스르기만 하면 다시 살 수 있다. 약을 쓰지 않을 때도 이건 가능하다. 그러나 화학제품이 들어가면 내 몸에 있는 물질로는 이걸 이길 장사가 없다. 초토화된다. 


  지금은 벼를 낫으로 베지는 않는다. 콤바인이 논에 들어가 줄을 따라 몇 번 돌면 한 배미가 금방 끝난다. 옛날에는 아니었다. 일일이 낫을 들고 논에 들어가 벼포기를 잡고 낫을 당겨 벴다. 낫과 벼포기의 존재 싸움을 보자. 낫이 지나가는 대로 벼포기는 사정없이 눕는다. 벼포기가 낫을 당할 재주는 없다. 낫에 베어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벼포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시간만 지나면, 낫을 휘둘러 베기만하면, 낫이 닿는 대로 벼포기는 다 잘라서 눕고 만다. 한 배미를 다 베면 낫만 살아 있고 벼포기는 모두 죽는다. 화학물질이 몸에 들어가면 이와 같다. 얼굴에 발랐던 선크림 한 알갱이가 물병 언저리에 묻었다가 물을 마실 때 입으로 들어가 몸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 몸 밖으로 배출되어 나올 때까지 만나는 효소나 세포들을 모조리 죽이고 만다. 세포가 화학약품을 당할 재주는 없다. 초토화 된다. 우리 세포가 세균을 만나면 싸워서 이길 수 있지만, 싸우다가 못 이길성싶으면 설사를 일으켜 함께 몸 밖으로 나가 몸을 구한다. 하지만 화학제품을 만나면 벼포기처럼 죽고 마는 것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다.   

  이 화학물질이 몸 밖으로 배출이 된다면이야 피해는 여기서 끝이 난다. 하지만 배출이 되지 않고 몸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내 몸이 죽을 때까지 만나는 모든 세포에게 영향을 준다. 이것이 질병이 되는 것이다. 세포가 죽어서 썩게 하면, 이것이 염증이 되는 것이다. 세포가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아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이것이 암이 된다. 어디에 붙었든 붙은 곳에서 염증과 암을 일으킨다. 언제까지? 우리 몸이 죽어서, 그 속에 살고 있던 암덩어리도 함께 죽을 때까지. 이것이 암이다. 암은 우리 몸을 숙주로 삼고, 숙주가 이윽고 죽어 쓰러질 때까지 뜯어먹고 우리 몸에서 사는 기생물 말이다. 이것을 유발하는 물질을 내 손으로 입에 넣고 살았다.  


  얼굴 쫌 뽀얗게 살겠다고 독약을 내 손으로 빨아 먹고 있었다. 차라리 어릴 때 거름더미에 떨어트린 고구마를 다시 주워서 바지에 쓱쓱 닦아 먹을 때가 나았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운  밤을 진흙탕에 떨어트렸을 때는 옷소매로 잘 닦아서 입 속에 쏙 넣었다. 그건 내 몸에서 흰피톨이 덤벼 이겨먹기라도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도 살성이 좋아 웬만하면 덧나지도 않고, 배탈도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코로나 때도 바이러스에 한 번도 감염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몸이 도저히 이기지 못할 화학제품을 내가 내 손으로 내 입에다가 넣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 구릿빛 얼굴이 차라리 낫다. 좀 타면 어떤가. 건강한 것이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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